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인데 어쩐 일인지 고요하다. 저 멀리 심학산에서 한 마리 소쩍새가 울어대는 소리만이 들려온다. 아직 바람은 차고, 그보다 더 멀리 자유로를 지나다니는 차량들이 내는 소리만 아득하게 그려지는 4월의 봄밤.
책꽂이에 꽂혀있는 오래된 책들을 훑어본다. 무엇 하나 팔 것이 없나 살펴보는 것인데, 미지의 독자들이 탐낼만한 책은 단 한 권도 없다. 탐낼만한 책은 나조차도 읽지 않았거나 오랫동안 가지고 싶은 책이니. 고작해야 고를 수 있는 건 언제 나왔는지도 모를, 지금은 사라진 출판사의 '8개 국어 동시회화'나 제목만 봐도 읽었던 당시 지루하고, 뻔하게 느껴졌던 감정만이 되살아나는 그런 책들 뿐이다.
당근마켓에서 만 원에 내놓은 갈바닉 마사지기를 사러 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집이 가깝다며 출발하고 톡을 줄 것이고, 현금을 준비해 가겠다는 투철하게도 계획적인 문장에 마음이 놓인다. 적어도 이 사람은 이른 아침에 나를 길바닥에 세워둔 채 바람 맞힐 일은 없겠구나. 단 돈 만원이지만, 단 돈은 아닌, 무언가 거래를 성사시킨다는 것 자체로 만족감을 주는 한 건이다. 당근 거래 한 건에 뿌듯함을 느낄 정도로 나의 요즘의 삶은 무료하고, 건조하다.
선택하는 자유와 자의와 상관없는 자유가 있다. 타의로 주어지는 자유. 누군가에겐 복에 겨울 소리겠지만, 하루아침에 자의로 선택할 수 있는 업무가 사라진 이들에게 때로 자유는 조금 버겁다. 주어졌던 업무가 사라졌던 첫날. 그날은 평일이었다. 이른 점심 약속을 마친 나는 종로 길 한 복판에 서있었다. 업무량이 많아 허덕였을 때는 시간을 쪼개기 위해 분 단위로 스케줄을 짜야했다. 그렇게 쪼개고 쪼갠 시간을 전시를 보러 가거나 산책을 하거나 달밤의 고궁을 걷거나 영화 한 편을 보는 데 썼다. 그렇게 얻어진 자유는 일상을 살아갈 유일한 낙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반나절도 안 되는 시점에 그날의 모든 업무를 마친 나에게 주어진 건 시간뿐이었다. 비는 내렸고, 갈 곳은 없었다. 이대로 집에 가기는 싫은데, 전시 한 편 영화 한 편 마음 놓고 돈을 써도 될지 앞날조차 미지수였다. 그렇게 고른 곳이 경복궁이었다. 4000원 입장료를 내고, 눈 쌓인 경복궁을 보며 역시 오길 잘했다, 인생은 반전의 매력이야, 되새겼지만 우산을 쓴 채 서촌의 어느 골목길을 서성이던 그때를 잊지 못한다. 걸어온 길을 또다시 되돌아가고, 혹시 갈 곳은 없는지 하염없이 네이버지도 화면을 확대해 가면서.
어쩌다 비어버린 시간을 무료함이라 표현하는 건 심각한 오만이겠다. 하지만, 문득 오늘처럼 들어올 월급을 계산하고, 다음 달의 카드값을 예측하고, 그다음 달 그 다다음달의 통장내역을 가늠하면서 오늘 하루는 무엇을 했지, 내일은 무엇을 하지, 주어진 업무는 어떻게 분배를 해야 마땅하지, 생각의 꼬리가 이어지는 날이면 나의 존재가 무료함으로 둘러싸인 건지, 멍청함인지 이것은 한심함인지, 분간이 안 갈 때가 있다.
그럴 때 책을 읽는다. 영상도 그래서 본다. 순수한 욕망이나 지적 갈증에 대한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가만히 있으면 견딜 수가 없어서 뭐라도 집어넣기 위해 본다. 그 와중에도 마음 한편에 조금씩 올라오는 건 이 시간도 지나가겠지, 이 시간이 사실은 가장 귀한 시절로 남겠지, 계속하다 보면 뭐라도 하겠지.
참으로 나약하고 낙관적인 존재다. 정신적 방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