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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Feb 08. 2021

클럽하우스 열풍이 남겨준 3초

지난해 출시한 후로 올초 연일 포털사이트를 도배했던 '클럽하우스'의 열풍도 시들해진 모양이다. 실리콘밸리 창업자 폴 데이비슨과 구글 출신 로한 세스가 만든 '쌍방향 음성 기반 SNS'. 오로지 목소리만으로 이루어지는 형태다. 타이핑을 할 필요도 얼굴을 내보일 필요도 없는 대신 전화번호로 인증해야 가입할 수 있다.


줌(Zoom)처럼 얼굴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다는 점은 꽤 유용했다. 침대에 뒹굴거리며 '말만 하면 되는 식'이니 내키지 않으면 '듣고만' 있어도 된다. '거물 놀이터'라 불리는 만큼 각 분야의 샐럽들도 언제 어디서 등장할지 모른다. 최근엔 지식 콘텐츠 플랫폼 TED가 클럽하우스와 손을 잡았다. 평소 소식만 팔로우해온 '나만의 스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장점은 어마어마하다. 누구나 원하면 방에 들어갈 수 있거니와 온라인 강연, 특강처럼 가입하고 절차를 밟아야 가능했던 번거로움도 한순간에 건너뛰었다. 워낙 광범위한 데다 방에 들고 나는 행위가 자유로운 장이다 보니 전적으로 사용자들이 만들어가는 시스템이다. 관심이 간 건 일본 쪽 네트워크였다.



 



독특한 소재들이 많았다. 도쿄 내 성전환자들이 모여 자유롭게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방을 발견했고, 정치인의 발언에 대해 토론하는 방도 눈에 띄었다. 특정 다수와 저런 소재로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 신선했다. 그리고 유독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소재가 있었으니.


 <청각장애인 편 : 클럽하우스 배리어프리화를 생각하는 방>

배리어프리란 장애인이나 고령자도 사용하기 편하게 장벽을 제거하는 일을 뜻한다. 오로지 목소리에 의존해 운영되는 앱과 청각장애인. 언뜻 이색적인 단어의 조합이라 느꼈다. 너무도 거대한 장벽 앞에 선 소수자의 모임이 아닐까. 잠깐이었지만, 경솔했던 나의 편견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방을 개설한 건 고3 여학생이었다. 간단한 수어 동영상을 만들어 SNS에 공유한다는 그 여성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수화에 익숙한 환경에서 살아왔노라 고백했다. 남동생이 청각장애를 가졌던 것이다.


여성이 대화의 장을 열었다. 카랑카랑하지만 앳된 기가 뚝뚝 묻어나는, 그럼에도 참 야무진 목소리였다. 스피커(방 내에서 대화가 허용된 사람, 주최자가 결정할 수 있다)는 최대 여섯 명으로 제한하고 싶다.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싶지만, 질서가 지켜져야 하니까 의견을 충분히 어필했다면 다른 분에게 양보해 주시기 바란다, 는 내용이었다. 다수가 흔쾌히 공감하는 눈치였고,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었다. 참가자 가운데 한 명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지인 중에 청각 장애인이 있어요. 보통 가족 중에 청각 장애인이 있으면 나머지 가족은 수어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거든요. 클럽하우스 앱을 켜놓고, 가족 한 명이 같이 화면을 보면서 수화로 설명해주는 방법은 어떨까요?"  


기술자가 등장했다. 오체불만족 저자인 오토다케 씨가 타는 전동차, 와 같은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에요,라고 자기소개를 한 그 남성이 말했다.


"가족이 해결하면 되지 않겠냐는 말씀들을 많이들 하시죠. 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가능한 건 아닙니다. 장애인이 혼자 가능한 일을 늘려가는 것, 그 방향성이 저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애를 가진 당사자에게도 그렇고요. 개호(간병과 수발)가 필요한, 몸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은 화장실을 다녀온 후에도 누군가가 휴지로 닦아줘야 해요. 그런 현실 속에서 당사자는 생각할 겁니다. 나는 이 사람 도움 없이 살 수 없구나. 우리는 그분들이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해요. 기술은 그걸 뒷받침해줘야 하겠죠.

