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하와이를 떠난 이유
“조금만 더 참아봐, 조금만 더 버틸 수 없겠니?”
상사가 건넨 첫마디였다. 회사를 그만둔다는 나에게 그는 고단한 회사생활에 대한 이해도,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 역시 조직의 일원이고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없는 위치라는 걸 알고 있었다. 테트리스 같은 조직에서 나 하나 빠진다 해도 그 구멍은 금세 맞춰질 게 뻔했다. 하지만 새로운 벽돌이 어떤 모양으로 내려올지 모르기에 그는 내 공백의 이유보다 그 여파를 먼저 걱정하기 바빴다.
도대체 얼마나 더 참고 견뎌야 하지?
과연 참고 기다리면 괜찮은 순간이 오긴 할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렇게 일했는데 앞으로는?
나이를 먹으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원대한 목표를 품고 있지도, 치열하게 경쟁에서 살아남는 캐릭터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크게 뒤처지거나 눈에 띄는 일탈을 일삼지도 않았다. 그냥 매일 아침 눈을 떠 쳇바퀴 굴리듯이 온종일 일했다. 야근까지 마치고 퇴근한 후에는 녹초가 되어 아무것도 못 하고 쓰러졌다. 업무량이 많아도, 피로가 쌓여도 '나는 참 일복이 많은가 보다' 생각했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미생 중 한 명이니까.
남들도 다 그렇게 사니까.
그러다 내가 일을 하는지, 일이 나를 움직이는 지조차 모를 정도가 됐을 때 멈춰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여자 나이 서른여섯, 거기다 싱글
한국 회사에서 선호하지 않는 조건에 딱 부합했던 내가 그만두는 건 20대 때보다 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젊음이라는 무기를 가진 20대들도 취업난을 겪는 시대에 내가 다시 돌아갈 자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거기다 매달 고정적으로 들어오던 월급과 겨우 모은 많지 않은 돈마저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적금은 고사하고 자동차 할부금도 아직 2년이나 남았다. 보험료까지 합하면 한 달에 백만 원은 우습게 빠져나간다.
이런저런 계산에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자기 합리화와 다분히 현실도피성 휴식에 대한 욕구가 더 크게 밀려왔다. 그러다 소설가 서진의 「파라다이스의 가격」을 읽다 한 문장에 주저 없이 하와이행을 결정했다
“하와이에서는 행복해질 준비를 한 사람들의 표정을 볼 수 있다.”
그래!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
그러니 하와이를 가자!
하와이에 가서 살아보는 것 괜찮지 않을까?
자신에게 주는 휴가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하와이라는 장소, 3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에 대한 부러움. 그리고 의문들이 따라왔다.
"하와이? 신혼여행지를 혼자서 간다고?"
"그 먼 곳에서 그렇게 오래?"
"한 곳에만 있으면 지루하지 않을까?"
"제주랑 거의 비슷하다고 하던데?"
특히 내가 어렸을 때나 어른이 된 지금이나 한국의 하와이로 불리는 제주에 사는 나의 하와이행을 의아해했다.
모두가 제주로 향할 때, 나 홀로 제주를 떠날 때
자기소개를 할 때면 자연스럽게 등장하던 고향 제주는 언제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사람들은 제주를 다녀가며 자연과 여유와 쉼을 느꼈고, 제주에 반했다. 제주여행, 한달살기, 제주이민으로 이어지는 행복한 제주살이의 인기는 쉽게 가실 줄 몰랐다. 하지만 모두가 살고 싶어 하는 제주를 나는 왜 떠나고 싶은 걸까? 제주에서 태어나 자랐고, 생활하는 토박이인 나의 제주는 왜 그들의 제주와 다른 느낌일까?
제주에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제주처럼 나에게도 제주가 필요했다.
서울시민들이 한강을 볼 때마다 기쁘지 않은 것처럼, 나에게 제주는 서울과 같은 하나의 생활공간일 뿐이었다. 나 역시 네모난 아파트에서 눈을 떠 네모난 회사로 출근을 하고 퇴근을 했다. 제주에 산다고 매일 바다로 뛰어들고, 오름에서 한가롭게 노을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감흥 없이 다가오는 흔한 네모의 풍경, 제주의 삶은 나에게 늘 똑같은 일상이었다.
단지 다른 풍경 속에 있고 싶었다.
이 동네엔 달콤한 냄새가 난다.
영화 「하와이언 레시피」 中
'살아보는 여행, 한 달 살기’의 열풍으로 누군가는 낭만적인 파리와 프로방스로, 세련된 런던으로, 힙한 도시 포틀랜드로, 가성비 좋은 치앙마이로, 가까운 도쿄로 떠났다. 그중에서도 나는 왜 하와이를 선택한 것일까? 로맨틱한 허니문 장소이자 가족여행으로 손꼽히는 세계 최고의 휴양지를? 그것도 혼자서?
나는 위시리스트에 하와이 여행을 적어 놓지도, 버킷리스트에 여행하며 한달살기가 있지도 않았다. 하와이에 대한 환상도, 나를 찾겠다는 거대한 목표도 없었다. 여행을 통해 무언가를 반드시 느끼고 돌아와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무엇보다 하와이에 간다고 당장 행복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유 없이 하와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하와이에서는 보이지 않는 행복을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누구나 인생에 한 번쯤 꿈꾸는 하와이, 그곳에는 분명 달콤한 시간이 흐르고 있을 것 같았다.
여유롭지 않은 자금, 낯선 타국에서의 생활, 돌아온 후 마주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을 모두 접고 나는 그렇게 하와이로 날아갔다.
<하와이 로망일기, 와이키키 다이어리>
평범한 대한민국 30대가 사표를 던지고 무작정 떠났던 하와이 한량 생활기입니다.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있는 그대로의 하와이를 만나고 돌아온 85일간의 와이키키 다이어리가
궁금하시다면 링크를 눌러주세요! Aloha.
1. Aloha from the Hawaii https://brunch.co.kr/@alohamay/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