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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Jan 18. 2024

F 인척 하는 T

얼마 전 애인에게 그런 말을 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F가 아닌데, 대외적인 이미지는 F인 것 같아. 조금 부담스러워. 오늘도 H가 준 카드에 '작가님처럼 삶을, 사람을 다정하게 바라보고 다채롭게 시간을 쌓아가는...'이라고 적혀있었는데 난 아니거든. 실제 내 모습을 내가 아는데 불편하더라고. 그런 이미지가 쌓여가는 게 괜찮을까?" 


그는 말이 없다. 고개를 끄덕이지도 가로젓지도 않는다. 그저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언제부턴가 감성 충만한 사람, 공감의 아이콘, 따뜻한 사람이란 수식어를 달고 산다. 물론 내가 실제로 그런 사람이란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내 귀에 닿는 수식어들이 왜 하필 그런 장르일까 문득 의문이 든다는 뜻이다. MBTI를 맹신하지도 않지만, 곧잘 '말하지 마요, 맞춰보게'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맞출 기회를 주면 어김없이 이런 말이 날아온다. "일단 F는 확실하고!"


지인 J와 동해 당일치기 여행을 가는 날이었다. 종종 찾는 단골 횟집 이모한테 연락을 넣어두었다. 영업하시는지 확인할 겸 횟감도 미리 주문해 놓을 겸 안부인사도 물을 겸. 


'사장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나요? 제가 수요일에 금진 가려고 하는데 혹시 계시나요?'

'네 영업해요. 오랜만이네요. 금진해변에 있답니다.'

'꺄! 그날 뵐게요 그때 그곳에 있죠? 요즘 제철 생선은 무엇인가요?'

'매일 그때 달라요. 뭐가 먹고 싶어요?'

'혹시 싱싱한 뿔소라 있나요? 없다면 숭어랑 개불이요 ㅎㅎ'

'뿔소라는 철이 아니라서요. 숭어는 있어요.'

'그렇다면 뿔소라는 포기하겠습니다. 숭어 먹을게요!' 


그리고 지인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뿔소라 철 아니래' 


그리고 이 상반된 톤이 정녕 같은 사람한테서 나온 것인가 싶어 실소가 터져 나왔다. 나는 이중인격자인가. 대외적인 이미지는 신경 쓰면서 가까운 지인들에겐 막 대하는 성격파탄자인가. 어찌 그 흔한 ㅋ도 ㅎ도 붙이지 않는 카톡이 이리도 많은 것인가. 꺄! 라든가 와! 라든가 그런 느낌표들은 내 안의 어디쯤에 존재하실래 저럴 때만 쏙쏙 골라 튀어나오는 것인가. 


애인에게 다시 물었다. 


"혹시 평소에 내가 T 같다는 느낌 든 적 있어?"


끝끝내 웃음으로 무마하려던 그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제 대답을 해야 할 차례였다. 


"응. F인척 하는 T 같아." 


아, 얼마나 후련했는지 모른다. 수없이 들었던 'F 같다'는 말들에 겹겹이 쌓여온 가면을 한꺼번에 던져버린 기분이었다. 애인이 저런 생각을 가지게 된 데엔 이유가 있었다. 보통 이런 것을 남녀라는 성별로 구분하는 경우도 있던데 나의 경우 이건 어디까지나 성향 차이라고 생각한다만 대부분의 경우 애인은 나에게 서운한 게 많았고 나는 서운할 일이 없었다. 그건 바꿔 말하면 그만큼 애인은 나에게 충실하고, 헌신적인 사람으로 존재해 주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걸 모를 리 없는 나 역시 딱히 애인이 서운해할 일을 만드는 타입은 아니었는데, 애인은 연애 초반 아주 가끔 '서운함'을 토로하곤 했다. 


자잘한 싸움이 일어나면 누군가 한쪽이 서운해하기 마련인데 애인이 서운하다, 고 했을 때 내가 냉혈한 같은 반응을 보인다는 이유였다. 대개 '그게 왜 서운하지?'라는 대답을 돌려주었던 것 같다. 애인은 서운함을 알아주길 원하는 마음이었을 테니 저런 내 대답은 비수처럼 꽂혔을 것이고. 그렇게 서너 번쯤 싸움을 반복하고부턴 애인이 '서운하다'고 말해오는 횟수도, 내가 '왜 서운해?'라고 묻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 습성이 대화 중에도 종종 등장하게 되었고. 재미없거나 이미 들은 이야기이거나 관심 없는 이야기에도 흥미를 '일단' 보여야겠다는 생각. 재미있는 맞장구를 치진 못하더라도 '이해'는 하고 있다는 리액션을 해야 한다는 다짐. 혹여나 애인이 조금이라도 서운하거나 힘들 만한 일이 있을 때 내가 먼저 '힘들었지'라고 다독일 필요가 있겠다는 추측. 뭐 그런 것들이 우리 대화 사이로 껴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음속 깊이 공감하진 못해도 어떻게든 껍데기는 F의 가면을 쓰고 있으니 그는 노력을 가상하다고 봐주었던 모양이다. 이제 우리 사이에 '서운하다'는 말이 등장한 지는 오래되었고, 대화의 결이 서로에게 맞춰지면서 굳이 억지로 공감하는 척을 해야 하는 일들도 사라졌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와 나의 관계에만 해당될 뿐 대외적일 땐 또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고현정이 '쌉티!'를 외치고, 주우재가 'T가 공감을 못하는 유형이라는 것까지 공감해 주어야 진정한 F가 아니냐'고 되묻는다 한들 사회적 분위기는 점점 F를 찬양하는 쪽으로 흘러간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80억 명에 달하는 인구를 16가지 종류로 나누는 MBTI 방식도 신기하지만, 8가지 알파벳 가운데 굳이 F와 T만이 화두로 올려지는 한국의 분위기들도 신비롭고 기이하다. 두 알파벳을 가지고 노는 장은 어딜 가나 있기 때문이다. 그 저변엔 어떤 마음들이 존재하는 걸지. 문득 궁금해진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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