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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Apr 12. 2023

신이 준 독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또다시 반주한 아버지와 거실에서 조우하는 계절이 다가왔다. 대체로 이런 밤은 날씨가 풀려 기온이 높아지는 날, 아버지의 컨디션이 좋은 시기, 사람들과 만나 할 일을 도모하여 심신 상태가 안정되었을 때 찾아온다. 겨울잠 자던 동물이 봄이 되어 세상을 누비고 다니는 것처럼 그러고 보면 아버지 삶의 패턴은 자연의 흐름과 매우 흡사하다.


오늘의 화두는 ‘신독’이었다. 애초에 그 어려운 단어를 꺼내려던 건 아니었을 터. 내게 작은 고민거리가 하나 있었고 살포시 조언을 건넬 요량이었던 아버지가 “너도 이제 장년이야. 더 이상 젊은 나이가 아니야.”라는 말에 내가 살짝 욱하였고, 눈물을 찔끔 흘렸고, 나이란 어쩌면 의미 없는 숫자에 불과할지 몰라도 때론 삶의 방향을 정해주는 좋은 이정표가 된다, 는 취지에서 꺼낸 단어였을 것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기 싫은 날이 있어. 그런데 게으름을 피울 수 없는 이유가 뭔지 알까?“라는 질문으로 말문을 연 아버지는 요즘 당신의 화두가 ‘몫’ 임을 말해주었다. 예전엔 60이었지만 요즘 세상에선 70이 그러하다. 70살이 넘어가면서부터는 남의 몫을 살아간다는 걸 의미한단다.


”더 일찍 죽은 사람들이 있잖아. 나는 그 사람들의 몫을 살아가는 거야. 그러니 게으름을 함부로 피울 수 없는 거지. 그럴 때 신독을 생각해. 혼자 있어도 몸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야. 혼자 있을 땐 방탕해질 수도 있지만,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거지.“


사회에선 그저 생글생글 웃고 지내지만 비 오는 날 혼자 걸어가다 옆으로 지나가는 차량이 고인 물 웅덩이를 밟고 지나가 내 옷에 흙탕물이 튀기라도 하면 저런 놈은 천벌을 받아야 한다느니 인간 이하라느니 차량 뒤에 대고 온갖 욕설을 쏟아대던 나의 모습을 잠시 떠올렸다. 나는 아직 멀었구나.


비단 게으름과 나태함만을 의미하는 건 아닐 것이요, 마음속에서 읊조리는 모든 언어를 내포하는 단어일 것이다. 신독. 혼자 있을 때가 진짜 모습인 것이다. 신이 주는 독약처럼 시험대에 오른 그 순간에 우리의 본모습은 비로소 드러나기도 하니까.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 긴 자유로를 달리는 내내 큰소리로 통화하던 뒷좌석 승객에게 제발 조용히 해달라고 할까, 도끼눈을 하고 째려볼까, 눈치를 줄까, 수도 없이 고민하다 그냥 내리고선 기어이 타인의 감정을 망치지 않았으니 그걸로 된 것이라며 자위하던 오늘의 귀갓길을 떠올리며. 혼자 있을 때도 조금은 더 너그러운 사람으로 지내보자고 다짐하는 밤이다.


봄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면 이런 계절이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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