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 다 맞설 필요는 없다_ 2008261046
잠시 눈을 붙이고 나면 남은 작업을 마무리할 의지가 생길 것만 같았다. 폭삭한 이불을 온몸에 넉넉히 감고 잔뜩 웅크린 자세로 소파에 누워 잠이 들랑말랑 하는 중이었다. 띡 띡띡띡띡... 현관문 비밀번호가 해제되는 소리가 재빠르게 나더니 작은 아이가 들어왔다. 이불속에 머리까지 파묻고 있어도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들어오는지 나는 언제나 알 수 있는 엄마니까 꼼짝 않고 왔어? 하고는 다시 잠을 청했다. 아이는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와 제방으로 가는 동안 엄마! 눈물이 나서 참느라 힘들었어 라는 말을 던지고 방문 너머로 사라졌다.
나는 여전히 이불속에서 말을 했다. 엄마가 선생님한테 전화할까? 시간을 옮겨 달라고?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숨을 고르고 조금의 시간을 기다리다 좀 더 큰소리로 물었다. 그럴까? 묵묵부답이다.
이불을 걷어내고 아이의 방문을 열었다. 아이는 이어폰을 끼고 사육사 다리를 붙잡으며 뒹글고 있는 아기 판다 영상을 보고 있었다. 아이의 어깨를 살짝 흔들자 천천히 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이내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더니 입술이 삐죽삐죽거렸다.
"엄마! 나 괜찮을 줄 알았어. 근데 같은 교실에 있는데 선생님 말씀이 갑자기 안 들리고 몸은 너무 떨리고 무서웠어."
"너한테 아는 척했어?"
"아니."
"다른 아이들하고는 친해 보였어?"
"아니. 아무도 말은 안 하고 수업만 들었어."
"엄마가 샘한테 전화할게. 아님 학원 그만둘까?"
"그럼 이제 다닐 수학 학원이 없잖아."
중학교 3학년인 딸은 6년 전 그 일이 아직도 무서울 줄은 상상도 못 했던 모양이다. 이제는 그 아이보다 몸집도 커졌고 친구를 사귀는 과정도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는데도 말이다. 지난주 딸이 다니는 수학 학원에 그 아이가 새로 들어왔다. 일주일에 세 번 가는 학원인데 엊그제는 학교를 다녀오자마자 몸이 안 좋다며 쉬고 싶다고 했다. 오늘은 그냥 가길래 괜찮은 줄 알았다.
*
딸은 초등학교를 전교에서 제일 작은 키로 입학해서 제일 작은 키로 졸업했다. 어느 해는 단 1센티도 크지 않은 적도 있었다. 아이의 아빠가 크니까 사람들은 뒤늦게 클 거라 위로했지만 초등학교 동기인 남편은 원래부터 컸다. 두 유전자의 평균으로 대물림되면 좋으련만. 딸은 평생 배고픈 적이 없는 남편의 식성을 닮고 키는 나를 닮았다. 전교에서 제일 작아도 그럭저럭 인기는 있어 곧잘 반장에 뽑히긴 했지만 맘에 맞는 친구를 사귀는 일은 녹록지 않았던 딸에게 처음으로 단짝 친구가 생긴 건 4학년이 되어서였다.
새 학년이 시작되고 한 달 후쯤 그 아이, Y가 전학을 왔다. 몇 명씩 짝을 지어 놀던 아이들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더니 조용히 파편처럼 흩어졌다. 학폭위를 여네 마네 하는 이야기도 슬쩍 들리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럴 수 있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느 날부터 딸과 단짝 친구 사이에 Y가 들어왔다. 처음엔 둘이서도 셋이서도 잘 놀았다. 어느새 Y와 단짝 친구는 한편이 되어 또래보다 작은 딸을 장난이야 하며 놀리다 따돌리기 시작했다. 딸이 다른 아이들과 같이 있는 것도 거슬렸는지 어디서든 그 모습이 보이면 달려와 곁에 있는 아이들만 데리고 가버렸다. 단짝을 잃는 딸은 다른 친구를 사귈 여건도 그럴 마음도 상실한 채 남은 학기를 홀로 견뎌야 했다. Y는 본인 없이 어울려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길길이 날뛰며 다그쳤던 터라 딸과 같은 상황이었던 몇몇 아이들도 각자 홀로 다니는 것을 선택했다.
