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9131920 (영화 <패터슨>)
초등학교 4학년이었나. 아마도 그날은 제사 준비로 한창 바쁜 엄마의 딸그락 소리가 방문 너머로 쉼 없이 들려오고 있었을 것이다. 햇살이 따스한 계절이 돌아오면 겨우내 잠시 우리 집에 머물렀던 할머니가 시골집으로 내려가신다. 나는 주인 없는 깜깜한 방에 들어가 손바닥만 한 소반을 폈다. 꼬릿한 옻칠 내 가득한 소반 위에 하얀 공책과 나무젓가락을 깎아 만든 펜(깃털 펜의 응용 버전), 파란색 잉크통을 가지런히 놓았다. 잉크에 나무젓가락 펜을 적셔 이제부터 소설을 써볼 테야... 첫 글자, 첫 문장을 호기롭게 지어내곤 했는데 그 어린 나이에도 첫 문장을 쓰는 건 감당키 어려운 일임을 알았는지 이내 구겨진 종이뭉치들만 방안을 굴러다녔다. 우연찮게 선생님을 주제로 한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았던 게 시작이었다. 그 후로 피어난 '글을 쓰고 싶다'는 갈망은 생각보다 깊게 마음에 박혔던 모양이다. 소설이라 말하고 '감정 쓰레기'라 읽히는 의식은 마음이 한가할 때마다 진행되었다.
얼마 전 수십 년간 차곡차곡 쌓아둔 일기들을 모두 태웠다.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모르고 몰라서 모를 거라서 다친 마음들을 쓸어 담은 이야기. 충분히 아팠고 충분히 까발렸고 그래서 충분히 쓸모를 다한 글 뭉치다. 다시 삶을 사랑할 수 있게 된 마지막 문장을 끝내자 더는 이런 방식으로는 쓰고 싶지 않아 졌다. 한마디로 진력이 난 것이다.
서너 번의 낮과 그만큼의 밤을 보낸 뒤 한결 가뿐해진 마음으로 노트북을 열었다. 웬걸... 도통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하루 이틀 뭐 그렇게 지나면 나아질 줄 알았다. 어떻게든 써보려고 엄마, 나, 딸아이로 이어지는 대물림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글 초반에 등장한 정신건강클리닉의 공간 묘사에 빠져 길을 잃었다. 밥 하는 걸 세상 무엇보다 싫어해서 그 이유에 대해 구구절절 쓰다 정신을 차렸다. 엄마처럼 수십 년의 인생사를 펼쳐야만 사람들이 이해할 거라는 착각을 내가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익숙했던 방식은 쉬이 고쳐지지 않는다. 쓰던 글들을 굳은 결의로 삭제하고 지금까지의 방식을 리셋하려 했다. 그러나 다른 방식의 그것을 알지 못하는 나는 망망대해에 표류한 심정으로 몇 주째 흐릿한 나날을 흘려보내고 있다.
감히 말하자면 글은 나의 인생이다. 내가 쓰는 글은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다.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았던 방식의 글이어도 내가 쓴 글에서 치유받고 내가 그린 글에서 희망을 보았다. 그러므로 이제는 글다운 글이 쓰고 싶었다. 이런 나의 바람을 알아챈 유튜브 알고리즘은 야심한 시간을 틈타 영화 한 편을 들이밀었다. 시 쓰는 버스기사의 일주일을 또박또박 보여주는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 <패터슨>이다. 이렇다 할 사건이라곤 버스기사 패터슨의 시 노트를 반려견이 갈기갈기 찢어버린 게 다였지만 나는 모든 장면이 낯익어서 오히려 특별하게 느껴졌다.
패터슨은 틈틈이 시를 쓴다. 그의 일상은 쳇바퀴처럼 정해져 있다. 그러나 어제와 오늘의 일상은 닮은 듯 변주된다. 아침기상 벨을 끄고 바라보는 잠든 아내의 얼굴, 버스를 운전하면서 만나는 익숙하고 낯선 사람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들, 아내와 밥을 먹고 나서는 산책길, 그리고 친숙한 지인들과 나누는 소소한 대화 중에도 그는 시어를 고민하며 사유한다. 그러다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기면 노트를 펼치고 응축된 단어들로 다음 문장을 이어간다. 매일 반복되는 비슷한 일상을 다르게 만드는 것은 사유의 시간이라는 감독의 메시지를 나는 큰 숙고 없이 이해해 버렸다.
그는 아내 외에 다른 사람과 시를 공유하지 않는다. 시를 출판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적어도 영화 속 일상에서는. 그러나 그의 일상 곳곳에 시가 깃들어 있다. 자신만의 시를 갖기 위해 수행에 정진하는 구도자처럼 그에게 시는 진정한 즐거움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그 어떤 취미도 글쓰기만큼 이렇게 오랜 시간 내 곁을 지키지 못했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고 사유하며 그것을 시어로 옮겨내는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깨달았다. 생각을 모아 글을 쓰는 행위가 얼마나 근사한지를. 그러니 글다운 글에 조급해 말고 그냥 써도 된다는 것을.
글을 쓰는 행위는 근사하다.
주방 한켠에 자리를 만들고 노트북을 열었다.
가만히 눈 감고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니
들리는 건 커졌다 작아졌다 반복되는 매미울음뿐.
이 생각 저 생각 떠올리다
마침내
첫 글자, 첫 문장을 써 내려가는 순간!
근사하다는 형용사에 가까워진 나와 마주한다.
둔탁한 일상에서 삐져나온 징징거림에
참 많이도 글쓰기를 이용해 먹었다.
미안한 마음에 갈피를 못 잡고 한참을
멈춰 있었는데...
책 한 권이 날아와 마음을 흔들고
시 쓰는 버스기사의 영화가 몸을 일으켜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