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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롱지다 Oct 29. 2023

쓰고 나면 지워질 이야기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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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이 딱 그랬어. 왜 그런 날 있잖아. 뭔지 모를 싱숭생숭한 마음, 그 마음과 선명하게 대비되는 너무도 화창한 가을 아침. 난 아무 플리나 틀어놓고 지하철을 탔는데 깜박 잠이 들었나 봐. 차분하고 쓸쓸한 Carla bruni의 목소리가 나를 깨웠어.


I don't wanna talk

About things we've gone through

Though it's hurting me

Now it's history

.

.

.

맞아! 난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어.

내가 겪고 있는 일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어.

비록 나를 아프게 할지라도 이젠 다 지난 일이니까.


툭! 물 한 방울이 떨어지더군.


그 후로 3일 동안 이 노래를 수백 번 수천번 들었나 봐. 마음을 휩쓸었던 걱정, 두려움, 상실의 회오리가 서서히 물러가고 다시 제로썸의 날이 밝아왔어.




그날은 회사가 이사를 했어. 총무과 김 과장은 엄마처럼 회사경비가 많이 드니 사무실 규모를 줄여야 한다고 대표를 설득했어. 홍대미대를 나온 대표는 홍대와 합정역 근처를 벗어나는 걸 원치 않았어. 그래서 우리는 아주 아주 근사한 전망을 가진 테라스가 있는, 아주 아주 작은 오피스텔로 이사를 가게 되었지. 5명의 직원은 육아로 인한 재택근무, 2명은 현장파견직, 상근 하는 직원은 나포함 3명. 나 역시 곧 휴직이라 이 오피스텔은 송 주임과 김 과장을 위한 공간이 되겠지. 대표는 매일 지방 어딘가로 출장 중이어서 사무실에 잘 오지 않아. 그게 우리 회사의 가장 큰 장점이지!


문제는 이사하기 전 사무실에 있던 짐들이야. 7년 전만 해도 7층 규모의 회사 소유의 건물에서 대표실, 회의실, 3~4개 부서별 사무실, 도서관을 층별로 나누어 써도 직원이 넘쳐날 정도로 번창했던 회사였어.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많은 이들이 떠나고 5년 전 단층으로 이사를 했지. 그때도 층별로 있던 사무용 가구나, 컴퓨터, 책들을 어떻게든 구겨 넣느라 김 과장이 고생이 많았다고 해. 대표는 아까워서 못 버린다 하고 김 과장은 들어갈 데가 없어 버려야 한다 하고. (그때 난 재택으로 일을 하고 있어서 그런 사정이 있는 줄은 몰랐지.) 


이번엔 더 했어. 그러나 책상 4개도 들어갈까 말까 한 오피스텔은 대표의 사기를 완전히 꺾어버렸지. 김 과장의 지시에 따라 이사하기 이틀 전부터 폐기하거나 다른 창고로 보낼 가구와 책을 분류하고 가져갈 짐을 싸기 시작했어. 나는 포장이사를 하면 되지 않냐고 김 과장에게 투덜거렸지만 그녀는 그럴 돈도 아껴야 한다고 했어. 엄마처럼. 나보다 한 살 어린 김 과장을 따라다니며 칭얼대는 내가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애가 된 기분이었어.


이사를 하는 날은 더 심했어. 체감상 100분의 1로 줄어든 짐도 만만치 않았거든. 이삿짐 업체는 텅 빈 오피스텔 한가운데에 짐을 쏟아놓았지. 작고 힘없는 나, 나보다 더 작고 깡마른 김 과장, 키는 큰데 깡마른 송 주임 이렇게 여자 셋이서 크고 작은 짐들을 이리저리 옮겨야 했어. 나는 또 김 과장에게 '이건 아니다. 제발 힘쓰는 남자 인력을 구해달라' 애원했어. 옆에 있던 이삿짐센터 소장이 보다 못해 한 마디 거들어주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렇게 빨리 인력을 구해 김 과장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면 나는 정말이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을 거야.


