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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롱지다 May 07. 2022

글 그리기

마음이 시키는 일_ 2011240628 

긴 경력단절의 시간을 뚫고 겨우 일머리에 익숙해질 무렵...

내 마음을 그려줄 글은 나만 쓸 수 있음을 깨달았다. 소소한 일상과 사건들을 곱씹어 장면마다 글로 그리는 작업은 제법 긴 시간을 요하지만 매번 매만질 때마다 상황 속의 나와 글 속의 내가 점점 합일되어 가는 기쁨을 나는 안다.

이런 작업은 인상 깊은 상황을 잘 기억만 해두면 언제든 그릴 수 있고 '나'라는 필터를 통과하여 나의 습관이 밴 몇 안 되는 단어로 문장을 꾸려가는 재미가 솔솔 하다. 글의 평가도 그 당시 내 마음과 얼마나 근접했는지가 그 기준이 되니 나름 혼자 즐기는 취미 생활로는 최고가 아닌가 싶다. 서투른 문장력과 사건에 대한 이해 혹은 통찰력의 부족은 시간을 더 들이거나 몇 년을 묵힌 후 다시 숙고하면 한결 나아진다. 이런 글이 타인의 기준에 못 미친다면 그건 나의 인식 밖의 문제라며 아주 멋진 핑계도 진작에 챙겨두었다.


난감해진 건 작년부터였다.

몰래 즐기던 글 그리기를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가끔 타인의 눈에 어떻게 읽힐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것에 유연한 마음은 준비되어있지 않음으로 글을 그릴 때마다 나는 왜 보여주고 싶은 건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우연히 에세이 클럽을 만든 사람들의 기사를 읽었다. 곧바로 그들의 세상에 한 발을 들이 밀었다. 다양한 관심 주제들로 분류된 클럽들이 저마다의 색으로 유혹하면 누구든 쉽게 클릭 몇 번으로 모임에 참여할 수 있었다. 간단한 독서후기나 에세이는 생판 모르는 타인들의 내밀한 생각을 주고받는데 프리패스가 되었다. 특히 서로를 존대하며 취향을 존중하는 클럽의 룰과 참가자들의 태도는 내가 살아온 세계와는 참 다른 결을 가진 듯 보였다. 한동안 동경하며 두어 달을 망설였다. 지극히 사적인 일상에 무심히 감정 방울 하나 '톡' 떨어뜨리는 작가들의 글을 애정 한다.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이 욕망은 마침내 손가락을 움직여 에세이 클럽에 일정 금액을 결재하게 했다.


긴 팔의 맨투맨티를 입고도 꽤 쾌적했던 지난해 가을, 어느 토요일 밤에 첫 에세이 모임은 시작되었다.

연령제한이 없어 호기롭게 찾아간 장소에 40대, 엄밀히 말하면 40대 후반은 나밖에 없었다. 2~30대가 주를 이루는 멤버들 사이에서 나이가 들면 뻔뻔해지는 세상 이치를 맘껏 누렸다. 한 시즌 동안 진행된 나의 글에 대한 멤버들의 태도는 사려 깊었으나 문장으로 요약하면 혹독했다.


"글의 시점이 문제인지 아님 배열이 문제인지 잘 읽히지 않아요."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산발적으로 튀어나와 난해한 것 같아요."

"이건 한 많은 여인의 한풀이 같은데요!"


누군가한테는 굉장히 와 닿는 글일 수 있겠다 혹은 나이가 들면 이해할 수 있는 글일 것 같다는 말은 그나마 순화된 감상평이었다. 각각의 평에 변명은커녕 그제야 글의 문제가 내 눈에 명확하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신기한 건 그다음이었다. 회사일과 집안일을 밀쳐놓고 감상평을 복기하며 글감을 찾고 그리는 작업이 어느 때보다 더 신이 난 것이다. 정곡을 가감 없이 짚어주면서도 나를 바라보는 눈빛만은 한없이 따뜻했던 멤버들 덕분에 다음 시즌, 그다음 시즌을 홀린 듯 또 결재를 했다.


투자된 돈의 크기만큼 지속적인 글 그리기는 조금씩 나아지는 모양새를 갖추는 것 같다. 어느 날부터 아주 간간히  '글쓰기에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이번 글은 내용이 좋았다', '막힘없이 읽힌다'는 간결한 평을 들을 수 있었으니까. 아직도 내 글의 문제점을 찾은 데 어려움이 많다. 뭔가 늘 이상한데 좀 더 나은 방법은 또 묘연하다. 타인의 도움이 이제는 너무도 절실해졌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든 쓰인 글을 내보이고 싶은 마음이 나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보다 또렷해진다. 글을 그리는 시간이 더 신이 난다는 것.

그리고 마음이 시키는 일은 해봐야 알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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