2학기가 되자 Y는 또 다른 친구를 못마땅해했다. 딸에게 했던 모든 행동들은 그대로 그 친구에게 옮겨 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곧바로 학부모들의 싸움으로 번졌다. 그 해 막 임용되어 첫 학교 첫 담임을 맡았던 20대 여선생님은 그들을 중재하다 일 년을 못 버티고 미련 없이 학교를 그만두었다. 소문은 전교에 퍼졌고 각 반의 여자아이들은 학년이 바뀔 때마다 Y와 같은 반이 될까 마음을 졸였다. 학교에서는 Y를 감당할 수 있는 친구는 딸의 단짝이었던 친구밖에 없다며 졸업할 때까지 같은 반으로 배정했다. 오로지 Y의 탓만은 아니었지만 단짝 친구도 중학교 1년을 못 채우고 자퇴를 결정했다.
워낙 영민하고 다재다능한 Y는 특목중을 가고 싶어 했다. 이 작은 초등학교의 50명 남짓한 모든 여자아이들과 그들의 엄마들은 두 손 모아 기도했다. 제발 Y가 합격하기를... 그래서 동네 중학교에서 마주치지 않기를...
다행히 딸과는 다른 중학교로 배정이 되어 우리는 한숨 돌렸다. 그것도 잠시 여전히 한 아파트 단지 내에 살고 있어 저 멀리 서라도 Y가 보이면 딸은 빙 돌아서 오거나 숨이 차도록 뛰었다.
중학교 진학 후 Y는 놀랍게도 일진이 되었다는 소문이 들렸다. 가끔 동네에서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Y의 엄마를 본다. 강아지가 갑자기 움직이지 않으면 차도건 인도건 상관없이 길 한가운데 서서 소리를 지르곤 했다. 어서 걸어 걸으라고 안 걸어? 걸어! 사람 대하듯 화를 내다가 번쩍 들어서 몇 발자국을 걷다 도로 내려놓았다. 분이 안 풀리는지 또 소리를 질러 댔다.
*
학원 선생님과 통화를 하고 나니 아이의 얼굴이 환해졌다.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볼이며 입이며 마구 뽀뽀를 해댔다. 나도 맘이 편해졌다. 모든 일에 다 맞설 필요는 없다고 좀 피하고 살아도 괜찮다고 눈으로 다독였다.
"엄마! 이번 수학 시험은 잘 보고 싶은데..."
"중간고사 잘 봤잖아."
"60점이 뭐 잘 본 거야?"
"그 전 시험이 30점이었으니까 잘 본거지."
"하긴 30점이나 올랐네! 히히..."
"엄마! 근데 지난 수학 시험 때 너무 배 아팠잖아. 시험지만 펼치면 배가 아픈 거야. 그래서 시험지를 덮었더니 배가 안 아파졌어. 혹시나 해서 시험지를 살짝 다시 펴니까 또 죽을 것처럼 아픈 거야! 신기하지? "
"아이고 어떻게 시험을 쳤어?"
"일단 시험지를 덮어두고 배를 만지면서 살살 달랬지. '알았어 알았어... 안 볼게.' 하다가 좀 진정되면 '딱 한 문제만 볼게. 진짜 금방이야!' 하면서 말이야."
"뭐를 달래는데? 시험지? 니 배?"
"내 배를... 그렇게 한 문제씩 달래 가며 푸는데 진짜 굉장했어! 시험지가 내 힘으로는 도통 열 수 없는 거대한 철문으로 보이는 거야. 근데 그게 25개나 있대. 나는 그걸 하나씩 열어야 하고."
"하하하. 고생했다. 다음부턴 그냥 집에 와."
두려움의 실체는 마음에 있는 것을 아이는 알고 있는 듯 제 뱃속을 살살 달래 가며 알을 깨고 천천히 나아가는 모습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 언젠가는 애써 피하지 않아도 될 만큼 단단해지리라는 바람도 이루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