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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Jun 22. 2023

가장 어두운 시간 속에서

아웃풋이 마음에 들지 않고 나오지도 않아 마음 졸이는 나날이 지속될 때면 곧잘 일상에 술을 곁들이곤 했다. 술만 먹으면 살이 찌고 정신이 피폐해지니 운동도 덧붙였다. 운동 후 맥주를 마시면 몸에 덜 미안하니까.


종아리 근육이 파열되면서 운동도 술도 못하게 되니 대체재처럼 무언가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는데 요즘의 그것은 책과 연극과 전시 그리고 영상물들. 과연 이 작품들을 접한다 하여 내 구성안이 풍부해질 것이며 필력을 기르는 데 무슨 도움이 될 것이며 얼마나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겠냔 말이다. 제아무리 좋은 걸 본다 해도 소화를 못 시키면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라는 듯 끊임없이 얼굴 없는 누군가가 제동을 걸고 있는데 그저 하염없이 찾아다닌다. 적어도 고유의 세계에 머물 때만큼은 아무런 잡생각이 들지 않아서다.


같이 일하는 동료 기자들의 연차가 점점 낮아지고 동생뻘이었던 인턴 친구들이 조카뻘에 가까운 나이임을 확인하면서부터 점점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다. 하던 대로 해온 구성이 혹시 구태의연한 전개가 아닐지. 늘 쓰던 이 어휘가 과하게 올드한 건 아닐지. 반전이랍시고 흐름을 뒤바꿔놓는 게 무리한 구성은 아닐지. 자기 검열이 계속되니 선뜻 제안할 용기마저 사라진다.


그저 그림을 보고 한없이 빠져들고 영화의 대사가 좋아 몇 번이고 곱씹고 연극의 서사가 궁금해 지식창고를 밤새 뒤적거리는, 그런 순수한 배움이 아닌,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한 발버둥이란 점도 꽤나 맘속엔 큰 걸림돌이 된다. 이렇게 해서 될까. 이걸 한다고 뭐가 건져질까. 스스로 어둠 속을 지나고 있다 절감할 때마다 원래 동트기 전에 가장 어두운 것이겠노라 자위하지만 그럼에도 그 암흑 같은 시간을 버텨내는 건 역시나 익숙해지지 않는다. 정말 답답하고 무력하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그렇기 때문에 더 읽고 보고 들어야 함을 머리론 알고 있다. 오늘도, 내일도, 머리의 결정에 따라가야지. 그렇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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