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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Dec 03. 2020

네가 착해서 그래

배드민턴 클럽에 불화가 생겼다. 거리두기 격상으로 체육관이 9시까지 운영되면서 외부인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언제 어디서 치던 사람일지 모르는 일반인(클럽 동호인이 아닌 사람)과 게임을 치지 못하도록 클럽 규정을 정해놓은 것. 명분은 코로나 확산 방지지만, 사실상 무료로 이용하고 있는 공단 시설이라 엄밀히 따지면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 규정을 정하기까지도 꽤 찬반이 갈렸다. 나름 이 동네에서 적게는 10년 길게는 2~30년씩 치던 사람들이다 보니 같은 자치구 클럽 사람들은 그야말로 이웃사촌이다. 느그 집구석에 숟가락 몇 개인지는 몰라도 느그 딸내미가 몇 살인지는 아는, 그런 사람들에게 미안한데, 당신이랑은 운동 못해, 내쳐야 하는 상황이 와버린 거다.


문제는 규정으로 정해놓았음에도 운영진의 눈을 피해 혹은 과하게 당당한 포스로 외부인을 끌어들여 게임을 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에 영하의 기온을 맴도는 마룻바닥이다 보니 나오는 사람이 줄어버린 게 화근이다. 운동하러 나와도 칠 사람이 없어서 놀러 온 타 클럽 지인이랑 쳤는데, 시퍼렇게 어린놈이 운영진이랍시고 와서 치지 말라 훈수를 두니 어르신은 화가 난 것이다. 나이가 어려도 운영진은 클럽을 이끌어나가는 사람 들인 만큼 참고 따라주어야 하는데, 그분은 그러지 못했던 모양이다.


사실 젊은 사람이라고 해서 규정을 잘 지키는 건 아니다. 교묘하게 눈을 피해 외부인과 게임을 하거나 아예 클럽 사람이 아닌 신분으로 친구들을 데리고 찾는다. 그럼 안 되지, 주의를 주면 그제야 알았다는 듯 능글맞게 웃으며 제자리로 돌아온다. 운동을 나갈 때마다 그런 친구들을 보았고, 본인들도 그렇게 행동하니 남들에게도 관대할 거라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맘 같아선 그냥 체육관 닫아버렸으면 좋겠지만.


유독 문제를 일으켜온 어르신이 며칠 전 또 외부인과 게임을 쳤고, 체육관에 있던 운영진은 마찰을 일으키기 싫어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운영진 카톡방에 그를 향한 분노의 메시지를 보냈고, 나머지 임원진들은 덩달아 분개하며 제명시키자는 안건을 만들어 임원 밴드에서 투표를 하기 시작했다.


사적인 감정이 아니고서야 사람 하나를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내칠 수 있겠나, 싶어 경고를 하면 어떻겠냐 물으니 네가 착해서 그래,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착해서 그렇다니. 극단적인 선택지에 반기를 들면 그저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인가.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은 없애야 하고, 고름은 살이 되지 않는 법이라며 잘라내야 한단다. 징계위원회까지 열겠단다. 사람 하나를 제명시키는 게 이렇게 단번에 무 자르듯 가능한 일이었던가. 새삼 회의감이 든다.


아마도 내가 어르신과 똑같이 행동했다면 어땠을지. 클럽에 큰 역할을 맡고 있는 누군가가 같은 행동을 저지르고 그저 능청맞은 사과만 잘 건넸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지. 뒤집고 또 뒤집어 생각해봐도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정답은 없다. 회의에서 다수가 지향하는 쪽으로 결정이 날 것이다. 나는 찬성했는데, 내가 가깝게 생각했던 너는 반대를 하다니. 배신감에서 비롯된 잡음이 난무할 것이다. 고작 100명 있는 클럽인데 뭐가 이렇게 힘든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논리였기에 어르신의 표현이 조금 과하다 싶긴 했어도 제명은 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클럽 사람 99명이 맞다고 해도 아니라고 말할 순 있다. 통하지 않을 뿐.


고민이 된다. 그냥 모르는 척 다수의 의견대로 같이 내 마음도 흘려보내야 맞는 것인지. 아닌 건 아니라고 끝까지 바락바락 싸워야 하는 것인지. 어르신과 대화를 시도해 임원회의 전에 약속을 받아내야 맞는 것인지. 나에겐 이게 집단 따돌림처럼 느껴지는데 나만 그런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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