강남(에 사는) 엄마

26. 한 가지 책만 읽어달라는데...

by Aloha J

코로나, 집순이, 저질체력. 삼박자가 딱 맞아떨어진 덕분에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많았다. 보통의 평범한 엄마지만, 아이에게 책 읽어주는 걸 스스로 즐기기도 한다. 등장인물마다 다른 목소리로 생동감 있게 읽어주는 건 나에게도 재미있는 일이라서 책이 제일 만만한 육아템이 돼버렸다. 너무 많은 선택지가 오히려 아이의 관심을 끌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단출하게 꾸린 아이의 첫 책들 덕분이었는지, 아이가 아직 어려서 많은 이야기보다는 한 가지라도 확실하게 눈에 익혀주고 싶었던 마음 때문이었는지 몇 권되지 않던 우리의 첫 책인생은 넓지 않지만 깊게 시작했다. 태어나 처음 만나는 알록달록한 볼거리와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에 책장을 펼치면 엄마가 먼저 신이 났다.


아기가 제 손으로 살피고 갖고 온 책을 읽어주면 "뚀!"가 시작됐다. 어느 때는 이야기의 마지막인 줄 알고 아직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뚀! 뚀!" 하며 앞장으로 넘기기도 했다. 아, 이게 재미있나 보구나. 그렇게 한 책을 하루 종일, 어느 때는 일주일 동안, 심심치 않게 몇 개월을 꺼내 읽었다. 아이가 한 권의 책을 계속 읽어달라는 건 계속 새로운 탐색을 하는 거라고, 엄마가 적극적으로 응해주라는 이야기를 읽었던 터라 부담 없이 아기의 탐색을 응원했다.


조금 더 커서 도서관에 함께 다닐 때에도 아이는 책 한 권이 맘에 들면 한 시간 동안 그 책을 계속 반복해서 읽어달라고 했고, 대여해서 집에서도 계속 읽었다. 덕분에 너무 졸리고 피곤한 날에는 품에 안은 아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살짝 눈을 감고 외워서 읊어줄 수 있었다.


영아기로만 끝날 줄 알았는데, 유아기인 지금도 좋아하는 책은 수년동안 읽고, 생각나면 찾아 읽고, 마음에 더 들면 며칠을 연이어 읽는다. 더 다양한 책을 봐야 하는데 왜 한 책만 고집하냐는 고민은 해본 적 없다. 백과사전을 머리에 넣으려고 읽는 게 아니라, 책은 내가 재미있어서 읽는 거니까. 아이의 선택도 존중한다. 오히려 한 번 보고 뒤돌아서지 않아서 아이가 좋아하는 책들만 골라 책장을 채워줄 수 있어서 좋다. 덕분에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책들을 아끼고 사랑한다.

도서관에서 몇 회차를 빌리고, 연장해서 읽었는데도, 또다시 찾아서 읽는 책들은 서점에 가서 사 온다. 아이는 여전히 그 이야기들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그리고 종종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면 책을 들고 뛰어온다. 아이의 책 읽기가 깊어지는 기분이다.


유아 심리 교수님 한 분은 초등학교 4학년때까지 엄마가 책을 읽어주면 좋다고 권한다. 그 이야기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아이가 원한다면 엄마가 충분히 읽어주라는 말에 야호!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요즘은 "엄마, 이건 내가 혼자 읽을게요." 하고 혼자 읽는 일도 많아졌다. 살짝 아쉽기도 하지만

그러다가도 "자, 이제 엄마가 읽어줘요." 하고 책뭉치를 들고 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내가 최선을 다해해 줄 수 있는 너와의 놀이라서 그런 걸까? 이 놀이가 빨리 안 끝나면 좋겠다.

100번, 아니 1만 번이라도 반복해서 읽어줄 거다. 우리 아이가 원하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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