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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롱지다 Jan 28. 2023

여행보다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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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한 휴일 새벽, 홀로 일어나 차를 마시며 글 쓰는 일이 취미를 넘어 습관이 되고 있다. 눈 떠보니 오늘은 5시 25분이다. 물을 끓이고 화장실을 다녀오니 발 밑엔 첼시가 노트북 옆에는 루시가 앉아 있다. 홀로 있는 시간인데 홀로 있지 않는 기분. 노트북을 두드리는데 자꾸만 시선은 첼루시에게로 돌아가고 글은 속도가 나지 않은 채 2시간이 흘러버렸다.


"그러고 보니 첼시 루시가 집에 온 지 벌써 일 년이 넘었네."

엊저녁 남편은 새로 산 해먹에 서로 들어가겠다고 투닥거리는 첼루시를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어느 하루도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었어!"

세상 편한 자세로 누워 TV를 보던 나는 무심한 말투에 따스한 속내를 담았다.


"당신이 이렇게 고양이를 좋아할지 몰랐어."

"나도!"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알 것이다. 어쩌면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만 알 것이다. 온전히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사는 고양이가 매 순간 형언할 수 없는 귀여움으로 기쁨과 평안을 선사하고 있음을.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때 TV에서 세계테마기행이 시작되었다.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체코의 보헤미아 숲'이란 타이틀이 등장하더니 곧이어 중세유럽의 낭만을 품은 아름다운 절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일 년 전만 해도 우리의 노후는 여행으로 점철되리라 믿었다.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경제적인 이유로 그 흔한 가족여행조차 한 손의 손가락 수만큼도 가지 못했다. 그 대신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여행 프로그램이나 유튜브를 보며 각자 버킷 리스트를 뽑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겹치지 않은 여행지가 나오면 서로 선심 쓰듯 같이 가주겠다고 하고 각자의 리스트에 추가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정말이지 우리는 꼭 갈거라 믿었다. 첼루시가 오기 전에는.



 

고양이는 영역동물이다. 가슴에 안고 산책하는 것조차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고양이와 여행하는 일은 가학행위에 가깝다. 그렇다고 자동급식기와 음수기에 사료와 물을 채워 둔대도 이틀이 최대치다. 다시 말하면 고양이를 모시는 집사의 휴가는 2박 3일을 넘기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요원해진 '여행으로 점철된 노후의 모습'이 그렇게 아쉽지만은 않았다. 뜬금없는 다음 이야기로 그 이유를 설명해볼까 한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정말 외로웠다. 그 외로움은 하도 끈질겨서 남편도 부모님도 어쩌지 못했다. 아이가 생기자 세상 무서울 게 없어졌다. 지켜내고 싶었고 잘 키워낼 수 있을 거라는 근본 없는 자신감이 샘 쏟았다. 그러다 깨달았다.


내 삶이 의자 빼기 게임과 같았다는 걸. 신나게 춤을 추다 선생님의 신호에 따라 재빨리 내 의자를 차지해야 하는 놀이는 언제나 당혹 그 자체. 어김없이 마지막에 남은 사람은 나였으니까. 마지막 의자를 놓치고 나면 영원히 내 의자는 없을 것 같은, 망망대해에 깔린 어둠처럼 사방에서 깜깜한 무서움이 몰려왔다. 그것이 바로 외로움의 기제였으리라. 소속감, 연대감이 전혀 중요치 않은 여행 속 세상은 언제나 외로움이 기본값이다. 나의 언어로 여행을 정의한다면 여행은 외로운 자의 도피의식이다. 여행 전에 느끼는 설렘과 기대는 기본값을 살포시 덮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자아를 당당하게 만든다. 그리고 세상을 관찰자 시점으로 관망케 한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또래들과의 관계가 쉽지 않아 졌을 때 나의 첫 여행은 시작되었다. 매주 일요일 이른 아침 가족들 몰래 홀로 일어났다. 버스로 서너 정거장을 걷고 걸어서 옆동네 놀이터에 갔다. 30분가량 그네를 타고 다시 집에 돌아와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그 그네가 특별했냐고. 아니 우리 동네에도 있었고 예전에 살던 동네에도 있었던 흔하디 흔한 그런 그네다. 좀 커서는 도착지를 정하지 않고 아무 시외버스나 타서 온종일 돌아다니곤 했다. 그렇게 다녀오고 나면 한동안은 경쟁에 내몰려 치열한 삶을 사는 주인공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가 애쓰지 않아도 아이들은 태어나면서 내 자리를 만들고 자라면서 조금도 외로울 짬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이 나를 그것으로부터 지켜준 셈이다. 되돌아보니 그것은 책임감이었다. 책임감이 이토록 외로움을 상쇄할 만큼 힘이 있을 줄이야! 어쩌면 경제적인 이유는 핑계일 뿐 나에게 그 매일은 가족여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두 아이가 자신의 세상으로 떠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남겨질 나는 한동안 사라졌던 그 마음, 외로움을 다독이기 위해 당연히 여행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번엔 특별히 동행할 사람이 있어 설렘과 기대는 더 커졌다. 그러던 차에 우리 가족의 운명이 첼루시를 불렀는지 아님 그 반대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또다시 육아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 힘도 들고 돈도 들지만 그 이상 환산할 수 없는 달콤 충만한 감정을 매 순간 느끼며 살고 있다.




"... 여행  가도 ! 이렇게 TV 보면 되지."


생각이 바뀌었다. 어린 아이들을 키울 때처럼 이제는 단 일분일초도 첼루시가 없는 세상은 그려지지 않는다. 첼루시 역시 내 자리를 만들고 나를 지켜주고 있으니까. 게다가 우리네 삶보다 짧은 묘생을 알기에 첼루시와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더 소중해졌다. 여행은 취소되지 않았지만 잠정적으로 오~래 연기될 예정이다.


"그럼... 우리 TV 큰 걸로 바꿀까?"


하하! 집돌이인 남편이 나만큼 여행에 진심일 리 없음을 진작에 눈치챘어야 했는데.. 뭐 그래도 이젠 상관없다. 외로운 기분이 사라지면 나는 대체로 행복하다고 느끼니까. 행복이 바로 여기 있는데... 어딜 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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