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 사는) 엄마

36. 조부모님이랑 같이 사나요?

by Aloha J

"엄마, 어후! 오늘 아침 정말 맛있었어요!"

진실의 미간이 살짝 찡그려지며 웃는 걸 보니, 녀석 정말 맛있게 먹었나 보다. 어른들이 맛있는 음식을 한 입 먹고 으흠~~ 하며 인상을 찌푸리는 딱 그 느낌으로! 아이는 만족스럽게 등원을 했다.

어젯밤에 아이가 요청한 아침메뉴인 버섯탕으로 청쾌한 겨울 아침을 따뜻하게 채워줬다.


"감칠맛이 느껴져요."라든지, 뜨거운 국을 호록 먹고는 "어~시원하다!" 할 때마다 아직도 웃음이 빵 터진다. "아가, 이거 마시는데 시원해? 어떤 느낌인데?" "음, 이걸 먹으면! 속이 따뜻해져요. :D"

그 개운한 시원함을 안다고? ㅋㅋㅋ


올해 어버이날에는 원에서 새로운 문장을 익혀왔다. 그래서 한동안 아이는 배운 문장을 엄마에게 수시로 편지로, 말로 전해줬다. "엄마,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쯤이면 입대 전 인사 아닌가... 낳아줘서 고맙다니! 내 양육 목표가 먼 훗날 아들에게서

"엄마 아빠 아들이라 행복해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열심히 키우자인데... 예고편처럼 미리 들어보니 더 의지가 결연해졌달까.


주말 아침부터 온종일 아이와 함께 있다 보면 오후 4시에는 거친 피곤함이 기다리고 있다. (항상 저질체력..) 어이구야~~ 하고 잠시 누워 '좋구나아~'하면 옆에 쪼르르 달려와 꼬소롭게 웃으며 꼬옥 안긴다.

좋다 좋다~조금만 쉬자~ 하며 아이의 예쁜 등을 토닥여주면 10분은 쉴 수 있다.

아이가 실수로 물건을 쏟거나 뭔가 망가트릴 땐,

"괜찮아, 아무 문제없어. 안 다쳤으니 다행이야. 다시 하면 돼."

하며 아이와 함께 상황을 정리하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쏟아진 물건을 정리하며 혼잣말로

"괜찮아, 아무 문제없어." 하는 걸 보며 속으로 '고마워' 했다.


세 살 때, 주유소에서 가스를 넣고 있는데 창밖의 노을을 하염없이 보던 아이가 나지막이 읊어준 말은..

".... 엄마, 자동차는 가스를 먹고, 사람은 돈가스를 먹어요.." 덤덤하게 전해준 말에 물을 뿜은 기억도 있다.


화가 나도 말로 하는 거야, 소리 지르고 말로 하지 않으면 우리는 대화를 할 수 없어라는 말을 매일 해야 했던 아이의 여섯 살 시절, 학부모 상담을 가서 알았다. 아이가 감정이 격해진 친구에게 "말로 하는 거야, 안 그러면 대화할 수 없어. 소리 지르지 마."라는 말을 잘한다고.


"아이 예쁘다, 아이고 예뻐!" 하는 것도 엄마 말투. 어허! 하는 것도 엄마 말투..;;

"엄마 나 자몽~해." 하면서 품에 안겨 하품을 한다. 아빠와 칼싸움을 할 때면 망토를 두르고

"수박 하라!!!" 하며 달려가 아빠를 잡는다.

어휘 책을 좋아하는 아이는 자신의 말을 더 다양하게 확장하고 싶어 한다. 생경하고 재미있는 어휘를 발견하면 굉장히 즐거워한다.


가수 이적님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지나가다 한 번 본 적이 있다. 어머니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는데, 어려서부터 어머니는 세 형제에게 마치 어른과 대화하듯 이야기를 해주셨다고. 아이가 알아듯든 못알아듯든 항상 성인을 대하듯 이야기를 해주셨단다. 그게 본인에게는 자신감과 자긍심의 원천이 되는 일상이었다고.. 그래서 본인도 딸아이와 이야기할 때 그냥 성인과 대화하듯 한다고. 멋진 방법인데?

아기가 정말 어릴 때는 아기 어를 적절히 섞어가며 아이를 돌봤지만, 말이 트고 나서부터는 일부러 과도한 아기언어를 배재했다. 조금 더 큰 아이 대하듯 이야기하고, 설명하며 키우고 있다. 아이 귀에 순간 딱 꽂히는 문장이 아닐지언정, 어렵지 않을까 하는 단어라도 정확히 전하는 건 어렵다는 기준이 엄마의 기준이지 무엇이든 잘 습득하는 아이에게는 모든 단어가 다 새롭고 반짝이지 않을까로 생각을 정리하면서부터였다.


엄마가 나이가 있어서 그런 건지, 언어유희를 즐기는 아이의 기질 덕분인지 아이의 어휘가 제법 도톰하다.

첫 어린이집 입소 후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선생님이 그러셨다.

"00 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랑 사나 봐요? 말하는 거 보면 어른들이랑 자란 집 아이 같아요."

엄마 아빠랑 사는 따끈한 햇가족이라고 하며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모임에서 아이의 언행을 보고 조부모님과 같이 사냐는 질문을 받는다.

이쯤 되면... 내 취향이 구수하고 느긋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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