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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Jan 10. 2021

정적을 깨는 소리

청포도 한 알을 입에 넣고 깨무니 시큼한 과즙이 터져 나온다. 한 알, 두 알 청포도 씹는 소리를 제외하곤 기척을 내는 존재가 없다. 온 집안이 고요하다. 문득 평소엔 들여다보도 않는 티브이 뉴스나 틀어볼까 거실 한편에 놓인 검은색 화면을 바라본다. 매일 저녁 아홉 시만 되면 소파에 앉아 뉴스를 보기 시작하는 아버지를 이해한다. 


아버지는 8시 55분에 알람을 맞추어놓는다. 때때로 일찍 귀가해 저녁 먹고 한창 고요함이 잦아들었을 때 정적을 깨는 것이 그 알람 소리다. 무슨 뉴스 본다고 알람까지 맞추나 생각했다. 아버지에겐 뉴스가 중요할 수 있겠으니 별 말 건네진 않았다. 그저 알람이 울려대는 휴대폰을 들고 가 뉴스 시작하겠네 한 마디 얹을 뿐이었다. 


일요일은 아침부터 밤까지 나 홀로 지내는 날이다. 별다른 외출이 없다면 장시간 산책을 하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시간은 집 안에서 보내게 된다. 평일 출퇴근 시간마다 빵빵 고막에 울려 퍼지는 음악을 듣고 다니니 일요일만큼은 쉬게 해주자 싶어 에어팟은 서랍장에 고이 넣어두었다. 아침에 까악깍 거리는 까치소리와 푸드덕거리며 온 마당을 날아다니는 물까치 소리를 제외하곤 소리가 없는 집구석이다. 


그러니 아버지가 매일 앉아있는 이 자리에서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나면 아버지는 무척 반가울 것이다. 방에 놓아두었던 휴대폰에서 밤 아홉 시가 되어감을 알리는 알람 소리도 조금은 반가울 것이다. 


종일 집에 있으니 사람의 목소리가 그립기도 하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기다렸다는 듯 일어나는 아버지에게 왜 좀 더 살갑게 대하지 못했나 생각이 드는 것이다. 방문 사이로 빼꼼 고개를 디밀고 뭐해? 묻는 것도. 이따금씩 유자차를 마시자던가 홈트를 해야 한다던가 쫑알거리며 아버지 옆을 지나다니는 나의 목소리도. 아버지에겐 반가움이었겠구나,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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