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문 사이
늘 준비 없이 떠나는 여행이 익숙했다. 핑계 아닌 핑계를 대자면 나는 스케줄 근무자였다. 들쑥날쑥 바뀌는 스케줄은 전날 알면 땡큐, 당일이면 유감으로 알고 일을 했다. 반년 전부터 휴가 계획을 세우고, 얼리버드 특가표를 예약한다는 건 내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최소한의 틈이 주어질 때마다 떠났다. 고단한 일상에 대한 위로와 여행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하고자... 타국의 풍경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새벽에라도 당일 출발 티켓을 끊었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비행기에서 여행책자를 읽으며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음식, 원산지의 쇼핑리스트 몇 가지를 정해 다녀오는 게 나의 여행이었다.
무계획도 여행의 묘미이고, 직접 부딪히며 여행의 기술을 습득한다며 그렇게 준비 없는 여행을 했다.
계획의 무게는 가벼웠지만, 즉흥적으로 한 여행은 생각보다 많은 추억을 내게 만들어줬다.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도시 전체가 빛나던 홍콩에서는 빈티지한 뒷골목에 매료되었다. 이별 후 찾은 대만의 오래된 사원에서는 떠난 사랑과 내 마음의 안녕을 빌었다. 필리핀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는 파도를 타는 서핑의 재미를 느꼈다. 프랑스가 아닌 나라에도 훌륭한 와인이 얼마나 많은지 스페인의 와인을 마시며 깨달았다. 퇴사 다음 날 훌쩍 떠난 베를린공항에서는 한달음에 마중 나와 준 오랜 친구의 마음을 알게 됐다.
불과 출발 일주일 전에 비행기 티켓을 끊었지만 걱정보다는 설렘이 앞섰다.
무엇보다 단기 여행자에서 체류형 여행자가 된다는 사실이, 그곳이 하와이라는 사실이 나를 들뜨게 했다.
경유없이 직항 노선을 타는데도 거치는 공항만 총 네 군데.
제주에서 김포, 김포에서 인천, 인천에서 호놀룰루까지. 섬에서 육지로 그리고 다시 해외로...
경유 아닌 경유를 하는 긴 여정도 전혀 피곤하지 않을 것 같았다.
언제나 그렇듯 모든 게 수월할 줄 알았다.
하지만 멀리서도 한눈에 예상치 못한 복병이 나타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쭉 뻗은 공항 진입로에는 숨 막히게 많은 차가 줄지어 있었다. 주차장 공사로 도로는 마비 상태! 10분, 20분, 30분, 40분... 꼼짝없이 길 위에서 시간이 흐르자 나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내일 출발 티켓으로 변경할 수 있을까? 게스트하우스 예약은 어떻게 연기하지?'
반 포기 상태로 변경을 셈하는 사이, 거짓말처럼 차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하게 달려간 체크인 카운터는 마감 10분 전! 숨이 턱에 걸린 채 항공사 직원에게 김포행 티켓 발권을 부탁했다. 더불어 호놀룰루 공항까지 수하물 연결 수속도.(같은 항공사를 이용해서 당일 국제선 환승을 하는 경우, 목적지까지 자동으로 수화물 연결이 가능하다.)
발권은 시작됐지만, 이번에는 짐이 문제였다. 국내선-국제선 수하물 연결은 국내선보다 수하물 마감이 일찍 이뤄진다는 것! 만약 연결이 안 된다면 김포에서 짐을 찾아 인천으로 끌고 가 호놀룰루로 다시 붙여야 한다. 항공사 직원은 나의 동선과 어마어마한 짐(3개월 살이를 대비한 이민 가방, 대형 캐리어, 주렁주렁 어깨에 메고 있는 에코백까지)을 보더니 동시다발적인 수속을 시작했다. 수하물 담당 부서로 통화를 하는 동시에 컴퓨터에 정보를 입력했다. 다행히도 나와 나의 짐들은 그녀 덕분에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나의 하와이는 그렇게 누군가의 도움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오른 비행기에선 한숨도 자지 못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나의 도착지는 하와이니까. 긴 비행의 끝을 예고하는 기압차로 귀가 멍해지기 시작하고 비행기는 부드럽게 착륙했다. 입국심사장은 착륙한 기체에서 나온 세계 각국의 사람들로 빼곡하게 채워졌다. 허니문을 온 신혼부부, 알로하셔츠를 맞춰 입은 가족 여행객, 말끔한 정장 차림의 비즈니스맨... 목적도, 나이도, 인종도 다른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군중의 파도를 따라 나도 줄을 섰다. 여권과 비행기 티켓, 미국 비자 면제 프로그램인 ESTA 등 입국심사에 필요한 서류를 확인하다 아차! 싶었다. 비몽사몽 하다 승무원이 나눠 준 세관신고서를 작성하지 않고 그냥 내린 게 생각났다. 안쪽으로 밀려드는 사람들을 역류하여 다시 입국장 구석에 마련된 데스크를 향해 빠져나갔다. 세관신고서를 쓰고 다시 돌아갔을 때는 같은 비행기에서 봤던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여러 대의 비행기가 비슷하게 도착했는지 이미 또 다른 도착 편의 승객들이 뒤섞여 있었고, 나는 다시 긴 줄의 일부가 되었다.
거북이가 뒤로 걷는 것 같은 기다림이 이어졌다. 빽빽한 줄은 서 있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꼬리에 꼬리를 문 줄을 따라가 보니, ‘VISITOR’ 라는 팻말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바로 옆 통제선 안쪽에도 또 다른 줄이 있었다. 확연하게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줄에는 미국 여권을 든 한결 여유로운 표정의 사람들이 있었다. 시민권자나 영주권자인 그들 역시 입국심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서 있는 줄과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VISITOR의 의미는 방문자, 관람객, 관광객, 손님.