구글 안드로이드에서 청각장애인 대상으로 음성을 자막으로 변환시켜주는 앱을 만들어냈어요. 줌으로 이야기할 때 대화 내용이 화면에 나오는 툴이에요. 클럽하우스가 얼마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저희 기술자들도 궁금해져서 시험 삼아 안드로이드 기계랑 연결해서 음성을 자막으로 변환이 가능한지 시도해봤는데, 연결이 마냥 매끄럽지만은 않았지만 되더라고요. 가능성을 확인한 셈이죠."


또 다른 기술자가 한 마디 얹는다.


"클럽하우스의 장점이 서로 오디오가 물려도 (말이 겹쳐도) 임장감(녹음이나 라디오 수신기에 의한 연주가 마치 실내에서 연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일)을 준다는 점이죠. 막힘 없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는 게 장점인데, 자막으로 만드는 작업은 현재 컴퓨터 기술로는 어려운 부분이 있긴 합니다. 저희 연구실에 청각장애를 가진 학생이 있는데, 앱으로 듣고 싶은 소리를 등록하면 그 소리가 났을 때 진동이나 색깔로 전달이 되는 시스템이에요. 누군가를 부르는 이름이라던가, 개가 짖는 소리라던가. 뭐, 요즘은 소리를 진동으로 바꿔서 촉감으로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되긴 했지만요."


한 명이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여 발언권을 얻었다. 그녀는 규슈지역에서 수화통역을 하는 비장애인이었다. 

"제가 일하는 곳은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이 대다수인 일터예요. 저는 그분들의 수화 통역을 담당하는 사람이고요. 청각장애니까 즐길 권리가 없다, 선택지가 아예 없다는 건 누군가에겐 처절하게 슬픈 말로 다가올 거예요."


대화에 등장했던 안드로이드 툴은 음성을 자막으로 자동 변경해주는 기능인 모양이었다. 청각장애인용으로 개발됐고 현재 줌을 이용하는 청각장애인들은 이 기능을 사용한다고. 그런데 의외의 곳에서 효과를 발휘한단다. 가령 영어가 익숙하지 않아 미처 알아듣지 못해도 음성이 자막으로 변경되면서 뜻을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거나. 장애인 대상으로 만들어진 앱이 비장애인에게도 도움이 되는 걸 보며 이러한 앱 개발의 미래가 충분히 긍정적으로 보인다고 기술자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고3 여성이 발언권을 이어받았다.


"기술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수화를 배우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수화가 멋있다고 생각해서 배우는 사람도 생겨나고 있고요. 손가락이 표현하는 그 고유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사람들도 있고요. 각기 다른 이유로 수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능성이 열릴 거예요."


몇몇 스피커들이 동조했고, 개중 한 명은 오른손에 마비 증상이 있어 장애 판정을 받았는데 한 손으로도 수어가 가능한지 물어왔다. 


"당연하죠. 양손으로만 수화가 가능하면 우산 들고 있을 때 운전하고 있을 때 다 불가능하지 않겠어요? 한 손으로도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어요. 수화는 손의 움직임뿐만이 아니라 표정, 어깨, 몸짓과 같은 비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요. 사실은 얼굴로 전달할 수 있는 게 더 많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화가 한창 무르익어갈 무렵 양쪽의 청력을 완전히 잃은 여성이 등장했다. 그녀는 유디 톡이라는 앱을 사용해 클럽하우스에 참가했다고 했다. 음성을 인식하고 화면에 문자를 띄워 바로바로 변경해주는 식인데, 약간의 시차가 생기긴 해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단다.


"발성이나 목소리 상태에 따라서 잘 변환이 안 될 때도 있지만 80%는 문자로 변환이 되고 있어요. 저는 청력을 거의 잃었지만, 충분히 이 정도면 여러분의 대화를 이해할 수 있어요."


