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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Dec 31. 2022

70이 넘은 남자와 산다는 것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주름살을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그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넉살 좋게 오이팩을 붙여주는 일이다. 바로 며칠 전까지 짱짱했을 장딴지가 어느새 홀쭉해졌음에도 짐짓 모르는 척 눈길을 돌리는 일. 당신의 벗, 그러니까 내게도 부모뻘과 같았던 아무개 아저씨의 부고에 힘없이 앉아있는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봐주는 일. 그러다가 영 기력이 없어 보이면 조용히 다가가 마음이 안 좋겠다, 는 보잘 것 없는 말이나 건네며 살포시 안아드리는 일이기도 하다.


스무살이었던 내가 엊그제 같은데 거울 속 나는 어딘가 모르게 달라진 듯, 조금은 늙은 듯, 그래도 폭 파인 볼만 좀 채우면 어려보일 텐데 아쉬워하는 것처럼. 당신이 거울을 볼 때면 서른, 마흔, 쉰, 하다못해 환갑까지도 바로 엊그제처럼 느껴지리라는 걸 안다. 그럼에도 헛헛한 그 심경을 모두 가늠할 순 없으니 그저 입을 꾸욱 다무는 일이기도 하다.


70이 넘은 남자와 산다는 건 이처럼 하루에도 수차례 마음을 쿡쿡 쑤시는 장면들을 목격하는 것인데 그럼에도 한없이 기쁜 일이 하나 있다. 중력이 순응하는 신체의 변화를, 노화를 받아들이는 언젠간 젊었을 당신의 몸뚱아리를, 씁쓸하게 웃으며 75살이 넘으면 제대로 못 돌아다닐 것 같으니 조만간 여행이나 가자던 당신의 목소리를, 단 한 톨도 빼놓지 않고 오롯이 기억할 수 있다는 것. 남들처럼 서른 즈음에 결혼을 하고 분가를 했다면 결코 볼 수 없었을 당신의 일상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비로소 깨닫는다. 이제는 내가 한없이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소나무가 아니라는 걸. 당신도 어느새 언제 부러질지 모르는 고목나무가 되었다는 걸. 지극히 당연한 그 자연스러움에 당신이 조금 앞서갈 뿐 나역시 뒤따라 가고 있다는 걸. 그러니까 이제 우린 좀 친구 같아진 셈이다. 같이 나이늘어가는 벗. 어때. 아빠. 좀 든든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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