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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시원한 알로하 스피릿 한 모금

나만 알고 싶은 오아후 섬 로컬 맥주, Aloha Beer Co.

작품 반입 ¹ 당일날엔 보통 새벽까지 작업하다 갤러리로 그림을 보낸다. 한두 번 더 끄적여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싶겠지만, 나의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새벽까지 난리 부르스를 추고 아침에 갤러리로 뛰어가서 그림 걸면 그날은 음식을 먹어도 먹은 것 같지가 않다. '안' 먹는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모든 일이 다 끝나면 꼭 맥주를 곁들인 떡볶이와 순대가 먹고 싶다. 떡볶이에 맥주는 잘 안 어울릴 것 같지만, 먹어보면 의외로 찰떡궁합이다. 시원한 맥주 한 모금에 떡볶이와 순대 한 입. 작품 반입을 준비하면서 쌓여있던 피로가 싹 사라진다. 이 맛에 또다시 개인전 준비하고 싶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참고로 나는 이 찰떡궁합 조합은 일 년에 딱 한번 개인전 작품 반입일 날에만 먹는다. 일 년간 수고한 나에게 주는 소소한 나만의 선물이다.


이번 작품 반입일에는 Blue Moon (블루 문) 캔 맥주에 떡볶이와 순대를 먹었다. Blue Moon 맥주는 벨기에 스타일의 화이트 에일로 만들어진 맥주이다. 고수 열매와 발렌시아 오렌지 껍질을 이용했다고 하는데, 나는 오렌지 껍질 맛이 내가 사랑하는 자몽으로 느껴져 참 좋아라 하는 맥주 중 하나이다. Blue Moon같이 과일맛 맥주를 마실 때마다 호놀룰루 로컬 맥주 브랜드인 Aloha Beer Co가 생각난다. 이 오아후 섬 로컬 맥주집을 알게 된 건 코로나 팬데믹 덕분이었다.


Aloha Beer Co 로컬 맥주 가게는 Kaka'ako (카카아코)에 위치해있다. 카카아코는 알라 모아나 쇼핑센터 (Ala Moana Center) 바로 옆에 있는 워드 빌리지 (Ward Village)부터 시청과 호놀룰루 미술관 사이에 있는 동네다. 카카아코는 오아후 섬에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굉장히 힙한 ² 곳이다. 여러 젊은 작가들의 작업실들도 있고, 건물들의 외벽도 젊은 작가들의 벽화 (mural painting)들로 꾸며져 있다. 다양한 카페와 레스토랑들도 있고 최근에는 H Mart라는 한인마트도 들어서 있다. 힙한 하와이를 느끼고 싶다면 Kaka'ako (카카아코)에 방문해보면 좋을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 섬이 셧다운되었다. 졸업을 앞두고 있던 나는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 코로나로 모든 경제활동이 거의 멈추다시피 했는데, 일자리가 있을 리 만무했다. 때마침 Aloha Beer Co라는 곳에서 자신의 가게에 이쁘게 벽화 그려줄 아티스트를 찾는 '공모전'을 열었다. 당선되는 예술가는 작업 기간 동안 꽤 괜찮은 보수를 받을 수 있었다. 전문적인 벽화를 그려본 적은 없었지만,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에 벽화 계획서를 제출했다.


 이 공모전은 생각보다 경쟁률이 더 치열했다.  아쉽게도 기회를 잡지는 못했다. 결과를 빠르게 수긍하고 다시 공모전들과 일자리들을 찾아보고 있었는데 연락이 왔다. 참여한 아티스트들 전부에게 소정의 선물을 주고 싶으니 꼭 오라는 메시지였다. 버스 타고 카카오카로 향했다. 하와이는 셧다운이 되었어도 교통수단은 이용할 수 있었다. 섬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꼭 필요한 외출 시에는 버스를 탈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버스는 계속 운행이 되었다. 버스 안은 텅텅 비어있었지만, 평소에 자주 가지 않던 곳을 가보니 새로운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짙은 검은색 외간이 참 멋들어진 곳이었다.


