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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May 03. 2023

앞선 걱정에 덤덤한 우비

굳이 전국 비소식이 내려온 이번 주에 출장을 떠난다며 우비를 찾는 우리 집 사장님에게 엄마는 못 이기는 척 묻는다. “아이고, 우비까지 차려입고 촬영을 하시게요? 카메라 들고? 비 오는데? 미끄러지면 어떡하려고? “ 들리지 않을 리 없는 걱정 가득 담긴 말들에 대꾸는 없고 사장님은 묵묵히 옷장 속에 수년 묵혀두었던 우비를 주섬주섬 꺼내어 또 주섬주섬 입고 걸어 나온다.


어릴 적 내가 무언가를 선언할 때도 엄마는 “아이고, 그것만 입고 가시게요?” “아이고, 지금 나가서 언제 들어오시게요?” “아이고, 이 날씨에 거길 간다고요?”라며 행동 사이사이에 추임새를 넣곤 했다. 사장님은 그저 어차피 말려도 저 고집은 못 꺾는다는 걸 알고 체념한 것처럼 덤덤한 표정이었다.


그 피를 그대로 물려받은 나는 신발장에 쟁여둔 우비가 없는지 찾아본다거나 호우특보가 내려진 건 어느 지역인지 가늠할 뿐 별다른 내색도 반응도 내보이지 못한다. 그저 건강하게 잘 다녀오길 바랄 뿐. 그게 원하는 길이면 어디든 그곳이 안전하길 바랄 뿐. 과한 욕심이 앞서지 않기만을 기도할 뿐. 사람마다 제 역할이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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