그러나 나는 이방인이었다.
트럼프 정권의 반이민 정책과 항공보안 대폭 강화가 기사로 나오던 시기였고, 강도 높은 심사로 입국이 거부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더구나 나는 입국 거부 우선순위로 꼽히는 나이 많은 미혼 여성이었다. 한참을 기다려 키오스크 앞에 도달하자 직원이 터치스크린을 배정해 줬다. 여권을 인식해 항공편의 정보를 가져오고, 지문 인식과 사진 촬영을 마쳤다. 이제 여권에 입국심사관이 찍어주는 도장을 받으면 모든 게 끝난다! 최종관문을 향한 줄에서 슬쩍 본 심사관은 까다롭고 까칠해 보였다. 미국 입국심사는 악명 높다고 들었던지라 왠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나는 괜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누르며 최대한 밝게 그에게 인사를 했다.
“하와이에 왜 왔니?”
“난 서핑하러 왔어. 서핑 보드도 사 갈 거야.”
“얼마나 있을 예정이지? 숙소는 어디지?”
“게스트하우스에 묵고 와이키키에서 서핑할 거야”
가벼운 질문이 몇 가지 더 오갔고, 나름 어색하지 않게 인터뷰를 마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통과하지 못했다.
미국으로 가는 관문을.
심사관의 호출에 또 다른 심사관이 나타나 나를 별도의 방으로 데려갔다. 그곳은 2차 심사대로 불리는 세컨더리 오피스였다. 긴 의자에는 굳은 표정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방 안 가득한 침묵은 공기를 더욱 무겁게 가라앉히고 있었다. 이 불안의 고요는 문 밖에서 빛나는 해변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소란스러움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파라다이스로 가는 입구와 다시는 이 땅을 밟지 못하는 사람들이 떠나는 출구가 나뉜다. 과연 두 문과 문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벽에는 핸드폰을 사용할 수 없다는 안내표지가 붙어 있었다. 손목시계도 없는 데다 핸드폰도 사용할 수 없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는지 알 수 없었다. 초조와 긴장을 더한 마음속의 시계는 더디게만 흘러갔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지 않았음에도 내 이름이 불리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국에서 어떤 일을 했지? 방문 목적은?"
은행 창구처럼 칸막이로 나뉜 책상에 마주 앉은 심사관의 질문이 시작됐다. 체류하는 기간과 장소, 미국 내 아는 사람이 있는지... 나는 한국에서 준비해 간 명함, 귀국 e티켓, 게스트하우스의 주소를 보여줬다. 하지만 서류를 확인하던 심사관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바뀌었다. 그리고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불렀다. 한국인 심사관(겉모습은 한국인이지만 미국 국적의 심사관)과 백인 심사관이 나타났다. 2명의 심사관을 따라 나는 사무실 구석의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머무는 공간이 작아질수록 나를 향한 질문엔 날이 서 있었다.
‘왜 혼자 왔지? 혼자 온 게 맞는지?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확실한지? 숙소는 어떻게 예약했는지?'
다시 반복되는 질문 그리고 반복되는 대답.
무겁고 딱딱한 세 번째 인터뷰를 마치자 심사관들은 나를 1층으로 데려갔다.
수하물용 턴테이블의 컨베이어 벨트에는
나의 짐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특별할 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든 짐을 샅샅이 살피기 시작했다. 티셔츠, 수영복, 화장품, 김과 라면... 뜻밖에도 그들의 의심을 산 건 Grammar in use였다. 여행을 오는데 왜 영문법 책을 갖고 왔냐, 영어를 공부해 미국에서 생활하려는게 아니냐는 질문이 쏟아졌다.(미국에 길게 머무는 만큼 영어가 조금이라도 늘고 와야겠단 생각에 단순히 여행가방에 던져 넣은 것이다.) 한글을 아는 심사관은 다이어리의 메모와 여행 예산까지 살펴보고 질문에 압박을 가했다. 나의 여행과 리턴을 결정짓는 최고 권력자인 그들에게 나는 그저 불법 취업과 불법 체류가 의심가는 대상일 뿐이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아시아에서도, 유럽에서도 단 한 번도 이런 과정을 거친 적은 없었다. '진짜 되돌려 보내진 않겠지? 이렇게 오래 기다렸으니 통과하겠지?’ 설마 하는 긴장과 혹시나 하는 기대를 오가는 중에 다시 이름이 불렸다.
나는 그들의 묻는 말에 대답은 하되, 질문은 할 수 없는 존재였다. 말없이 심사관은 나와 여권을 한참을 번갈아 보더니 ‘쾅’ 하고 도장을 찍었다.
다시 굳은 표정의 심사관을 따라 1층으로 내려가 짐을 찾았다. 그리고 커다란 문 앞에 섰다. 순간 입국 거절 도장을 받고 또 다른 좌절의 공간으로 옮겨진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심사관은 아무 말 없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눈 부신 햇살이 쏟아졌다.
나는 그렇게 하와이에 첫발을 내디뎠다.
<하와이 로망일기, 와이키키 다이어리>
평범한 대한민국 30대가 사표를 던지고 무작정 떠났던 하와이 한량 생활기입니다.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있는 그대로의 하와이를 만나고 돌아온 85일간의 와이키키 다이어리가
궁금하시다면 링크를 눌러주세요! Alo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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