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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Dec 02. 2020

외동의 숙명

가족의 모습을 색다른 자리에서 본다는 건 내게도 꽤나 드물고 특별한 일이라 형제가 없는 나에겐 오늘이 더 소중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조금씩 공감대가 형성되어가는 게 얼마나 기적처럼 고맙게 느껴지는지.


외동을 자녀로 둔 부모에겐 아이가 홀로 남겨질 세상이 덜어낼 수 없을 짐일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너 걱정 안 해,라고 언어로 표현된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걱정을 많이 해왔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걸지도.


아버지가 만든 영화를 영화관 객석에 앉아 보고 있었다. 시작하자마자 깊고 푸른 진도 앞바다와 영화 타이틀이 스크린에 떠오르던 순간 시사할 때도 안 흘렀던 눈물이 흘렀다. 아마도 내 앞자리에, 옆자리에, 뒷자리에 앉아있는 언니들과 동생들이 함께한다는 걸 오롯이 체감했기 때문이겠다.


반주 한 잔 걸쳤을 때완 달리 술 한 방울 안 들어갔을 때의 아버지는 때 묻지 않은 인간의 모습 그 자체다. 매끄럽고 능숙하고 수려한 말솜씨 대신 긴 정적이 흐르기도, 말을 더듬기도 한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너무나 몰입하다 질문을 잊어버려 사회자에게 되묻기도 한다. 그런 그의 모습 자체가 나의 모습이었고, 그런 우리의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인다는 게 왜 그렇게도 편안했는지 모르겠다. 준비된 답변보다 조금의 시간을 두고 골똘히 고민하는 잠깐의 마가 좋았고, 중복된 질문에도 색다른 견해를 표현하기 위해 마이크를 붙들고 있던 그의 모습 또한 좋았다.


포장되지 않은 날것의 모습을 보인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이제는 조금 변했다. 꾸며지지 않은 모습을 드러낼 때 더할 나위 없는 쾌감을 느낀다. 수십 년에 걸쳐 다져진 아버지의 진심이 조금씩 드러나는 모습. 짧은 GV시간 동안 아버지가 내 아버지라 좋고, 엄마가 내 엄마라 참 좋구나, 곱씹었던 밤이었다.


동생들과 언니들은 양손에 뭘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예약하지 않으면 못 사는 떡집에서 사 왔어요. 관객과의 대화할 때 아버님 목 타실까 봐 생수 챙겨 왔어요. 오늘 어머님 생신이라면서요, 케이크 가져가서 집에서 파티하세요. 영화는 지각했지만, 그래도 빈손으로 올 수 없었다는 듯 수줍게 꽃다발을 내밀던 동생까지.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기던 아버지는 젊은 세대에게 우리의 것을 잊지 말라 당부했고, 그 지름길은 연대와 공동체가 될 것이라 강조했다. 관객석을 채웠던 연대와 공동체를 아버지는 보았을까. 당신의 딸은 너무나 단단한 사람으로 자라고 있으니 걱정 마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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