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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아침 햇살

해바라기 한 송이

아침 햇살 (Morning Sunshine) (2015), 캔버스에 아크릴, 100 x 80 cm

미대를 졸업하고 나온 작가들 중 매년 절반이 전업작가의 길을 포기한다. 즉, 졸업한 지 1년이 지나면 졸업생의 50%가 포기하고, 그다음 해에는 남은 50%의 작가들 중에서 또 절반이 포기한다. 과연 졸업한 지 10년이 지나면 과연 몇 명이 전업작가로서 계속 길을 가고 있을까. 수치를 계산해 보면 꽤 절망적이다. 붓을 내려놓았던 이들도 각기 다른 이유로, 그리고 각자에게 가장 적당한 '시기'가 찾아오면 다시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세상에 수많은 명작들과 작가들이 있고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만큼, 작품활동을 다시 시작하는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포기하는 이유는 단연코 하나밖에 없다. 본업으로 '먹고살기가 힘들어서'이다. 세상의 시선에서는 종종 '팔자 좋은 한량'으로 바라볼 수도 있는 예술가라는 직업은 사실 생각보다 낭만적이지 않다.


2022년 1월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23년 1월, 아니 2월이다. 시간이 참 속절없이 빠르게 흘러간다. 적확하게 흘러가는 시간의 속도는 이 세상에 당해낼 자가 없는 것 같다. 오직 신만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동안 꽤 진지하게 붓을 꺾을지 말지 처음으로 고민했었다. 그렇다. 정말 진지하게 이런 고민을 했다는 것 자체가 참 낯설었고, 쌓여있는 그림들을 보면 속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화가 북받쳐 올라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내가 아끼는 아이들인데 왜 이러나 싶었다. 하지만 반대로, 이러한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좋은 작가로 성장하기 위한 성장통이고, 교과서에서 보던 거장들도 한 번쯤 (혹은 수없이) 고민했을 거라 지레짐작하고 나니 받아들이기 수월해졌다. 그래. 교과서에 나오는 거장들도 나와 같은 인간이었을 텐데, 이런 '인간적인' 고민을 안 했을 리가 없다. 그리고 그분들도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자신의 작품들을 보며 이유 모를 답답함이 섞인 화가 나기도 했었겠지. 신이 아니라 인간인데. 아무렴, 그렇고말고. 


제3자가 바라보는 프리랜서의 삶은 더 이상적인 직장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장점이 많다. 내가 정하는 출퇴근 시간부터 업무 스케줄 및 업무 분담까지 오로지 '나' 자신이 이 직장의 상사이고 사원이다. 하지만, 나의 본업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전혀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엔 이상적인 일에 속하는 작가라는 직업과 현실의 삶을 영위하는 것의 괴리감을 마음으로 진지하게 느끼기 힘들었다. '그래, 그까짓 것 해보면 언젠가 되겠지'란 안일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혈기왕성한 젊은 패기였던 것 같기도 하다.


갓 작가의 길로 들어서려고 할 때, 거친 황야 같은 돌바닥에서 당당히 서 있는 그런 작가가 되겠노라고 다짐했었다. 어린 시절의 다짐이 지금의 나에게 '거친 황야의 삶이 쉬울 줄 알았냐'며 말을 건넨다. 그렇다. 거친 황야에서 살아가려면 큰 일교차와 뻑뻑한 모랫바람정도야 즐겨줘야 멋있지. 어느 분야로 다시 시작하든지 간에 체감상의 가시거리 30cm도 채 안 되는 심해 같은 밤 안갯길일 것 같다. 그렇다면 계속해 오던 이 일을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한바탕의 생각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나니 마음엔 고요한 평화가 찾아왔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앞으로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서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라는 조금 더 절박한 마음으로 작품활동을 할 것이라는 것을.


이 그림은 2015년에 고흐도 해바라기를 그려봤으니 나도 해바라기 그림은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 그리기 시작했던 '아침 햇살'이다. 따뜻한 아침의 싱그러움이 곁들여져 있는 이 해바라기 그림을 보니 거친 생각 소용돌이가 지나간 휑한 회색빛 마음에 따뜻한 아침 햇살이 비치는 것 같다. 앞으로 펼쳐질 나의 그림들도 이 그림처럼 따뜻하고 몽글몽글하길. 해바라기가 금전운을 불러일으킨다고 해서 선물로도 많이 나가는 그림이라던데, 나의 해바라기도 올해는 금전운을 불러올 수 있길. 그리고 무엇보다 고흐처럼 꾸준히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림을 그리는 것을 사랑할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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