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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Oct 14. 2020

친절했을 뿐인데

서른 살을 며칠 앞둔 날. 한라산을 등반할 생각으로 제주도에 내려갔다. 마중 나온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물었다.


왜 혼자 왔어요?

내일모레 생일인데요, 혼자 백록담 가보고 싶었어요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사장님은 혼자 있는 내가 영 마음에 쓰이는 눈치다.


저녁은 어떻게 할 거예요?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해서 그냥 간단히 먹으려고요

아직 다섯 시밖에 안 됐는데. 여기 다금바리 맛있어요

네, 감사해요. 기회 되면 가볼게요


일단 알겠다던 사장님은 급기야 스텝 언니와 숙박객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혼자 오는 손님들을 위해서 이 정도는 기본이란 듯 사람 좋은 미소를 건네 온다. 내가 저기까지 나간 애를 불러왔어요. 우리 여기 일하는 애랑 손님처럼 혼자 온 여자분이랑 나가 있거든. 손님도 데려가라고 했지.


재차 거절했지만 통하지 않을 눈치다. 허허 그럼 못써요. 밥은 같이 먹어야지. 혼자 있으면 내가 마음이 쓰여. 선영이 너는 어서 두 분 데리고 횟집 다녀와. 우리 숙소 이름 말하고. 그러면 많이 주니까.


졸지에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횟집에 마주 앉아 다금바리 먹는 신세가 됐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회를 좋아하지만 말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먹고 싶을 , 마음 맞는 사람들과 가능한 이야기다. 광어도 우럭도 아닌 다금바리를 초면인 사람들과 먹어야 하다니. 안녕하세요? 어디서 왔어요?  살이에요? 어쩌다 제주까지 오게 됐어요? 다금바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대화를 나누며 꾸역꾸역  씹어 삼켰던 기억이 있다.


난생처음 혼자 떠난 여행이었다. 한라산에 다녀온 날 저녁도 그다음 날 아침도 사장님은 나를 절대 혼자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귀찮기도 하고 쉬고 싶기도 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그건 친절이었고 배려였다. 단지 나에게 조금 과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 후로 태국과 베트남, 일본을 다닐 때마다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해외라 그런 걸까. 외국인이라는 방패막이 있어서 일까. 그간 경험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혼자 온 이들이 혼자인 시간을 만끽할 수 있는 여유. 혼자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원할 때 그룹에 끼어들 수 있는 자유. 그룹과 개인 사이를 자유롭게 드나든다는 게 이리도 쉬운 것이었나. 혼자 떠나는 여행의 매력을 나는 그때 알아버렸다.


최근 휴가로 금진을 선택한 건 어디까지나 혼자 있는 걸 전제로 지낼 수 있다는 여건이기 때문이었다. 일주일 살기, 이주일 살기, 한 달 살기로 전국 곳곳을 홀로 누비는 여행자들이 늘어나는 요즘, 금진에서도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었다.


내가 온 첫날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이곳에서 먹고 자며 올여름을 보내온 스텝들이었다. 뉘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는 몰라도 술자리에서 곱씹을 안주거리 에피소드는 백 개 정도 가지고 있을 그런 관계였다. 개중엔 나처럼 뒤늦게 혼자 합류한 이들이 더러 있었다. 스텝들은 뒤늦게 온 사람들이 모두와 함께하는 자리마다 합류하길 원하는 눈치였다. 어쩌다 한 명이 빠진 자리에선 어김없이 조용한 취조가 시작됐다.


같이 안 먹는대? 왜?

또 안 먹는대? 어디 갔대?


술자리에서 빠져나간 사람은 자연스레 화두에 올랐다. 떠난 자에겐 소극적인 사람, 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한 번 빠지면 어쩌다 빠지는 사람이지만 연달아 빠지면 우리완 친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 이 되었다. 끝내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다 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어이 그 틈새를 파고들어 하나가 되려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사람에 치여 도망 왔다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과 식사를 하는 신세가 됐다. 어쩔 땐 달갑기도 했지만 어쩔 땐 버겁기도 했다. 드디어 혼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끊은 기차표였으니까.


하루는 술자리에서 스텝 멤버 하나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우리는 좀 위협적이야. 단체로 우르르 몰려다니잖아. 처음 온 사람들은 끼어들기 쉽지 않지.


다행이었다. 그걸 인식하는 친구가 있어서. 열명쯤 되는 사람들이 우당당탕 몰려다니며 오늘은 고기, 고기! 를 외칠 때 어느 누가 회! 를 외칠 수 있으며 다 같이 파도에 들어가자, 지금이야! 할 때 당당하게 저는 오늘 생리통..., 외칠 수 있을까. 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내가 다니는 배드민턴 클럽도, 회사에 친한 사람들도, 친한 친구들끼리 몰려다니는 것도. 어쩌면 누군가에겐 알게 모르게 소외감을 안겨줬을 테니까. 그건 그룹에 속해있는 개개인의 의도와는 분명히 다른 방향임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생각해볼 의미가 있다. 우리, 함께, 라는 말이 의도치 않게 자유를 옥죄는 단어가 될 수도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동시에 독단적인 자유 또란 존재할 수 없음을 절감하기도 한다. 인간(人間)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 끊임없는 상호작용이 이루어질 때 완성되는 단어인것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언니, 이리 와 봐요. 언니, 저녁 먹을 거예요? 챙겨주는 동생들이 고맙고 귀엽다. 친절했을 뿐인데. 배려했을 뿐인데. 혼자 있고 싶었을 뿐인데. 우리는 그 사이 어디쯤에 서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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