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한 편씩, 에세이
지난 주에 이어 이번 주말도 방콕했다. 쉰다고 생각하면 기분 좋은 것을 못 나간다고 생각하니 답답했다. 마스크 끼고 카페가서 글이나 쓰다 올까 수십 번 고민하다 접었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또 출근한 오늘은 화요일. 가급적 회사에 있는 시간을 줄이자는 추세다. 긴급 파견과 휴가철까지 겹쳐 사무실은 텅 빈 느낌이다.
조금 일찍 나왔다. 가끔 퇴근하고 찾는 곳이 있다. 종로다. 광화문 교보문고를 좋아한다. 광장을 걷는 일도 갈 때마다 세종대왕을 다른 각도에서 찍는 것도 좋아한다. 정겨운 순화동까지 쭉 걸어 내려오는 길도 좋아한다. 내키면 버스 타고 청와대 뒤편에 올라윤동주 문학관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야경도 좋아한다. 그런데 오늘은 좀 다른 기분이었다. 그래서 중구로 갔다.
주말 내내 이태원 클라쓰에 푹 빠져있었다. 뭘 그런 걸봐, 모른 척하던 드라마. 옆자리 동료가 "저도 그랬는데 그냥 1화나 보자, 하고 보다 정신 차려보니 6화더라고요" 하길래 봤다. 하루만에 푹 빠졌다. 드라마 속 장면 중 저긴 어디지? 싶은 곳이 한 군데 있었다. 검색해보니 남산공원 백범광장. 한양 성곽길을 그렇게 걷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놓고 단 한 번 가본 적이 없다.
603번 버스를 타고 이대역에 내렸다. 노을이 예쁘다. 7011번 버스로 갈아타고 명동역에 내렸다. 밤공기가 시원하다. 버스 안에선 마스크 꾹꾹 눌러 낀 채 사람 없는 가장자리에 앉아왔는데 한적한 남산길에 도착하고 벗어재꼈다. 올라가던 길 작고 아담한 커피숍을 발견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주문하니 쿠폰 만들어드릴까요? 하신다. 다시 올지 모를 동네지만 오게 된다면 이 집에 와야지, 만들었다. 노래가 3곡 정도 흘렀을 때쯤 백범광장에 도착했다.
이런 광경이 펼쳐질 줄이야.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다. 탁 트인 경치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곳을 종종 찾게될 거란 걸.
드라마 속 강민정과 박새로이가 걸어 내려왔던 성곽길. 등장할 때마다 가봐야지 했는데 드디어 왔다. 별 거 아닌데 별 게 다 기쁘다. 윤동주 문학관 언덕에서 바라보는 남산과 백범광장에서 바라보는 남산은 전혀 다른 느낌이다. 이 각도에서 봐도 저 각도에서 봐도 남산타워는 참 예쁘다. 윤동주 문학관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서울 전체를 한눈에 담을 수 있지만, 해가 지는 쪽이 아니다보니 석양구경은 못한다. 백범광장은 좀 달랐다. 힐튼 호텔 너머로 가느다란 초승달이 떠올랐고 붉게 물든 하늘 사이사이로 몽실몽실한 구름들이 걸쳐 있고. 뒤로 살짝 고개를 돌리면 바로 앞에 남산타워가 짜잔 서있다. 노을을 훨씬 가까이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돌아오는 길. 회현역쪽으로 내려와 시청방면으로 걸어갔다. 오래된 구멍가게 옆 반짝거리는 조명 아래 칵테일집. 하나하나 다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다른 날 더 알찬 퇴근길을 위해 남겨뒀다. 곧 봄되면 또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