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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Feb 12. 2021

홀리한 12월 31일

안나의 집, 김하종 신부님이 출연했다. 예전 취재로 신세(?) 아닌 신세를 지게 되어 꼭 만나 뵙고 싶었는데, 안나의 집이 있는 성남으로 찾아가리라 다짐했건만 결국 상암 스튜디오에서 만나버렸다.


게으름을 반성하며 달려간 회사 사무실. 싸이가 왔을 때도 손흥민이 왔을 때도 강동원, 정우성이 왔을 때도 이렇게까지 설레진 않았는데. 출연하시는 동안 스튜디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복도를 서성거리며 하늘색 니트 차림의 신부님을 보는데 어찌나 떨리던지.


신부님 이렇게 눈 보면서 목소리만 듣는 건데 지난날 제가 지어온 죄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에요, 라는 말도 안 되는 인사치레를 건넸지만, 진심이었다. 그 맑고 깊은 눈을 보는데 마음이 동요하지 않고 배기나.


성남에서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 40분을 걸려 상암에 오셨단다. 7분 인터뷰하시려고. 한 시간만 넘어가도 멀다 멀어 고개를 휘젓던 지난날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성남? 안나의 집? 뭐야, 한 시까지 가려면 몇 시에 집을 나와야 되지? 안 되겠다, 다음에 가야지 뭐. 미루고 미뤄온 나태함이 어찌나 부끄럽던지. 자원봉사는 시간이 나서 하는 게 아닌 시간을 내서 하는 것임을 나는 알면서도 몰랐다. 아이고 신부님 먼 길 오셨네요, 하니 마치 5분 거리에서 온 것처럼 손사래 치며 산뜻한 미소로 화답한다. "에이, 금방이죠. 지하철이 잘 되어 있어서 편하게 왔어요."


뉴스가 끝나고 스튜디오 곳곳에 있던 제작진들이 저마다 자리로 돌아와 수고했다, 는 말을 주고받는 걸 본 신부님은 이 많은 인력이 뉴스 하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옆에 있던 작가님이 원래 이거보다 많은데, 연휴라 오늘은 사람이 없는 편이라며 웃자 신부님은 또 놀란다. "여러분은 정말 중요한 일을 하시는 거예요. 좋은 길로 가려면 얼마든지 좋게 갈 수 있고 나쁘게 가려면 나쁜 길로도 갈 수 있는 자리잖아요."


나의 2020년은 저 한 마디로 정리되었다. 신부님이 어떻게 세상을 보시는지 와 닿게 해 준 한마디였다. 언제, 어디에 있든 누구나가 각자의 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아마도 오늘도 안나의 집을 다녀간 780명의 노숙자가 신부님 눈에는 똑같이 비쳤을 거다. 세상엔 참 대단하신 분들이 많다. 대단한 걸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분들. 참으로 홀리한 (음력) 12월 31일이었다. 새해 복 많이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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