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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봄의 길목

몽글몽글 겨울 요정 마을

봄의 길목 (2014), 판넬에 아크릴, 72.7 x 53.0 cm, 개인소장

봄의 길목으로 가는 길엔 겨울이 항상 있다. 겨울은 흔히 춥고 고달픈 계절로 인식되는데, 나에게는 겨울이 오히려 참 따뜻한 계절 같다. 봄에 틔울 생명들을 조용히 그리고 묵묵히 품고 있다. 겨울의 따뜻한 면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 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다 보니 따뜻함보단 신나는 겨울로 삼천포 빠져버렸다. 아무렴 어떤가. 신나고 즐거운 것도 어찌 보면 따뜻한 겨울의 또 다른 얼굴이다.


함박눈이 내리는 날이면  세상은 동화책에서만 보던 요정 마을로 변한다. 분명히 익숙한 장소 혹은 거리인데 새롭다. 신비롭다. 가슴 깊숙한 곳까지 가득  있던 시리면서 차디  겨울바람은 어디론가 가고 없고, 포근하면서도 따뜻한 겨울바람이  감싸 안는다. 어린 시절 간직하기만 하고 거의 잊고 살던 동심이 몽글몽글 세상에 나오는 순간이다. 나의 요정마을은 새하얀 눈밭에 개성 가득한 집들이 오순도순 모여있고, 주위엔 밝고 따뜻한 온기를 간직한 마법 겨울 베리들이 마을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요정 마을에서는 눈이 오는 계절의 자연에서만 느낄  있는 재미들이 한가득이다.  재미란 그리 거창  것이 아닌 의외로 소박하지만 오늘날의 따뜻한 겨울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것들이다.


어릴 때 잠깐 살던 집의 앞쪽엔 작은 산 언덕이 있었다. 눈이 오는 날이면 다양한 물건들을 가지고 이 작은 언덕을 올라가서 눈썰매를 탔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대표적인 썰매 대용품으로는 사용했던 물건들은 양푼이, 고무 대아, 쌀 포대기가 있는데 이 중에서 당연코 최고는 바로 쌀 포대기다. 스릴 만점인 쌀 포대기 썰매의 참 맛을 아시는 분?


눈이 오는 계절이 찾아오면 강도 깡깡 얼어붙었다. 어린 시절 도시 외각에 위치한 유원지의 강물도 어김없이 꽁꽁 얼었다. 그러면 조용하면서도 빠르게 천연 스케이트 장이 개장했단 소식이 온 도시에 퍼졌다. 그러면 당연하다는 듯 언 강물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엄마가 끌어주는 전통 얼음 썰매를 신나게 타곤 했다. 거친 얼음 표면이 주는 재미는 곧 서비스가 중단된다는 카트라이더의 현실판이다.


겨울 기온이 많이 올라가면서 이런 자연 겨울 스포츠 재미를 느끼기가 어려워졌다. 대략 7   즈음, 겨울 눈을 보러 부모님과 스위스로 여행을  적이 있다. 인터라켄에 늦은 오후에 도착했을  시내에 아이스링크가 개장한 것을 보고 당장 달려가서 스케이트를 탔었는데, 어린 시절로 돌아간  같았다. 앞엔 산이 보이고, 눈도 엄청 많이 오던 날이어서 그런가. 꽤 오랜 시간 잊고 살았던 재미여서 그런지 기억에 더 남는다. 분명히 나의 요정 마을 주민들도 한동안 꽤 신나는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올해는 좀 더 겨울답게 더 춥고 눈이  자주 펑펑 내려  마을의 요정들도  신나는 겨울을 보낼  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소원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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