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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May 14. 2024

여왕벌 레퀴엠

대낮이었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데 누군가 나를 염탐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눈보다 빠른 건 귀였다. 어디선가 드론 날라다니는 소리가 들려왔다. 묘하게 기분 나쁘고 음산한 파동. 고개를 올려보니 엄지손가락만 한 장수말벌이 천장 환풍구 언저리에서 윙윙 날아다니고 있는 것이었다.


조금 더러운 이야기이지만, 중간에 끊을 수가 없었다. 서둘러 처리하고 나오려는데 놈이 나를 발견한 모양인지 맹렬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발이 안 떨어진다는 말을 장수말벌 앞에서 체감할 줄은 몰랐다. 쫓아오는 말벌을 피해 발걸음을 옮기고 서둘러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문을 꼭 닫은 채.


방으로 돌아와 잠시 고민했다. 집에 여분의 살충제가 없었다. 방 안에 있는 스프레이라곤 예전 배드민턴 칠 때 가지고 다니던 파스가 전부. 왼손에 스프레이를 쥐고, 오른손으로 살짝 화장실문을 열었다.


빼꼼, 하고 살 떨리는 긴장 속 놈을 찾는 나의 눈. 역시 이번에도 놈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스프레이로 치익-. 뿌리자마자 재빨리 문을 닫았다. 몸뚱아리를 문에 부딪히는 모양이었다. 점점 드센 날갯소리가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놈은 살짝 흥분한 듯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문을 열고 스프레이를 뿌리려는데 놈은 내 눈 앞까지 다가와있었다. 놈은 나를 기억하고 있었고, 맹렬한 기세로 전진하는 중임이 틀림없었다. 눈이 마주친 것 같다는 환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고작 오 센티미터나 될까 말까 한 틈 사이로 마주치는 것이 전부이거늘 나는 놈의 기세에 잔뜩 졸아 주춤하였고, 스프레이 소리가 치익- 거리기를 두어 번. 결국 포기했다. 무서웠다.


스마트폰으로 장수말벌을 검색하고, 나무위키에서 여왕벌을 검색했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는데, 장수말벌과 관련된 수천 자에 달하는 설명글을 보아도 내게 도움 되는 건 눈곱만큼도 없었다. 두려움만 늘어갔다.


포털사이트 지식인들은 다들 너그럽게도 '살충보다는 퇴치를 하세요'란다. 스크롤을 내리던 중 발견한 '장수말벌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말이 위험한 이유' 같은 지구 친화적인 문구가 눈에 밟혔지만, 차마 읽어보지 못했다. 나 역시 벌이 사라지는 세상이 끔찍하다 여기는 인간이지만. 그것은 집안에 아나필락시스쇼크 알레르기 반응환자가 없을 경우에나 가능한 처사다. 우리 집 연로한 어른 한 분이 프로폴리스 잘못 드셨다가 응급실 실려간 것도 불과 최근의 일이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채 거실에 앉아있던 그에게 차마 도움을 청할 수도 없는 이유였다. 대피하라 소리치면 몽둥이라도 들고 달려왔겠지만, 그 역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결국 놈의 운명은 죽음의 길, 그 이하도 이상도 없었다.


쿠팡에서 서둘러 살충제 스프레이를 주문했으나 새벽 도착이란 답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화장실을 새벽까지 이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인가. 마침 재택인 날이라 샤워는 하루쯤이야 안 해도 그만이었지만, 화장실을 자주 가는 나로서 안방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는 건 조금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짧지도 길기도 않은 고민이 이어졌고 결국 해결책을 내놓았다. 모기향이었다.


향 냄새를 지극히도 싫어하는 어머니 덕분에 한동안 거실 한편 소쿠리에 처박아두었던 모기향 두 통을 꺼냈다. 뚜껑을 열어 아로마향 하나, 원초적인 향 하나, 두 개에 붙을 붙였다. 나의 목표는 놈이 모기향에 질식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었다. 불을 지펴놓고 화장실 환풍구 스위치를 끈 뒤 문을 살짝 열어 모기향 두 개를 들이밀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흘렀다. 화장실 문에 귀를 대는데 고요해진 것이 아닌가. 안심하고 문을 열려는 찰나 발밑에 무언가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알고 보니 놈이 화장실 문 아래 틈 사이로 고개를 삐쭉 내밀고 있는 것이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손에 들고 있던 배드민턴 라켓으로 놈의 대가리를 누르기 시작했다. 놈이 죽길 바라고 누른 것이었는데, 놈은 무사히 화장실 안으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또다시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쯤되니 조금 지쳤다. 지성이면 감천이어라. 부디 모기향 두 개가 제 힘을 발휘해 주길 기다렸다. 그렇게 세 시간이 흘렀다. 마당에 나가 배드민턴 라켓으로 스윙 연습 두어 번 해준 뒤 화장실 문을 열었다. 한 발 한 발 내딛어가며 화장실 면면을 살피는데, 놈이 세면대에 누워 헥헥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안타까웠고 안타깝지 않았다. 한낮의 공포가 (드디어) 그렇게 저물어갔다. 


모기향으로 질식한 놈은 확인사살로 뿌려댄 파스연기로 생을 마감했다. 두루마지 휴지를 풀어 놈의 몸뚱아리 위에 얹었고, 배드민턴 라켓 두 채로 젓가락질하듯 건져 올렸다. 변기물이 한 번, 두 번 내려갈 때마다 온몸에 닭살이 올라왔다. 

저녁때 지인과 통화를 하며 일련의 사건을 쏟아내는데 잠자코 듣고 있던 그가 물었다.

- 그래서 마당에 잘 묻어줬어?


그렇구나. 그가 아는 평범한 나날의 성정의 나란 죽은 곤충을 마당에 묻어주는 이였다. 집 구석에서 잡은 쥐새끼도, 길가에 버려졌던 까치 새끼도, 바퀴에 짓눌려 터져버린 개구리 새끼도 그렇게 묻어줬다. 그런데 지구에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 귀한 장수말벌을 변기에 흘려보내다니. 그제야 놈에게 미안한 마음이 몰려왔다. 이맘때쯤이면 여왕벌이 제 식구들을 다 먹여 살린다던데. 어쩌다 우리 집 화장실에 들어와서 내가 모기향을 쓰게 되었나. 


열 두시간 쯤 지난 듯한데, 반나절 가까이 모기향의 자욱함을 품었던 탓인지 아직도 화장실에 갈 때마다 골이 당긴다. 죄없는 생명을 변기에 흘려보낸 탓이자, 자연을 사라지게 만든 죗값이겠다.


이런 글을 쓴다고 네가 살아 돌아오진 않겠지만, 네 식솔들이 이 글을 읽을 리 만무하다만, 부디 올해는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불상사가 없기를. 다음번에 또 비슷한 네 친구를 발견하게 된다면 그때는 조금 더 현명하게 퇴치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볼게.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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