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키즈 카페, 매운맛.
심심한 아날로그미를 추구하는 엄마, 자연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엄마의 취향으로 만 6세 아들의 키즈카페 경험은 손에 꼽을만하다. 가족 행사 때 만나는 조카들과 함께 혹은 아이 친구들과의 공동육아 현장에서 가끔 가본 것 외에 엄마는 키즈카페를 자발적으로 가지 않는다.
코로나 영향도 굉장한 한몫을 했다. 어떤 아이가 코로나에 걸렸는데, 집에만 있기 힘들어서 키즈카페에 데리고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키즈카페는 나에게 두려운 존재였다. 그래, 애기도 엄마도 힘드니 어디든 나가고 싶었겠지. 그럼 만만한(?) 곳이 키즈카페구나.
원에서 특별한 야외 체험 활동으로 미디어 전시, 미디어 테마 파크, 초대형 키즈 카페를 종종 가기 때문에 아이의 호기심은 원에서 채워주는 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작년 일주일의 겨울 방학 동안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다녀왔던 경기도의 한 키즈카페에 다시 가고 싶다고 했다. 평일에 입장하는 키즈파크는 한산했다. 100평이 넘는 공간에 우리를 포함해 4팀 정도가 입장했다. 어린이집에서 가면 단체로 움직이기 때문에 충분히 못 놀았던 아이가 한 곳 한 곳을 둘러보고 살폈다.
지난 첫 방문 때 눈여겨봤던 놀잇감들 중 아이의 마음과 시선을 사로잡은 건 구석에 마련된 슈퍼마리오 게임기와 모니터였다. 와우! 울 애기 게임을 이렇게 경험하는구나.
게임의 규칙과 룰은 모르지만 게임기 스틱을 돌리고 버튼을 누르면서 모니터 속에서 아이의 지시대로 움직이고 나아가는 캐릭터에 아이가 초집중을 했다. 엄마가 적절히 끊어주지 않으면 아마 한 시간도 넘게 그 자리를 떠나지 않을 기세로 아이의 두 볼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세 판 정도 게임을 하고 (물론 방법을 몰라서 매 판이 금방 끝났다.) 아이를 멈춰 세웠다. 모니터도 눈에서 너무 가까웠을 뿐만 아니라, (게임기 줄이 너무 짧아서 바짝 모니터 앞으로 앉아야 했다.) 아이의 상태가 멈춰야 함을 알려줬다. 다른 놀이 코너로 가도 아이는 흥미를 잃었다. 언제 다시 가서 게임을 할 수 있냐며 다른 코너에는 심드렁했다. 한 바퀴 돌며 다른 놀잇감도 놀아보자고, 정해진 시간이 다 되면 나가야 하니까 그전에 많이 놀자고 하면 아이는 정해진 시간이 다 되기 전에 게임은 언제 하냐고 했다.
결국 우리의 엔딩은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나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10분 더 시켜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아이는 다시 게임기 앞으로 갔지만 10분은 10초처럼 느껴졌고, 나오는 동안 온갖 짜증과 울음으로 끌려 나왔다. 매서운 강추위에 한파 주의보까지 발령된 그 저녁, 낯선 도시에서 아이는 울고 나는 그 눈물이 얼어붙을까 닦아대며 매서운 바람을 막으려 내 코트 안에 아이를 넣고 걸었다. 멈추지 않는 짜증과 날선 표현에 마음이 자꾸 더 상하고 있었다. 하...
우리가 동물원이나 식물원, 바다에서 실컷 모래놀이를 하고 나서 집에 돌아가는 길이 이렇게 슬펐던가.
이렇게 속상하고 진이 다 빠졌던가.. 양재 시민의 숲 모래 놀이터에서 놀고 난 후 집에 가는 길이 언제 이렇게 고되었던가.. 우연인지 몰라도 가끔 키즈카페를 갔을 때의 엔딩이 언제나 새드 엔딩이었다.
아이는 소리를 지르고, 감정은 너무 격해졌고, 더 놀아야 하는데 엄마가 밉다고 했다. 심지어 시간을 연장해 준 때에도.. 엔딩은 같았다. 과활성화. 과자극화. 이런 건가..
"00아, 달 떴네." 시퍼런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아이 손을 잡고 내가 여기서 터지면 안 된다, 지금 이 감정으로는 훈육이 아니다, 안된다, 난 어른이다, 엄마다 하며 하늘을 보며 걸어가는데...
찬 공기에 아이가 진정이 된 건지, 울다가 올려다본 하늘에서 아이가 달을 봤다. 그러더니
"엄마 미안해. 내가 소리 질러서 미안해." 했다. 아이를 꼭 안아줬다. 내 온기가 아이의 마음을 차분 하이 게 덮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우리는 이 감정에 대해 각자의 마음을 이야기하며 강남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향했다.
컴컴한 퇴근길, 차가 꽉 찬 도로 위에서 아이는 잠들었고 나는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붉은 불빛을 바라보며 과연 아이에게 어떤것이 최선인지를 고민하며 강남으로 들어왔다.
키즈카페... 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