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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롱지다 Sep 06. 2023

이별을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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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세수할 때부터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두 달간 준비했던 모 전시관 기본계획 보고서를 마무리하는 날이다. 아마 오전 3시간이면 충분히 끝낼 수 있으리라. 연노랑 반바지에 새하얀 셔츠를 입고 노랑 가방을 어깨에 메니 노란색이 나를 휘감고 춤추는 듯했다. 아직은 더운, 살랑이는 아침바람을 맞으며 출근길을 나섰다. 이런 날은 잊고 있던 친구가 생각난다. 점심때쯤 톡을 해볼까? 어떤 인사로 말을 걸어볼까? 한 시간 남짓 고민하다 보니 회사 앞이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건물 꼭대기층에 위치한 사무실까지 걸어올라 가는데 숨이 차도 오늘은 괜찮았다. 오늘은 화요일이니까. 수목금은 재택근무다. 오전에 예상한 일과가 끝나자 채주임에게 밥을 먹을 건지 물어보았다. 채주임은 점심 생각이 없다고 했다. 사무실에는 상근 하는 직원들이 별로 없다. 권과장은 육아휴직 중이고 명과장과 남과장은 재택근무다. 간단히 샐러드랑 커피로 요기를 때우려 1층 카페로 내려갔다. 출근하는 날은 거의 들리는 곳이라 잘생긴 젊은 사장이 살짝 웃으며 '늘 드시는 걸로' 하며 알아서 계산을 해버린다. 한 손엔 따뜻한 아메리카노, 다른 손엔 샐러드를 받아 들고 사무실로 가려다 나도 모르게 카페 앞 포치에 펼쳐진 캠핑용 의자에 앉았다. 비닐봉지에 담긴 샐러드는 좀 있다 먹자고 내 마음에 살짝 귀띔을 해둔다. 앉은 김에 포치 앞 난간에 발을 올리고 연한 커피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스치듯 바라보았다. 사무실 에어컨 바람에 한기 들었던 몸을 따듯한 늦여름 바람이 간지럽힌다. 얼마만인가. 이런 여유를...


습관적으로 핸드폰의 브런치스토리 앱을 열었다. 이젠 책을 거의 사지 않는다. 이곳에 들어서면 내 기분에 따라 언제 어디서든 다양한 장르의 글을 읽을 수 있다. 물론 어디서고 서랍에 저장해 둔 쓰다 만 글을 수정하고 이어나갈 수도 있다. 약간 중독이라 해야 할까? 톡톡 글을 쓰다 안 풀리면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는다. 때론 생각지도 못한 글감을 찾기도 하고, 미처 알아채지 못한 마음에 위로를 받는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어서 오늘을 기록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글이라면 이렇게 써야지 정석을 보여주시는 작가님 글이 피드에 올라 있었다. 읽어 내려가다 훅하고 마음을 친다. 어여쁜 튤립을 선사하며 내 귓가에 대고 말씀하신다.

 '참 애썼다. 수고했다.'


잠시 울컥한 마음을 진정하고 댓글창에 들어가 보니 나처럼 위로를 받았다며 울컥한 분들이 많았다. 소심한 나도 오늘은 용기를 내어 댓글을 달아보았다.  

'늘 마음에 닿는 글 보여주셔서 얼마나 감사한 지 모릅니다!'


브런치나우에 들어가 새로운 글들을 하나씩 열어 보았다. 왜 그 글이 끌렸을까? '허영', '재능 없는', ‘꿈‘, 좀먹어간다'와 같은 단어들로 조합된 제목에서 풍기는, 나른한 기운 때문이라 짐작해 본다. 마침 내가 느끼는 날의 감촉과 요즘의 냄새가 딱 그러했기에 글은 너무도 조화롭게, 자연스레 내 몸으로 스며들었다. 잠시 내 자랑을 해보자면 중이 제 머리는 못 깎듯 내 글의 미래는 보이지 않지만 다른 분들의 미래는 보인다. 아침드라마를 즐겨보던 시절 드라마에 생판 처음 보는 무명배우가 등장했을 때 나는 단 2~3회 만에 저 배우는 뜰 거라 장담했다. 이민정, 남궁민, 이상우 배우 외에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는 배우들이 꽤 있었는데 다 맞혔다. 남편은 신기해하며 다른 분야도 도전해보라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침드라마 주연은 이미 실력이 검증된 배우들로 캐스팅한단다. 그렇다해도 인기를 얻는 건 다른문제다.) 요는 내가 구독하고 있는 작가님들은 미래가 범상치 않은 분들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또 한 분의 작가님을 구독했다.


내일은 오프라인 에세이 모임에 마지막 글을 올리는 날이다. 작가서랍에 이미 써둔 글을 꺼내 두어 번 찬찬히 읽어보았다. 꽃잎을 한 장씩 떼어가며 그 글을 올린다. 안 올린다. 올린다, 안 올린다. 마음속 결심을 수십 번 번복했다. 어제도 그제도 지난주에도 했던 일이다. 아직도 나는 결심이 서질 않는다. '마지막'이란 말은 슬픈 말이다. 주는 것보다 받는 게 너무 많아져서 이젠 멈춰야겠다는 의미가 모임의 젊은 친구들에게 어떻게 전해질 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꽤 슬퍼서 이제야 멈추기를 결심했다고 썼지만 난 꽤 슬픈 게 아니라 정말 아주 많이 슬프다. 애정하는 친구들의 글과 목소리가 여전히 너무 좋은데…그래도 내 욕심만 부리면 안 되겠지. 또 너무 속 이야기를 털어놓아도 부담스럽겠지. 간단히 '그동안 고마웠다'는 말만으로 끝내자. 그렇게 결심을 다졌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간다. 눈물이 차오르는 걸 막으려 고개를 뒤로 젖혔다. 몇 분후 정신을 차리고 샐러드가 든 비닐봉지를 쥐고 사무실로 올라갔다.


다시 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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