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24일
한국 입국을 제한하는 나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늘어난다. 중국 언론사는 한국의 코로나 19 대응이 시원찮다며 훈수를 뒀단다. 국회도 셧다운 된 마당에 한국의 코로나 대응을 굳이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중국이...? 싶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중국이?
평소엔 여유롭게 넘어갔던 순간에도 극도로 예민해진다. 조심해야 하는 상황임은 분명하다. 출퇴근 길, 마스크를 안 낀 채 버스에 오르는 승객을 보면 나도 모르게 자리를 피해 앉는다. 지하철에서 마스크 안 끼고 재채기한 사람과 마스크로 무장한 사람이 싸운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지인의 말에 의하면 오늘 1호선에서 비슷한 이유로 싸우던 남성들 사이에서 "이 신천지 새끼야"라는 욕설이 등장했단다. 엘리베이터를 탄 사람들이 큰 소리로 떠들었다. 나오는 길 선배가 중얼거린다. "아, 제발.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쫌..." 자주 가는 커피숍 사장님이 구비해둔 손소독제를 사용하라길래 알겠다 대답하는데 맨얼굴이다. '사장님, 마스크는요' 하려다 참았다. 배드민턴 클럽 회장님이 조촐한 회식을 원하신다. '원하는 사람만 오라' 했지만 '안 간다'고 하기엔 민망하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라는 생각보단 이 질병이 사회에 낳은 화가, 곳곳에 도사리는 분노가 씁쓸하다.
궁지에 몰렸다 싶을 때 본성이 나온다. 매 순간 감정을 컨트롤해내는 사람들도 분명 많겠지만, 난 아직 그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인천공항 검역대급으로 무장한 방송국 출입구. 마스크 안 끼고 당당하게 등장하는 사람을 보면 괜히 도끼눈을 하게 된다. 이뿐만인가. 평소에도 그렇다. 내 일이 잘 풀린 날엔 퇴근길에 꽃 한 다발 사서 엄마한테 안겨드리는 여유가 있지만 머피의 법칙처럼 꼬이고 꼬인 날엔 세상 무뚝뚝한 딸로 변신한다.
오늘은 그도 저도 아닌 날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니 아홉 시. 겉옷은 바깥에 걸어두라는 출근길 엄마의 지령에 따라 현관문에 출입하기 전 발코니로 향했다. 거실 블라인드가 비스듬히 닫혀있던 터라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불 하나 켜놓은 어두운 거실에서 엄마는 티비를 보고 있었다. 탁자엔 간단한 쌈채와 고기가 놓여있었다. 혼자선 적적하셨는지 티비를 동무삼아 식사중이셨다. 발코니 마루 위로 또각또각 내 구둣소리가 분명 안에까지 들릴 텐데 좀처럼 알아차리지 못하고 티비에 시선이 향해 있는 엄마를 보며 알 수 없는 감정이 일었다. 코로나로 하루 종일 집에 있던 엄마의 하루는 어땠을까. 탁자에 쌈채 그릇, 고기 담은 그릇 놓고 리모컨을 돌리던 엄마의 마음은 괜찮았을까.
본의 아니게 나 없는 집, 엄마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머 안 추워? 밥은 먹었어? 더 먹을래? 고기를 구웠더니 맛있어" 하는 엄마다.
아마도 발코니 위 염탐이 없었다면 나는 오늘도 다녀왔습니다 무뚝뚝장치를 장착한 딸이었겠지. 오늘도 나에겐 결코 쉽지 않은 하루였지만, 더 이상 내 사람들에게 나 힘들다고 가시 돋친 사람은 되지 말자,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