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친구들과 30대까지 동창회 유지되던 친구들이 30명 남짓 됐었다.
예전 동창회는 참석할 사람은 회비 1만~3만 공지해서 연락을 하고 만났었다.
20대 때는 그저 술을 좋아할 때라 안주 4~5만 원에 소주 한 병에 500원 하는 집에 가서 안주 한 개, 두 개만 시켜놓고 소주만 지겹게 마셨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항상 모일 때마다 30명 넘는 친구들이 보였다.
항상 모일 때마다 술집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었다.
모이는 친구들은 많지만 진짜 친한 친구는 두 명 밖에 안 됐다.
각자 같은 동네 친구들과 친분의 깊이는 차이가 있었다.
그래도 그 모임, 그 테두리 안에서도 뒤늦게 마음 맞는 친구들과 몇몇 친하게 되고
나는 동창회 자체가 좋은 역할은 한다고 생각했다.
친구 한 명이 건설현장 경력이 12년이 넘는데 회사를 관두고 보험 영업을 시작한다고 해서
나의 와이프 보험을 그 친구에게 가입한 적이 있다.
또 다른 친구는 인테리어 회사를 창업했다고 해서, 장모님 집 인테리어를 친구에게 맡긴 적이 있다.
친구에게 맡기기 전에 동네 인테리어 가게에서 견적을 두세 곳을 내보고 친구에게 견적을 내니 견적이 다른 곳보다 3배가 높아서 잠시 고민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친구 찬스니까 잘 부탁한다고 인테리어를 한 적도 있다.
30대가 되고 우리의 젊음을 기억하자며 다 같이 모여서 정장을 입고 사진도 찍고 우리의 친분은 계속 갈 것 같았다.
하지만 여느 때와 똑같은 모임날 친구들 몇몇이 회장, 총무를 선출하고 회비를 모으자는 말을 하였다.
회비는 한 달에 만원이었고 그걸 모아서 모임 때 술도 마시고 , 결혼 축의금, 결혼화환, 근조호환을 하자고 했다.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은 반반이었다.
나 또한 반대를 하였다.
결혼 축의금은 서로의 친분의 깊이가 있고, 각자의 축의금 별개로 동문회라는 명목으로 더 받아가는 좋긴 하겠지만 그 별거 아닌 회비로 인해 안 좋게 흘러가는 게 염려되었다.
반대하는 애들을 부르지 않고 찬성하는 애들끼리 회장, 총무를 결정하고 회비를 모으기로 하면서 반대하던 15명이 동창회에 나오지 않았다.
나도 부르지 않은 자리에서 결정이 되었다고 해서 이미 불신의 불꽃은 피어나고 있었다.
나도 이미 나가기 싫었지만, 회장인 친구가 나와 친한 친구라서 몇 년 간은 참석을 하게 되었다.
역시나 역효과가 나기 시작했다.
모임날을 투표해서 잡고 회비를 안 낸 사람에게 자리에 오자마자 총무가 회비를 내라고 독촉을 한다.
한 달에 만원이지만 결혼하고 애들 키우느라 1년~2년 참석 못하던 친구가 동창회에 나오려면 회비 24만 원을 내고 동창회를 참석해야만 했다.
한 달에 만원이 2년~3년 참석 못하던 친구들은 회비가 점점 불어났고 오래간만에 얼굴을 보고 싶어도 올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다.
평소 찬성하던 친구들은 한 달에 만원이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때 한창 우리는 결혼할 시기였고 거의 외벌이였고 그 만원이 큰돈이 되는 순간 그 돈을 모두 납입하고 나오고 싶어 하는 친구들은 없었다.
그리고 대화의 기준이 전공 따라 간 친구들 위주의 대화였다.
나는 개발자고, 장사하는 친구, 보험 하는 친구들은 대화에 끼지도 못하고 1차, 2차, 3차를 가다 보니 몇몇이 터져버렸다.
건축얘기만 하고 다른 일하는 애들은 뭐 하는지 뭘 하는지 궁금해하지도 않는 친구들한테 서러움이 터져버렸다.
대기업 들어간 친구 두 명을 계속 X스코~ X스코~ 이렇게 띄워주니 그 친구 두 명은 우리를 너무 하찮게 보기 시작했다.
점점 예전 같지 않은 모임에 나를 포함한 몇몇은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방에 있는 펜션으로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친구 한 명이 야근을 하고 친구들 얼굴을 보고 싶어서 새벽에 차를 끌고 펜션에 왔다.
그 친구는 일도 힘든데 정말 친구들 얼굴 한번 보고 싶어서 온 건데, 이미 새벽에 술이 만취한 총무가 친구가 오자마자 회비를 내라고 난리를 쳤다.
새벽에 온 친구는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 나는 니들 얼굴 한번 보려고 이 새벽에 왔는데 돈 내라고 지x 하는 게 이게 맞아?! 어!!!" 하면서 바로 차를 타고 가버렸다.
이 광경을 본 나를 포함 몇몇이 더 이상 이건 동창회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그 이후로 동창회를 나가지 않았다.
내 기준 진짜 친한 친구 중 두 명 중에 한 명이었던 회장 친구에게 앞으로 동창회를 참석 의미가 없다고 안 나간다고 말하고 회장과도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다.
동창회를 참석 안 한 지 5년 정도 됐을 때 우리는 40살이 되었다.
갑자기 동창회 회장 친구한테 연락이 왔다.
40살이 되었으니 30살 때 찍은 단체사진 다시 찍기로 했다고
나는 30살 때 사진 찍었던 멤버 한 명이라도 빠지만 의미 없으니 나 빼고 다 모인다면 참석하겠다고 했지만
40살 단체 사진은 고작 6명이서 찍은걸 단톡방에 올렸다.
아휴.. 그저 한숨만 나온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단체 채팅방엔 26명이 있다.
하지만 참석하는 인원은 4~6명뿐이다.
올해는 스승의 날에 고등학교 선생님을 만난 사진, 그리고 모인 6명 사진을 보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이미 떨어져 나간 친구들에겐 연락조차도 안 하는 것 같다.
회장, 총무로 뽑힌 친구를 원망하진 않는다.
이 상황까지 오게 된 건 우리 친구들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회비를 다시 다 돌려주고 예전으로 돌아가면 참석을 할까? 이미 멀리 온 것 같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으며 이미 쌓인 서운함과 끼리끼리, 갈라치기에 지쳐서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지금은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 한 명과 가족 단위로 보거나 둘이서 보는 게 편해졌다.
내 인생에 동창회는 없어졌지만, 고등학교 친구들 중 부모님 상이 생기면 무조건 참석을 한다.
"경사는 못 챙겨도 조사는 무조건 챙긴다" 나 자신과의 약속이다.
장례식장에 정말 오래간만에 친구들을 만난다.
친구들도 나와 같은 마음인지 동창회를 별개로 정말 많은 친구들이 장례식장에 온다.
지금은 그거면 된 것 같다.
지금은 만나지 못하지만, 지금도 친구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모임은 안 나가지만 고등학교 친구임은 변함이 없다.
한 명 한 명 고등학교 때 추억도 있고, 다들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 키우느라 힘들고 먹고사는 게 먼저라서 가장의 역할을 하다 보니 여유가 없을 수도 있다.
나 또한 둘째가 이제 4살이라 가족이 우선이고 내 아이들이 먼저이다.
나중에 애들 좀 키우고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한 명씩 연락해서 만나서 술 한잔 걸치면서
어떻고 살고 있었는지 한번 물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