나의 이름을 확인한 후 받은 선물 보따리를 열어봤다. 세상에......! 가게 유리컵, 에코백, 모자, 등등 가게의 이쁜 굿즈들이 담겨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너무 많이 받는 선물이었는데, 가게의 생맥주를 캔으로 포장한 것 한 캔도 고를 수 있었다. 맥주 종류들이 참 많았다. 고를 수가 없어서 사장님께 조언을 구했다. 과일맛 맥주를 좋아하는 나에게 Froot Lupes를 추천해주셨다. 기숙사로 돌아와서 직접 썰은 파인애플, 아껴두었던 캔탈로프 멜론 (Cantaloupe Melone), 그리고 버터와 다진 마늘에 볶은 새우에 Froot Lupes를 선물 받은 가게 맥주잔에 곁들여 저녁으로 먹었다.

내가 느낀 Froot Lupes의 맛은 열대과일들이 잠시 머물다 지나가면 살짝 촉촉한 풀향이 배어있는 청량한 여름밤 공기 향도 다가오는 듯하다. 상큼한 파도가 지나가는 느낌으로 맥주의 맛이 마무리가 된다. 파인애플과 캔탈로프 멜론과도 너무 잘 어울리는 맥주였다. 살짝 얼린 파파야와 먹어도 맛있을 것 같았다.


디오의 '괜찮아도 괜찮아 ³' 노래를 들으며 하와이 하늘도 안주삼아 저녁을 먹다 보니, 문득, 어쩌면 Aloha Beer Co 사장님은 공모전의 결과와 상관없이 젊은 작가들에게 작은 즐거움으로 위로가   있는 순간을 선물로 주고 싶었을  같단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때문에 많은 것들이 힘들겠지만, 그래도 힘내라는 따뜻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듯했다.


Froot Lupes를 마신 이후 나는 Aloha Beer Co 맥주 가게도 코나(Kona) 맥주와 마우이(Maui) 맥주만큼이나 하와이를 가면 마셔봐야 할 로컬 맥주집이라고 말하고 싶다. 코로나가 끝나면 Aloha Beer Co 맥주 가게에 가서 Froot Lupes도 다시 마셔보고 다른 수제 맥주들도 마셔보고 싶다. 사장님은 잘 계실지, 가게 벽화는 어떻게 완성됐을지도 궁금해진다.



1. 작품 반입일은 작가들의 전시 기간 중 첫날의 전날이다. 예를 들어 8월 3일에 전시가 시작된다고 하면 8월 2일이 작품 반입일이다. 작가들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엔 작품 반입일이 다가올수록 엄청난 스트레스가 물밀듯이 덮쳐온다. 그림만 그리면 참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작품 리스트 및 라벨, 초대용 팜플렛, 새 명함, 홍보 자료, 작가 노트를 완성시켜야 한다. 그림 포장 자재 주문은 기본이고, '탑차'라고 부르는 그림 운송 전용 트럭과도 계약해야 한다. 이밖에도 해 내야 하는 업무들이 많다. 나는 내가 마련한 예산 안에서, 그리고 내가 직접 모든 일을 해결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작품 반입일이 다가올수록 더 바빠지고 예민해진다.  

대략 작품 반입일 한 달 전부터 걸으면서 노래 들을 때 베이스 기타 소리가 점점 더 선명하게 들려오거나, 먹는 양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는데, 이건 나만의 스트레스 측정법이다. 이때부터 타인들에게 나의 예민 덩어리 상태를 보여주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2. 힙하다: 영어인 'Hip'과 국어의 '-하다'가 합쳐진 말이다. '트렌디(trendy)하다'라고도 하며, 고유한 개성과 새로운 감각적인 것을 나타내는 말로 요즘 젊은이들의 유행어이다. 비슷한 (하지만 조금 시대가 지난) 말로는 '핫하다'가 있다.


3. 디오의 '괜찮아도 괜찮아'란 곡은 들을 때마다 참 좋다. 조급해지던 마음에게 '괜찮아. 그래도 괜찮아.'라고 위로를 건네는 듯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j2aQ_NqeTN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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