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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롱지다 May 06. 2023

쓰고 나면 지워질 이야기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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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 가장 신기했던 두 가지는 정시 퇴근과 사무실 직원 중 어느 누구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요즘 친구들은 일이 그렇게 힘들지 않은가 봐!'  


내심 시대를 잘 타고난 이들이 부럽기도 진짜 일이 힘들지 않을 만큼 직장생활이 편한가 진심 궁금한 마음도 들었다. 만약 담배연기가 자욱한 사무실에서 매일 밤을 새우며 새벽에 귀가하는 직장생활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렇게 긴 경력단절의 시간을 보냈을까? (나 때는 미술과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들 대부분이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끊은 지 딱 15년이다. 내가 담배를 피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담배 피우는 여자에 대한 암묵적인 사회적 비난에 맞설 용기는 없었지만 나대로는 어떤 방식으로든 불만을 표출해야 했고 살아남고 싶었기에 아무도 몰래 담배를 피웠다. 때론 연거푸 필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시간을 정해두고 정기적으로 쓰레기통을 비우듯 피웠다. 담배를 피우면 곧 죽을 것 같은 역겨운 기운이 내 몸속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숨어있는 불편한 감정들을 찾아낸다. 내쉬는 숨에 그 기운은 불편한 감정들을 이끌고 몸 밖으로 빠져나온다. 이를 담배연기라 한다. 그러니 당연히 담배연기는 나쁠 수밖에. 연기가 사라지듯 감정들도 자취를 감춘다. 그렇게 몇 차례 큰 한숨을 내쉬고 나면 내 속은 더할 나위 없이 텅 비워진다. 누군가의 감정을 그대로 받아내도 기분이 나빠지지 않는다. 그것과 충돌할 나는 이미 없으니까.


나는 대체로 온순한 편이다. 누구와도 불편한 관계는 맺고 싶지 않았다. 나의 바람처럼 세상사가 그리 녹록했을까? 화는 내고 싶지 않고 불만을 기분 나쁘지 않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다. 상대의 기분을 헤아리고 그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이해해 보려는 태도. 성인군자도 아닌 내가 이런 태도를 갖출 수 있었던 건 담배 덕분이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누군가 내게 일을 잘하지 못했다던가 당신이 원하는 방향에 따르지 않았다고 지적질을 했을 때 조용히 아무도 없는 공간(대부분 화장실이다.)을 찾는다. 담배 하나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이 여러 번 반복될수록 나는 그 수만큼 사라졌고 그 수만큼 살아나는 초인적인 기분을 느낀다. 초인이 된 나는 더 이상 타인의 기분에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되려 누군가의 기분에 맞춰 죄송하다던가 앞으로 잘해보겠다는 말과 표정이 뇌를 거치지 않아도 술술 나온다.


타인과의 부대낌이 적어진 후에도 이미 그 맛을 알아버린 나는 또 아무도 몰래 담배를 피웠다. 어느 날 갑자기 손발이 묶인 전업주부가 되어버린 것이다.(물론 내가 원한 일이다.) 밥을 먹고 양치를 하듯 정기적으로 피우는 담배는 내 우울도 치료해 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울하니까 담배를 피운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담배를 피우는 동안 우울감이 사라지기 때문에 담배를 피운다. 2~3분가량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서 몽롱한 기분에 휩싸인 채 반항과 자유를 꿈꾼다. 이러한 의식이 끝나기 무섭게 더 열심히 씻고 더 부지런히 집안을 환기하고 청소했다. 내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집이 깨끗하고 단정하냐며 칭찬을 했다.

홀로 가정경제를 책임지는 남편과 그런 남편을 안쓰러워하는 시댁의 눈치를 보며 육아와 가사노동으로 점철된 하루를 보내다 보면 자유를 꿈꿀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하다. 불평등한 관계들 속에서 나도 모르게 찾아오는 울증을 일시적으로 잠재워줄 수 있는 것은 결국 담배뿐이었는데 그 시간마저 허락되지 않는 날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그제야 중독의 심각성을 깨달았고 서서히 끊을 준비를 해나갔다. 담배를 끊고 나서 건강은 좋아졌는지 모르겠지만 하루하루 더 게을러지고 있다. 이제야 되돌아보면 남편도 시댁도 눈치를 준 적이 없었다. 육아도 내가 해보고 싶었던 영역이고 가사노동도 나름 재미있었다. 그럼에도 스스로가 늘 못마땅했던 건 오랫동안 세뇌당해온 일과 가정생활을 완벽히 해내는 커리어우먼의 환상때문이었다. 불평등하다고 느꼈던 감정 역시 과도한 자기연민에 빠진 결과였을지도.


때로는 담배를 피우던 내가 아름다웠다고 생각한다. 치열하게 살아내려고 노력했던 내가, 그 가운데서 나를 지키려 서서히 죽어가던 내가. 지금은 담배 연기를 맡아도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충동이 일지 않지만 담배 피우는 사람들을 보면 양가적 마음이 든다. 아무 데서고 편하게 담배를 입에 무는 그들의 자유로움이 부럽다가도 그들이 나처럼 아파서 피는 담배가 아니길 바랐다. 또 아직도 맘 한쪽에 간직한 로망 하나가 있다. 깊은 밤 깜깜한 하늘에 총총히 박혀있는 별들을 바라볼 때, 아무도 깨지 않은 어스름한 새벽녘 맑디 맑은 찬공기를 온 얼굴로 받아낼 때 피우는 담배 한 모금! 요즘은 그 시간에 글을 쓴다. 담배는 끊는 게 아니고 참는 거라고들 한다. 아는 맛이 더 무섭다고 하던데... 어쩌면 나도 참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세상에 나 홀로 남게 된다면 죽도록 담배를 태우리라는 꿈을 꿔보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정작 그 풍경을 상상하면 괜시리 슬퍼진다. 그런 날은 오지 않아야 한다.



쓰고 나면 지워질 이야기 하나는 담배였다. 수십 년간 맘속에 담아두고 입 밖으로 꺼내어보지 못한 그 단어와 문장을 오늘 원 없이 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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