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친구 중에 먼저 하늘나라로 간 고등학교 친구가 있다.
고등학교 때 항상 통기타를 가지고 다니며 다리를 꼬고 담배를 물고 기타를 치던 친구였다.
그 친구가 신기했던 게 힘들고 짜증 날 때 욕 한마디도 입에 담지 않았고 정말 짜증 났을 때 하던 말이 "아 열라 짱나" 이 한마디였던 멘탈이 참 건강한 친구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20살이 되던 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너도 나도 군대를 가는 시기가 되었다.
20살부터 24살까지 고등학교 동창회를 하면 못 나온 친구들은 군대를 늦게 간 친구들이 대부분 이였다.
23살 즈음에 친구가 하늘나라를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친구는 군 입대 한 달 정도 남기고 군 입대 전 추억을 남기고 스쿠터를 타고 전국 여행을 갔다.
여행 중에 졸음운전 하는 대리기사의 차와 충돌하여 그 자리에서 사망을 했다.
오토바이가 그렇다.
아무리 내가 조심히 운행을 해도 보복운전이나 졸음운전 하는 사람이 박아버리면 정말 답이 없다.
친분의 깊이로 보면 많이 친하진 않았지만, 나와 친한 친구 중 그 친구와 정말 친한 친구가 두 명이 있어서 작은 동창회처럼 나를 포함한 8명 정도가 그 친구의 기일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 친구의 기일이 되면 삼삼오오 친구의 집에 모이기 시작했다.
항상 그 친구의 어머님, 아버님이 반겨 주셨다.
아들 친구들이니 항상 반겨 주시고 3년 동안은 어머님, 아버님께서 너무 힘들어하셨다.
자식 잃은 심정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나를 포함한 친구들은 기일만큼은 우리가 하루 아들이 되어 어머님, 아버님께 최선을 다해서 위로를 해드리고 싶었다.
그 친구와의 추억을 어머님, 아버님과 공유하며 술도 마시고 노래방도 가고 오늘 하루만큼은 우리가 아들들이 되어 주었다.
그 친구의 기일을 챙기던 5년째가 되던 날
시간이 지날수록 어머님 보다 아버님의 상심이 점점 커져가는걸 우리는 느끼기 시작했다.
아버님은 기일에 우리를 위해 소주 2짝을 사다 놓으시고 계속 종이컵에 소주를 가득 따라주시며
"우리 아들이랑 못 먹는 술, 우리 아들들이랑 다 마셔야지"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20대였고 술도 잘 마실 때라서 아버님께서 종이컵에 소주를 가득 따라주셔도 아무 내색하지 않고 마셨다.
아버님은 우리 모르게 계속 눈물을 훔치셨는지 눈가는 젖어있고 눈은 퉁퉁 부어 계셨다.
아버님과 우리들 1:8로 종이컵으로 계속 소주를 마셨다.
아버님은 거의 7병~10병을 드시는 것 같았다.
아버님이 만취하시면 이제 자야겠다고 비틀비틀 방에 들어가셔서 방문을 닫으면, 아버님의 울음소리가 계속 새어 나왔다.
우리는 내색하진 않았지만 가슴이 먹먹하고 가슴이 아팠다.
그 고통을 어찌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러다가 아버님이 돌아가실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 친구와 정말 친한 친구 두 명만 앞으로 기일을 챙기고 나머지 친구들은 그만 가기로 결정했다.
계속 기일을 챙길 친구 두 명에게도 아버님 술 많이 못 드시게 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하늘에 있는 친구도 우리의 결정을 이해해 줄거라 생각했다.
성우야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고 있지?
오늘 자기 전에 갑자기 네가 생각이 나서 글로 남겨본다.
너는 거기서 아직 23살이겠구나.
나중에 하늘나라 가게 되면 한번 보자.
그때가 되면 낭만 넘치게 다리 꼬고 담배하나 물고 통기타 연주해 줘.
나는 20년도 훨씬 지났지만 너의 특유의 머리 스타일, 말투, 서있는 포즈까지 뚜렷하게 생각이 난다.
고등학교 때 하교 하고 골목에서 담배 피우다가 경찰한테 걸려서 같이 잡혀간 거 기억나니?
그때도 너는 "아 열라 짱나" 이 한마디만 했었는데, 너무 웃겼었어.
그때가 참 그립다.
잘 지내고 있어.
나중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