곧 점심시간이 되었고 또 저녁시간이 되었어. 여전히 짐정리에 여념 없는 김 과장에게 이제는 제발 밥을 달라고 했더니 자기는 먹지 않겠다는 거야. 그렇게 먹는다고 쉬어버리면 이 짐정리를 오늘 안에 못 끝낼 것 같다나! 나와 김 과장 눈치를 보며 삼각김밥 하나, 젤리로 점심을 때운 송 주임을 생각하며 나는 또 책임감을 갖고 투덜댔지. 결국 밤 8시가 되어서야 자장면과 탕수육이 말끔해진 책상 한편에 펼쳐졌어. 안 먹겠다는 김 과장도 한 젓가락이 열 젓가락이 되자 노곤해진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았어. 미안하대. 나도 미안하다고 했지. 우리는 누구를 위해 이렇게 돈을 아끼고 누구를 위해 이런 노동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입을 모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지.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이게 우리가 세상을 살아온 방식이니까. 회사 돈을 아껴야 우리 월급이 밀리지 않을 테고 그 돈으로 자식을 키울 수 있으니까. 근데 말이야... 회사 돈을 아끼고 월급이 밀리지 않도록 회사 운영을 하는 건 대표가 할 일 아닌가!


But what can I say?
Rules must be obeyed


The judges will decide (will decide)
The likes of me abide (me abide)
Spectators of the show (of the show)
Always staying low (staying low)


The game is on again (on again)




이틀 전 동네 지인들과 맥주 한 잔을 했어. 나는 그때까지도 내 마음을 잘 몰랐던 것 같아. 그냥 잘 살아내고 있다고 그래서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페일에일 한 모금에 입이 터져버렸지 뭐야. 중간정산으로 퇴직금을 받기 위해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구질구질하게 대표에게 해야만 했던 이야기를 풀어놓고, 그 퇴직금으로 수능을 치른 세령이와 여행을 갔다 와서는 시골집을 이쁘게 꾸며 에어비앤비를 해보려 한다고 마구 떠들어댔어.


그러자 한 언니가 왜 그렇게까지 애를 쓰냐고 그냥 편하게 살라고 하더군. 난 참 그 언니를 좋아했어. 만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동안 수없이 서로의 일상을 주고받으며 살아왔는데도 언니는 늘 새롭다는 듯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어. 그렇지 늘 새로워서...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선택을 하는지 전혀 이해를 못 했던 거야. 그럴 때마다 나는 또 그럴 수밖에 없는 내 이야길 했어.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공감해 주길 바라면서 이번에도 또 주저리주저리. 가만히 듣던 언니가 걱정과 배려가 담긴 질문을 했어.


"곧 수능인데 세령인 어때? "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눈물 버튼이 눌러져 버렸어. 터질 듯한 뭉탱이가 밀어 올린 물방울을 눈가에 머금고 잘 지내고 있다고. 잘 요양하고 있다고 말끝을 흐리며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려 했지. 그러자 이 해맑은 언니는 법대와 의대에 다니는 남매의 밥을 챙기는 일이 너무 힘들다. 언제쯤 이 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하소연을 시작했어. 나는 타인의 밥을 챙기는 일 설령 그 존재가 내 자식이어도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인 것 같다고 장단을 맞추었어. 진실로 내겐 그러하니까. 그러나 속으로는 이렇게 외치고 있었지.


'언닌 일주일에 겨우 이틀, 아이들이 집에 오는 날만 밥 하면 되잖아. 나는 재택을 하든 출근을 하든 회사일에 온종일 집에 있는 아이들의 점심 저녁을 다 챙겨야 하는데, 그러고도 노후준비를 못하고 있는데... 언니는 강남에 집이 두 채잖아. 아무 때나 언니 내킬 때 여행도 갈 수 있잖아. 또 아이들 학비걱정도 하지 않잖아... 또... 또... 나처럼 다음 달은 어떻게 살지 뭐 그 따위 걱정은 평생 안 해도 되잖아!'


못난 마음은 이제 나 자신에게도 숨겨지지 않았어.


