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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롱지다 Jul 23. 2022

아무도 미치지 않았고 악담은 현실이 되었다_ 2205070733 

내 나이 15살에

누군가  '너는 15년 후에는 평생 밥만 하고 살게 될 거야!'라고 말했다면  

미쳤다며 들은 척도 안 했을 것이다.


내 나이 25살에

누군가 '너는 5년 후에는 진짜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만 하다 죽을 거야!라고 말했다면  

무슨 그런 악담을... 그게 결혼을 앞둔 내게 할 말이냐고 사납게 달려들었을 것이다.


아무도 미치지 않았고 악담은 곧바로 현실이 되었다. 하하!


*

전업주부로 10년을 살았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다 더는 버틸 재간이 없어 일을 그만둔 후였다. 누군가 벌어오는 돈의 한도 내에서 산다는 것은 자존심을 한참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돈을 벌어 가정경제를 책임지는 일도 희생이지만 돈을 버는 사람을 한없이 배려하고 이해하는 일도 큰 희생이라는 걸 진작에 알았더라면 나는 좀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결과적으로 전업주부의 일도 그다지 잘하지 못했다. 정해진 가정경제에 맞춰 알뜰히 식단을 짜서 밥 짓는 일도 매 끼마다 버거웠고, 타고 난 체력이 약한 남편과 아이들의 건강에 촉각을 세우는 일도 지쳐갔다. 내 천성을 닮은 아이들을 세상이 원하는 방식으로 교육시키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그나마 집안일 중에서 좋아하는 일은 설거지와 청소 그리고 빨래다. 하얀 옷이 더 하얘지기를 바라면서도 친환경을 실천하는 일에 정성을 쏟았다. 천기저귀를 고집하며 두 아이를 키웠고 밀가루와 발효액으로 세제를 만들거나 직접 수세미를 키워 청소와 설거지에 이용했다. 웬만한 살림은 지속 가능한 생활용품으로 채웠다. 그러나 친환경 세제는 한 번에 닦이지 않아 여러 번 거품을 내서 또 여러 번 헹궈 내야 하고 자연에서 얻은 수세미는 수세미 섬유질이 그릇에 붙어 잘 떨어지지 않아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4인 가족의 저마다 다른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하루에 열 번 가까이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해도 그깟 물값쯤이야, 그깟 가사노동이야 하며 나로 인해 세상이 한 뼘 나아지는 기분을 누렸다. 음... 솔직히 말하면 의미 있는 일에 노동과 정성을 들이면 돈을 벌지 않아도 괜찮을 것만 같은 부채감이 사라져서 좋았다.


경력단절의 아픔은 모르겠다. 나는 워라벨을 존중하는 괜찮은 직장에 다니지도 않았고 대학원 공부를 하느라 경력도 그리 길지 않았다. 무엇보다 일이 너무 힘들어 허울 좋은 전문직 타이틀에 갇혀 경력을 계속 쌓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건축사무소에서 도면을  때나 대학 강사로 연구원으로 밤낮은 물론 주말도 없는 세상에서 아이가 생기자 정말 좋았다. 그렇다고 해서 바로 그만둘 수는 없었지만 드디어 일을  해도 되는 공식적인 핑계가 긴 거니까. 그러나  아이가 나를 온전히 필요로 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어느덧 밥과 빨래를 챙겨주는  외에 아이를 위해   있는 일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사춘기를 넘어선 아이는 자기만의 세상으로 나아간다.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엄마 마음은 쉽지만은 않아서 ‘아이 바라보기' 대신 시선을 밖으로 돌리기로 했다. 동네 슈퍼나 카페를 돌아다니며 일자리를 알아보았다. 그러던  대학원 동기의 소개로 지금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있었다. 재택근무라 내가 조금만  부지런하면 나라가 그렇게 강조하는 구호처럼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출  있을 것만 같았다. 실제로 일에 자신감이 붙을수록 그렇게 되었다.


요 며칠간 배달음식으로 저녁을 때웠다. 아침 9시에 자리에 앉으면 밤 9시까지 꼼짝없이 일만 한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재택이라는 유연한 근무시간을 즐기며 허리와 엉덩이 근육을 만들고 장도 봐서 하루 한 끼는 정성을 들여 가족들에게 선사했었다. 올해 초 연봉이 오르는 대신 일의 강도와 범위가 넓어져 친환경은 개뿔 나를 돌보고 집안일과 가족을 챙기는 일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그럼에도 이 모든 걸 묵인할 수 있는 지금이 내심 좋다.


