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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Oct 27. 2020

하루에 10분, 그게 뭐라고

체육관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아이가 있다. 배드민턴 레슨을 일찍 받고 싶어 빨리 온단다. 아이는 코치님이 짐을 내려놓는 사이, 레슨자 대기 명단 가장 위쪽에 이름 석자를 적어 넣는다. 코치님이 셔틀콕을 정리하면 팔다리를 쭈욱쭉 늘리기 시작하며 코트 주변을 기웃거린다.


어느 날은 늦게 도착한 나와 레슨을 같이 받게 되었다. 아이의 순번이 밀려났다. 내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한없이 기다려야 했다. 애꿎은 라켓을 만지작거리는 아이에게 말했다. 연지야, 미안하다. 괜히 나 때문에 레슨이 늦어지네. 빨리 받고 싶었을 텐데. 연지는 방긋 웃는다. 에이, 그럴 수 있죠. 괜찮아요.


아이가 얼마나 치열하게 시간을 쪼개가며 배드민턴에 투자하는지 알고 있었다. 흔쾌한 대답을 건네준 아이가 고마웠다. 욕심이야 얼마든지 부릴 수 있지만 기대와 어긋났을 때 여유를 내보이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그럴 수 있지. 말은 건넬지언정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크고 작은 일에 세상만사 내 맘 같진 않다, 좌절하면서도 선뜻 욕심까지 털어내기란 쉽지 않다. 그럴 때마다 조급해지는 나완 달리 그럴 수 있어, 다정하게 한 마디를 날려주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런 사람이고 싶었다. 일희일비랑은 거리가 먼, 마음 씀씀이가 넉넉한 사람이고 싶었다. 돈과 명예, 인맥을 갖춘 것보다 여유를 부릴 줄 아는 사람이 언제부턴가 더 멋져 보였다.


하루에 10분. 여유가 찾아오는 시간은 늘 밤이었다. 지나간 오늘을 곱씹었다.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까 그 사람은 이런 말이 하고 싶었던 거구나, 기분 나빴던 말을 마음에 담아둘 이유가 사라졌다. 좀 더 감정을 가다듬고 생각해볼 걸 그랬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여지가 생겼다. 조각나있던 일련의 사건들에 여유를 덧칠하니 제법 그럴싸한 그림으로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을 나이. 세상이 말하는 서른다섯과 나의 서른다섯은 늘 대립구도에 서 있었다. 나는 그냥 나로 살아온 건데, 어느덧 질문 앞에 '왜'가 따라오기 시작했다. 왜 결혼 늦게 해? 왜 연애 안 해? 왜 프리랜서로 지내? 왜 파주에 살면서 차로 안 다녀? 조금 다르고 조금 늦은 인생을 받아줄 여유가 이 사회엔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나부터 갖기로 했다. 그까짓 여유.


모든 게 빠르게 움직이는 광화문 거리에 서면 나는 느려진다. 바삐 걸어가는 사람, 음악을 듣고 있는 사람, 러닝 속도를 줄인 채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사람, 지나다니는 사람 사이 피켓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사람. 한 명 한 명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저마다 열심히 살아가는 중일 거다. 나름의 이유들엔 사연이 있고 희로애락이 있을 거다.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매일이 애틋하고 안쓰럽다. 행복하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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