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 사는) 엄마

37.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리는 어린이의 자세

by Aloha J

남이 해준 밥이 제일 맛있다는 걸 결혼 후 깨단하게 됐다. 독점 육아의 고단함이 찰랑찰랑 차오를 때면 종종 아기를 품에 안고 식당으로 갔다. 몸살이 스멀스멀 올라올 것 같던 날 따끈한 갈비탕 한 그릇에 스르륵 긴장이 풀렸다. 조그만 시절에는 아기띠로 아이를 안고 서로 교대하며 밥을 먹었고, 이유식이 시작되면서부터 아이의 밥을 챙겨서 식당에 갔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라 식당이 익숙하지 않은 아기는 두리번거리며 낯선 공간, 낯선 사람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른들의 음식이 나오기 전 아기를 배불리 먹이고 나면 기저귀 타임 전까지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아이는 엄마 아빠의 먹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봐주었다.


집 앞 식당이 익숙해지자 아기는 이유식을 호로록 먹고 아기 의자에서 나올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럼 바나나 같은 간식 하나를 더 주고, 식사를 했다. 바나나를 다 먹고 나면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 타이밍이 왔고, 대부분 엄마의 손을 필요로 했다. 그 사이 식사를 마친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식당 앞으로 구경을 가면 그제야 식은 밥과 찬을 천천히 먹었다. 아휴, 되다.


한산한 식당에 사람들이 조금씩 북적대기 시작했다. 아이가 자랐고, 코로나의 두려움이 조금씩 사그라들 즘 식당에서 간간히 비슷한 또래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어른의 음식이 궁금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아이는 식당에서 주문 후 메뉴판을 계속 구경했다. 그럼 우리가 오늘 어떤 메뉴를 주문했고, 지금 주방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찬찬히 설명해 줬다. 지금 야채를 썰고 있어. 물이 끓으면 이런 양념도 넣겠지? 하며 아이에게 요리 이야기를 해줬다.


여행길에 들르는 휴게소에서는 아이가 먹을만한 음식을 찾지 못해서 이유식을 먹이는 시간이 길었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그 찰나의 시간에 아이는 옆 테이블, 뒷 테이블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이들이 밥을 먹으며 패드나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시청하는 소리였다. 그럼 다시 아이의 이름을 불러 주위를 환기시키고 눈을 맞춘 후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도록 했다. 다양한 먹음직스러운 메뉴 사진을 같이 본다던지, 음식 이야기를 더 신나게 들려줬다. 아이 손을 밥 삼아 엄마 손바닥을 김 삼아 살포시 쥐어주며 주먹밥 만들기를 해보기도 하고, 아기 손 위에 상상의 두부를 올려두고 엄마가 동동동 두드리며 두부를 써는 시늉으로 음식 놀이를 했다. 아이의 상상으로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엄마에게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음식이 나왔다.


이유식을 졸업하고 식당 밥을 먹게 되자 아이는 자신이 먹을 메뉴를 신중하게 고른다. 주문 후에도 메뉴판을 찬찬히 살피거나 본인의 책을 읽거나, 엄마와 요리가 되는 과정을 상상하며 대화한다. 이도저도 다 힘들 만큼 배가 고픈 날은 손에 쥐어 온 피겨를 만지작대며 "배고파~언제 나와요?" 하며 칭얼대는 날도 있지만. 대체로 우리는 비슷한 루틴으로 외식을 즐긴다.


나오는 반찬을 하나씩 맛보면서 어떤 맛인지 음미하고, 각자 다른 메뉴를 보며 "엄마 거기 들어있는 전복 00 이가 먹어도 돼요" 하며 맛있는 재료를 골라먹기도 한다.

너무 매운 반찬만 나온 식당에서는 본인이 먹을 게 없다고 속상해하기도 하지만, 물에 헹궈 작게 베어문 김치에 뭔가 어깨가 솟으며 "나 어른 김치 먹어요!" 하는 귀여운 용기를 자랑하기도 한다.


뷔페든, 식당이든 아이는 언제나 즐겁게 식사를 한다. 본인의 메뉴에 엄마의 메뉴까지 더해서 풍성하게, 오롯이 음식을 즐긴다. 맛있는 음식, 사랑하는 사람, 달뜬 아이의 신난 기분 이 삼박자가 대체로 잘 맞아떨어진다. 그래서 언제나 아이와의 외식은 엄마에게 힐링 타임이랄까..(맛있는 거 먹고, 편하게 쉴 수 있어서. 흐흐)



*한 날은 아이가 물어봤다.

"엄마, 우리는 스마트폰 밥 먹을 때 왜 안봐요?"

"스마트 폰 보면서 밥 먹으면 00이가 지금 얼마나 맛있는 걸 먹는지 알 수 있을까?"

"아니요. 모를 거 같아요. 스마트폰 보느라. 이렇게 멍. 하고 볼 거예요."

"응, 그럴 거 같아. 그럼 맛난 걸 먹었는데도 기억이 안나. 엄마랑 이렇게 마주보며

엄마 눈에서 00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면서 먹으면 좋을텐데...그냥 스마트폰만 보면

우리 눈뽀뽀 할 시간도 없고, 같이 사랑해~말 해줄 기회도 다 사라지잖아."

"응! 스마트폰 보면 엄마랑 말하고 사랑해 해줄 수 없어요, 난 스마트폰 안 보고 밥 먹을래요."

그렇게 아이는 스마트폰을 왜 식탁에 안 올리는지에 대해 결론을 내렸다.

(언제나 한결같은 생각이지만, 이건 외동에게만 가능한 결론이다. 독점육아에 애가 둘이면 스마트폰은

분명히 육아 이모님이 맞다. 다둥이 어머니들의 고단함은 감히 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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