The winner takes it all

The loser's standing small

Beside the victory

That's her destiny




어제 퇴근길은 제법 쌀쌀했어. Carla bruni의 The winner takes it all을 들으며 못난 마음을 다독였지. 가족 단톡이 울렸어. 오후에 아르바이트를 간 아들이 늦는다고 했어. 날이 추워지면 밤늦게 또는 새벽에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귀가하는 아들의 안부가 걱정되어 겨울엔 하지 말라고 말리고 싶어. 그렇지만 20살이 넘은 아들이 스스로 밥벌이를 하는 게 당연한 거라고 가르치는 강한 엄마가 되어야 하기에 나는 애써 모르는 척 하지. 집에 오니 일찌감치 학교를 조퇴한 세령인 필라테스를 가고 어스름한 거실에 고양이들만 있었어.


냉장고에서 당근과 맛살을 꺼내 채를 썰어 기름에 데치듯 볶고 소고기는 갈아 참기름, 다진 마늘, 간장으로 간을 해서 조렸지. 대여섯 개의 계란은 두껍게 지단을 부쳤어. 준비된 재료를 식탁에 펼쳐놓고 김밥을 싸기 시작했어. 김밥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누구든 바로 먹을 수 있고 나는 때때마다 데우는 수고를 하지 않아 이렇게 아무도 없는 저녁엔 부엌에만 조명을 켜고 음악을 크게 틀고 김밥을 싸지.


가족들이 먹을 만큼 8줄의 김밥을 다 싸가는 데도 남편이 오지 않아 전화를 걸었어. 남편은 장례식장에 있다고 했어. 남편과 친하게 지내던 거래처 부장의 와이프가 암으로 그제 밤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대. 그이는 오후 2시쯤 장례식장을 찾았는데 사람이 없어 계속 자리를 지켜주고 싶다고 했어. 그는 어떤 트라우마로 인해 장례식장 음식은 전혀 입에 대질 못해. 그 장소도 힘들어했지. 그런데도 그렇게 있겠다는 마음이 이뻐서 그이 몫의 김밥을 어느 해 아버님이 내 생일날 선물해 주신 접시에 담아 랩으로 싸두었어. 문득 남편이 고마워졌어.


지난 5월과 6월 갑을관계로 맺어진 거래처에서 성추행과 성희롱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 사건으로 신념을 갖고 잘 해내던 일에서 배제되지 않았다면 당장의 생계가 걱정되어도 휴직이나 퇴사를 고려하지 않았겠지. 남편이 처음 내게 꽃을 선물한 날과 밤기차를 타고 정동진에서 함께 해돋이를 맞이한 날이 떠올랐어. 나만 바라보며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 6시면 퇴근해 집으로 돌아오는 지난한 일상을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는 남편이 정말 고맙다는 생각이 새삼스레 들었지.


거의 10시가 다 되어 남편이 집에 왔어. 서둘러 라면을 끓이고 김밥의 랩을 벗기며 장례식장의 그분은 연배가 어떻게 되냐고 물었어.


"우리랑 비슷할걸. 한두 살 차이 날까. 근데 아이가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래!"

"아이고... 어째. 언제 암인 걸 알게 된 거야?"

"몇 년 되었나 봐. 3개월 전에 병원에서 치료할 약이 없다며 호스피스 병원을 권했대. 와이프는 처음엔 그곳에 가길 싫어해서 가족들이 간병을 하기로 했는데 갑작스러운 응급상황이 잦아지고 대처가 안되다 보니 결국 그곳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하네."

"혹시 그걸 남편 분이 많이 미안해하고 가슴 아파해?"

"그건 아닌가 봐."


난 도대체 뭘 걱정하고 뭘 두려워했던 걸까! 날이 추워지면 지병처럼 찾아오는 마음의 빈곤을 48번째 겪어놓고도 조금도 익숙해지지 않았나 봐. 오히려 그 풍랑에 또 휘말려 버리다니... 정신이 번쩍 들었어. 그리고 이런 세상사를 들어야만 정신을 차린 내가 참 못났다 생각했지. 그래 정말 못났어. 아유 참 못났다.


실은 이 말을 몸서리치도록 쓰고 또 써서 마음에 지워버리고 싶었어. 세상을 덜 사랑할 걸 그랬나 봐. 그랬더라면 이토록 이해받으려 이렇게 못나버린 나를 설명하는 일 같은 건 하지 않을 텐데… 이젠 정말 안 하고 싶어.


I apologize
If it makes you feel bad
Seeing me so tense
No self-confidence
But you see


The winner takes it all

The winner takes i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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