참가자들은 그녀를 위해 발언하기 앞서 자신의 이름부터 말하기로 정했다. 성별, 억양의 높낮이와 상관없이 문자로만 변환되는 탓에 누가 스피커인지 알 수 없을 그녀를 위한 약속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OOO입니다. 우선 청각장애인은 이 앱을 사용하기엔 불편함이 있을 거라 확신에 가까운 편견을 가져 미안합니다. 클럽하우스 3일째라고 하셨는데, 어떠신가요. 즐거운 시간 보내고 계신지요.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잠시 정적이 흘렀고, 여성이 대답했다.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들끼리 있으면 사실 클럽하우스에 대한 정보를 알 수가 없었어요. 좋은 게 있나 봐. 재미있나 봐, 흐응,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데 비장애인이랑 이야기하다 보니까 되게들 재미있어하더라고요. 어떤 식으로 즐기고 있나 궁금해서 참가해봤어요. 안 들리는 사람도 가능할지 궁금해서 유디 톡을 이용해봤고요. 그동안 접해본 적 없는 세계라 새로운 느낌으로 즐기고 있고요."


매우 정확한 발음과 적당한 공백을 동반하며 질문자가 화답한다.


"감사합니다. OO씨. 저는 아무개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보다 다양한 분들이 이걸 즐길 수 있을까요?"

"누가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도록 말하기 전에 이름을 말해주면 좋을 것 같고요. 어쩌다가 말이 겹치거나 이어져도 자막이 하나로 연결돼서 이해하기가 어렵거든요. 그리고 음... 다양한 사람들이 이 방에 존재하고 있다는 걸 받아들여주는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약 한 시간 반 가량의 대화가 진행되었고 초반에 등장했던 기술자가 마무리를 지으며 방은 종료되었다. 클럽하우스의 이점은 '간편함'인데,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두기 시작하면 그러한 가벼움이나 템포감을 잃을 거란 우려도 있다는 것. 목소리가 어우러져 문맥을 이루고 음성으로 감정이 전달되는 매력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점. 그런 점에서 기술은 메이 저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는 점까지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되뇌듯 말을 옮겼다. 그리고 마지막.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할 거다. 어쩔 수 없잖아, 안 들리면 할 수 없지, 넘길 수도 있겠지만 기술자로선 되도록 모든 사람들에게 그 시술의 매력이 닿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고. 그리고 약속된 시간을 다한 토크방은 소멸되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신선했다. 이런 주제로 낯선 타인과의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 암묵적으로 당연시되는 차별, 배제를 모르는 척할 법도 한데, 백 명 하고도 열다섯 명이 몇 시간 동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는 것. 초청을 하거나 사전에 약속이 되어있었던 것도 아닌데, 장애인 당사자를 비롯해 관련된 가족, 기술자, 관련 업무 종사자, 비장애인들까지 어우러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 고3인 학생부터 한 분야의 숙련된 전문가들이 한 가지 주제에만 집중한 채 장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 이 모든 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양쪽 청력을 잃은 여성이 보다 정확하게 오고 가는 말들을 이해할 수 있게끔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며 말을 이어가던 참가자들. 말문을 열 때마다 본인의 이름을 또박또박 말해주었던 것. 자유롭게 목소리가 뒤섞이는 것을 허용한다는 게 유일한 매력인 이 소통의 장에서 모두가 3초씩 찾아드는 정적을 한결같이 받아들여주었다는 것. 사실 어쩌면 큰 변화라는 건 그리 대단한 능력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3초의 기다림으로 그녀가 모든 대화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처럼.


클럽하우스의 열풍이 식어버린다 한들, 디지털과 비대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음성 SNS는 더 이상 '새로운 열풍'이 아닌 일상이 되어갈 것이다. 침대에 드러누워 전세계 각지와 연결되는 시간을 살며 한 번쯤은 3초의 기적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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