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23
침대에 누워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았다. 생각보다 글쓰기가 편했다. 재택근무하는 날이면 남편은 늘 이런 식으로 안방 침대에서 일을 했다. 안방에 무언가를 가지러 오고 갈 때마다 남편을 보며 혀를 끌끌 찼었는데... 새로운 노트북이 생기고 어젯밤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 나도 따라 해 보기로 했다. 책상에 앉아 각 잡고 글을 쓸 만큼 맘의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쓰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침대헤드에 2개의 베개를 포개어 세웠다. 그리고 목과 어깨, 등으로 이어지는 라인이 베개에 잘 밀착되도록 왔다 갔다 등을 움직이며 자세를 잡고서는 드디어 36개월 구독으로 산 삼성노트북을 배와 세운 무릎 사이에 안착시켰다. 글쓰기 앱을 열고 마침내 첫 글자를 쓰려는데... 한참 동안 커서만 깜빡깜빡했다.
원래 글감은 정해놓은 상태였다. 저녁식사 후 매일 딸과 함께 밤산책을 나선다. 그때마다 아이와 나눈 이야기들이 제법 그럴싸해 때가 되면 글로 남겨두리라 맘을 먹곤 했었다. 어제는 오후부터 아이의 행동이 불편해 보였다. 이어폰을 낀 채 상기된 얼굴로 이방 저방을 돌아다니길래 힘드냐고 물어보려다 말았다. 노이즈캔슬링이 썩 좋은 이어폰이기도 했고 볼륨을 한껏 높인 뮤지컬넘버를 온몸에 휘감고 있을 게 뻔했으니까. 그 말은 즉 내가 아이의 눈을 마주 보고 말을 하기 전에는 나의 말이 아이에게 닿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불편한 마음으로 회사일을 끝내고 저녁준비를 하기 시작했을 때 화장실에서 샤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곤 무척이나 개운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집 앞 공원을 한 바퀴쯤 돌고 나자 아이는 말문을 열었다.
이젠 괜찮아!
어떻게 했길래 괜찮아졌어?
씻었잖아.
씻는 게 도움이 돼?
누가 그랬어. 우울은 수용성이라고.
그런 말이 있어?
엉! 우울은 수용성, 불안은 뭐 래더라...
그게 맞는 말이면 참 좋겠다. 힘들 때마다 씻으면 되잖아.
한여름밤, 낮동안의 열기도 못 막아내는 까만 밤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집에 돌아와 물샤워를 하면서 이 이야기는 기록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기 전 핸드폰으로 '우울은 수용성'이란 말의 근거를 찾아보았다. 검색창을 쭉 훑어보는데 '우울은 수용성, 불안은 지용성'이란 문구가 보였다. 그 밑으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님의 칼럼도 보였는데 전혀 근거가 없단다. 시적표현도 아니라 하고 의학적 근거는 더더욱 없어서 실망했다. 글감이 사라져 버렸다.
그럼에도 다시 문장을 엮어 어제의 일을 기록하는 이유는 아마도 간지 떨어지는 이 문구에 나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일지도.
어제도 그래서 아이는 무사했고, 오늘도 그렇게 자해충동으로부터 벗어났다.
만성우울 4년차에 접어든 아이의 보호자 일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