*

[납작한 전골냄비에 정수물을 3분의 1 가량 채운다. 냉장고에서 한 계절을 난 김치 한 포기를 냄비에 담아 팔팔 끓인다. 보글보글에서 와글와글로 소리가 거세지면 육수 두 알을 퐁당 빠트린 후 오늘 사 온 큼지막한 돼지 목살 4~5장을 김치 위에 얹어놓는다. 뚜껑을 닫고 약불로 약 한 시간 가량을 은근하게 끓인다. (엄마가 된 지 20년이 넘어도 한 번에 두세 개의 반찬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것은 어렵다.) 찌개가 끝났으니 계란말이를 시작한다.]


오늘은 모처럼 장도 보고 저녁도 준비했다. 한동안 계속 시켜먹은 게 눈치가 보였던 탓이다. 저녁상을 눈앞에 두고 남편과 딸아이는 직접 내가 만든 거냐며 하얀 쌀밥에 말캉해진 김치를 올려 한 입가득 밀어 넣었다. 그 표정들을 보다 하마터면 엄마놀이를 계속해야겠다는 다짐을 할 뻔했다. 설거지를 하고 밀린 청소와 빨래, 분리수거를 끝내고 나니 나를 일터로 내몰았던, 고된 아르바이트를 끝낸 큰 애가 현관문을 밀고 들어왔다. 아이는 오자마자 배고프다며 오늘의 메뉴를 궁금해했다. 오랜만에 준비한 저녁과 집안일로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나는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오늘 하루 이 아이는 밥 먹을 겨를 없이 입시 준비와 아르바이트로 빠듯한 일과를 보내고 허기진 배를 움켜쥐며 겨우 돌아왔을 텐데도 말이다. 엄마가 돼서 참 못났다 하면서도 내 몸이 힘든 게 이제는 아들의 배고픔을 우선하는 나이가 되어버렸는지 아님 나이 탓으로 돌리고 싶은 건지 하튼 기분은 쭉 나빠졌다. 툴툴거리며 찌개를 데우고 다시 계란말이를 만들었다. 아들이 좋아하는 몇 가지 밑반찬을 식탁 위에 탁탁 내려놓았다. 어느새 손을 씻고 식탁에 앉은 아들은 흘깃 내 표정을 살피더니 말을 걸었다.  


" 자취하는 애들은 이렇게 일 끝나고 집에 가면 라면만 먹는대! 그래서 독립은 안 하려고..."


냄비에 올린 불을 끄느라 등을 돌린 나는 늘 강조하던 레퍼토리로 퉁명스럽게 맞받아쳤다.  


" 나이가 차면 독립을 해야지! 스스로 한 달을 살 수 있는 돈을 벌고 스스로 밥도 해 먹을 수 있어야 해!"


아차! 예전 같으면 나보다 더 짜증을 내거나 급기야 '밥 안 먹어' 하며 방으로 들어가 버릴 수도 있는 아이였기에... 아들의 동태를 감지하려고 숨을 멈추었다. 아무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드디어 다 끓은 김치찜과 계란말이를 식탁에 놓았을 때 아이는 세상 그렇게 해맑고 행복한 얼굴일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나 역시도 세상 힘듦이 사라져 버렸다.


아들은 허겁지겁 밥 두 그릇을 비우고 소화제를 달라고 했다. 오늘과 똑같은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빨리 소화시키고 잠들어야 하니까. ‘고맙습니다’ 한마디를 남기고 어기적 제 방으로 걸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았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저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밥 해주는 것 밖에 없는데 왜 나라는 엄마는 그게 그렇게 싫었을까? 그러고도 어떻게든 해먹이고 나면 그 마음 때문에 또 미안해지는 건 뭘까? 엄마인 나와 인간인 내가 끊임없이 투닥거리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느낌이다. 오늘 밤은 엄마인 내가 이겼다. 눈물은 어느새 말랐고 설거지를 하러 손 뻗으면 닿을 싱크대로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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