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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Feb 09. 2021

별 사진 하나에 큰 의미를 부여한 건가

오랜만이다. 밤하늘에 유난히 별들이 반짝이는 걸 보았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가는 퇴근일이었다. 그날따라 몸도 잘 안 따라주고, 라켓 타구감은 마음에 안 들고, 집에 가서 할 일은 남아있어 온몸이 찌뿌둥하게 느껴졌다. 모든 게 마음에 안 드는 날. 그런 날이 아주 가끔 찾아온다. 그래서 그 별들이 다른 때보다도 더욱 선명하게 눈에 담겼는지도 모른다.


사진을 찍고 싶었다. 아는 별자리 라야 북두칠성, 오리온이 전부지만, 하늘엔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들이 더 많았다. 촬영 버튼을 누르니 잠시만 가만히 기다리세요, 문구가 떠있다. 숨을 참고 기다렸다. 천천히 흘러간 3초 뒤 화면의 사진 속엔 내가 본 그 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사진을 누군가에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냥 별 일 없는 하루. 그런데 왠지 모르게 지치는 하루. 그런 하루의 끝에 길바닥에 서서 이것 좀 봐, 하고 카톡을 보낼 수 있는 사람. 그 감정은 맨날 재잘거리며 수다를 떠는 고등학교 친구를 향한 것도, 대화나 쿵작이 잘 맞는 회사 동료를 향한 것도 아니었다. 연애의 감정이었다.


기쁘다. 그 감정이 돌아왔다. 살면서 연애를 하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늘 주파수는 맞추고 살아왔다. 멋진 사람을 보면 멋지다, 감탄했고 지인들이 잘생겼다, 하면 나의 취향은 아니다,라고 확고하게 말할 줄도 알았는데 요 근래엔 그런 게 없었다. 도통 맛있는 걸 앞에 두고도 입맛이 없는 무식욕증상처럼. 온갖 명품백을 다 갖다 놔도 눈길조차 내어주지 않는 사람처럼. 영 익숙해지지 않는 감정이라 드디어 무기력해진 것인가. 이렇게 살다가 오십 살, 육십 살이 되어 나는 내가 결혼을 못 할 줄은 몰랐어요, 하지만 지금 내 삶이 좋아요, 애써 웃은 중년의 흰머리 여성이 되는 건 아닐지 조금은 두려웠다.


사실 식욕도 돌아왔다. 주변 사람들이 들으면 코웃음 치겠지만, 한동안 아니 일 년 가까이 예전의 식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위장에 이상이 생긴 건지 오장육부가 말 그대로 확찐자가 되어 미각마저 잃은 것인지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도 오롯이 식감을 느끼지 못한 나날이었는데 말이다.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불러 속이 부대꼈고, 틈만 나면 가스활명수를 사 먹었다. 물론 도움이 되진 못했다. 저녁을 생략하고 아침에 일어나도 여전히 배가 부른 느낌에 병원에 가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는데, 말끔히 사라졌다.


그러니까 사실은 배가 고프면 음식이 맛있는 것처럼 사람을 좋아한다는 일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욕구라 두 가지가 동시에 제자리를 찾아온 게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콘크리트가 적당한 시간을 두고 수분을 머금은 채 굳을 때까지 가만히 내버려 두어야 하는 것처럼 어쩌면 이 무감각증도 지나왔어야 하는 일련의 과정이었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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