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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Nov 29. 2020

세 번째 결혼식

안녕하세요, 저 OO이랑 일본 출장 같이 갔던 유승민 작가예요. 계속 미뤄져서 고생 많으셨죠. 드디어 오늘이네요. 축하드려요.


그녀와 아주 똑 닮은 눈매의 어머니가 환한 미소로 반긴다. 아휴, 안 그래도 OO이가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아버님은 예상했던 대로 산을 몹시 좋아하실 것 같은 인상이다. 두 분 모두 참 그녀를, 아니 그녀는 참 두 분을 고루 빼닮았다. 온화하고, 따뜻하고, 선한 얼굴. 결혼식장에서 말로만 듣던 가족이나 조카, 친구들에게 말을 걸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기어이 아는 척해서 축하를 건네고 싶어 지는 마음. 정말 좋아하는 사람의 결혼식은 늘 그렇다.


코로나로 결혼 삼수생이란 타이틀을 달던 그녀가 오늘 드디어 결혼했다. 그녀는 나의 직장 동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일본 도쿄 한복판인 신주쿠 공원이었다. 혐한시위와 재특회(시위를 주도하는 일본 우익단체)를 취재하기 위한 출장이었다. 나와 VJ가 이틀 먼저 일본에 가 있었고, 그녀는 휴가에서 복귀하자마자 곧바로 일본으로 건너왔더랬다.


일장기와 전범기가 휘날리는 공원엔 고막을 찌를 듯한 확성기 소리가 여기저기 울리고 있었다. 대부분 조선인 혐오, 조선인 추방, 죽어라 나가라 싸우자, 라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시위를 진압한다는 이유로 수백 명씩 내보내 졌지만, 어디까지나 카운터스(혐한시위를 반대하는 시민단체)를 몰아내기 위한 명분일 뿐 시위는 경찰의 옹호 아래 진행됐다. 취재진이었던 우리는 경찰과 우익단체의 눈을 피해 공원 구석구석 숨어 다녀야 했다.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 들려오고, 언제 들킬지 몰라 심장이 두근거려 다리에 힘이 풀릴 때쯤 저 멀리서 베이지색 코트를 입은 그녀가 나타났다.


초면이었지만 부둥켜안았다. 너무 반가웠다. 아군이 두 명에서 세 명으로 늘어난다는 이유도 큰 몫을 했지만, 아이템에 대해 같이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늘어난다는 것 자체가 큰 힘이었다. 격한 반응에 그녀는 다소 놀란 듯했지만 이내 따라 웃는다. 말씀만 들었는데, 여기서 뵙네요. 반가워요 작가님.


두어 번의 일본 출장과 같은 코너에서의 2년.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농밀했다. 직장생활의 모토는 사람을 믿지 말자, 였는데 그녀에게만큼은 한없이 무장해제됐던 시간이었다. 그녀는 어떤 아이템을 취재하든 늘 신중했고 듬직했다. 조금이라도 자극적이거나 편파적으로 흘러간다 싶으면 가차 없이 판을 뒤집는 스킬을 발휘했다. 조용하고 나긋나긋하지만 강단 있는 목소리, 굳은 심지. 일할 때 단 한 번도 취재 관점이나 궁극적인 지향점이 어긋난 적 없는 유일한 동료이기도 했다.


식을 20분 앞두고 식장에 도착했다. 서둘러 신부대기실을 찾는데 저쪽 웅성웅성거리는 인파 사이로 하얗고 작은 그녀의 얼굴이 보인다. 2부 피로연이 생략됐다며 직접 나와 하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던  것이다. 한 명 한 명씩 반기며 사진을 찍는다. 종종 바깥에서 식사자리라도 가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책 한 권, 편지 한 장이라도 꼭 챙겨 와 선물이라고 쥐어주던 평소 그녀의 마음 씀씀이가 식장에선 몇 곱절 더 빛이 난다. 하객들은 덩달아 신나 했다. 긴 줄을 만들어 그녀와의 조우를 기다리기 바빴다.


축사는 그녀의 20년 지기 중학교 친구 세 명이 나란히 서서 이루어졌다. 하굣길에 사 먹은 떡볶이 안 줬다고 삐졌던 네가 이렇게 결혼을 하는구나, 로 시작한 한 친구의 축사에 그녀도 친구도 울음을 터뜨렸다.


카메라도 노래도 달가워하지 않는다던 그녀의 신랑은 아주 멋진 중저음의 허스키 보이스로 축가로 사랑을 고백했다. 해외에 거주하시는 신랑의 부모님이 코로나로 입국하지 못해 형과 형수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머나먼 땅에서 두 분 나란히 앉아 촬영한 영상을 신랑 신부와 하객들이 한자리에 모여 본다. 영상 속 어머니도 아버지도 어딘가 모르게 편안한 인상인지라 참 둘이 잘 만났다, 는 말을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다. 영상편지 처음부터 끝까지 늘 그녀의 이름부터 부르던 시어머니는 당신들의 부재까지 신경 써주신 사돈께 감사하다는 말로 매듭을 지었다. 무엇하나 편안하지 않은 게 없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신랑 신부가 행진하기 전 5분의 시간이었다. 코로나 시대에 결혼을 알린다는 것, 청첩에 응한다는 것, 참석을 고려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임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기에. 하객석을 메운 사람들에게 양가 식구들과 신랑 신부가 나란히 서 고개숙여 인사를 보내온다. 곧이어 신랑과 신부가 마이크를 들고 하객들에게 감사인사를 올린다. 4월부터 세 차례나 결혼 날짜를 미루게 되었다. 본의 아니게 일 년에 걸쳐 여러분의 일정을 비워달라 부탁한 셈이라 죄송하다. 이제 12월, 저희도 드디어 결혼했으니 코로나도 종식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며 오늘 오신 한 분 한 분 기억하며 잘 살겠다고. 얼마나 겸손하고 사랑스러운 멘트였는지!


식장에서 만난 동료 가운데 한 명이 고백한다. 저는 식장만 오면 꼭 그렇게 결혼이 하고 싶더라고요. 빙 둘러서 있던 사람들이 끄덕끄덕 동감을 표했다. 나 역시 그랬다. 세 차례 미뤄지면서 마음고생이 참 심했을 법도 한데 어느 것 하나 무리 없이 자연스럽게, 진심이 뚝뚝 묻어 나오는 결혼식을 이뤄낸 부부. 보고만 있어도 덩달아 행복해지는 기분이다.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을 만나 짝을 이룬다는 건 주변 사람들에게 몇 곱절 좋은 에너지를 나눠준다는 것. 결혼식을 다녀오면 꼭 이렇게 좋은 짝들이 전해주는 따스함에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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