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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Nov 04. 2020

나무한테 너무해

나는 나무가 좋다. 그런 내게 왜?라고 묻는 건 원빈이 어디가 잘생겼어? 나훈아가 노래를 잘 불러?라는 질문과 같다.


안타깝게도 내가 느끼는 나무의 가치와 세상이 요하는 나무의 가치는 많이 다른 듯하다. 애초에 가치를 운운하는 게 나무에겐 실례인 것 같지만 말이다.


이 동네로 이사온지 16년이 되어간다. 결코 짧지 않았던 세월 동안 출근길과 퇴근길에 마주하던 나무 여섯 그루가 있다. 내 키를 오십 번 정도 더해야 닿을랑 말랑한 그 나무들 꼭대기쯤엔 늘 달이 걸려있었다. 퇴근길 9시쯤, 버스정류장에 내려 골목으로 꺾어 들어오면 나무 끄트머리에 간당간당 걸린 달이 보인다. 완연한 달을 보기 위해선 그 나무를 다 지나야 했다. 보일 듯 말 듯 가지 사이로 빼꼼히 드러나는 달을 볼 때면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사진을 찍고 싶은데 조금 머뭇거리는 사이 달의 위치가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면 마음을 고쳐먹고 나뭇가지에 걸터앉은 달의 모습을 찍었다. 오롯이 보이는 보름달보다 나뭇가지 사이 간신히 보이는 초승달을 나는 더 좋아했다. 그러니까 나무란 달을 보는 순간까지도 내게 필요했던 존재였던 것이다.


어쨌거나 나의 매일을 마중하고 배웅했던 나무 여섯 그루는 하루아침에 몽땅 사라져 버렸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알고 싶지도 않았다. 바로 앞 식당집주인의 민원일 수 있고, 마을 정비 차원일 수 있고, 도시재생 차원일 수 있다. 어쨌거나 나무가 저 좀 잘라주세요, 했을 리 없었을 테니 이유는 궁금하지 않았다.


아직은 뒷산도 울긋불긋 가을 정취를 흠뻑 뿜어내고 있다. 하지만 곧 겨울이 온다. 아침저녁으로 휑한 그곳은 더욱 휑하게 느껴질 것이고 나는 올 겨우내 그 휑한 공간을 보며 덩그러니 남겨진 나무 밑동을 안쓰러워하겠지. 요 며칠 사라진 나무에 대한 나의 분노를 십원 어치 사그라들게 만들어준 글귀로 오늘의 나무 일기를 마쳐야겠다.




아내가 붙인 저의 별명은 '나무 아버지'입니다. 저는 매해 봄마다 그 무식하고 잔혹한 나무 살해행위를 보면서 못내 화가 납니다. 아내는 그런 저를 보면서 마땅찮아합니다. 나무에 가위질을 하는 것이 나무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나요. 그 말이야말로 인간 본위의 궤변입니다.


나무들은 자기네에게 필요 없는 것이면 잎 하나라도 매달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 그 모습은 생명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하기 때문에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나무들도 스트레스를 받고, 몸살을 앓고 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가지를 잘랐을 때 흘러나오는 수액이 바로 나무의 피라는 것을 인간들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 조정래 <홀로 쓰고, 함께 살다>




마지막으로 이 땅에 살아 숨 쉬는 모든 나무들의 안위를 빌며 나무 퍼레이드 사진전으로 마무리.


여름 내 나의 방 창문에서 보이는 나무


흥선대원군의 별장, 석파정의 나무
정동진역 마스코트 소나무
상암근린공원의 나무들
경기도 연천 비무장지대 반경 2km 에 살고 있는 나무
파주출판단지 건물 외벽에 달라붙은 나무
강릉 앞바다 날씨 좋았던 날 한껏 포즈를 취한 나무


경순왕릉 앞에선 아버지와 나무


빛을 담아버린 파주의 나무


서촌, 돌담길과 어우러진 나무


여름과 가을의 경계선에서 만나버린 부암동의 나무


올초, 마당에서 봄소식을 알려오던 매화나무
종로구 사직동, 건물 사이 존재감 드러내는 나무


파주 금촌, 라면맛집 앞에 서있던 나무
올 봄, 나이키런에 빠져있을 때 자주 마주치던 나무
출판단지 미모뽐내는 나무
강릉 금진분교 운동장, 물에 비친 나무
파주, 우리 동네 노을 시간 산책하면 볼 수 있는 나무


그리고 며칠 전 사라진 나무 여섯 그루
나무와 고무줄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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