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 첫날,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곳에서 보급품을 줄을 서서 받았다.
보급품이 누락되거나 사이즈를 교환하러 오는 친구들은 분대장에게 발로 차이거나 싸대기를 맞았다.
펑 소리 날 정도로 때렸으니 귓방망이란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보급품을 받고 입대할 때 입은 옷을 박스에 담는데 3분을 줬다.
정신없이 벗어서 박스에 넣고 박스 뒤편에 펜으로 "엄마 아빠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라고 적었다.
그리곤 복도 중앙에서 분대장 한 명이 책상에 앉아서 전투화 묶는 법, 고무링 하는 법을 가르쳐줬다.
첫날 침상에 누워서 자려고 할 때 여기저기 훌쩍훌쩍 우는 소리를 들었다.
대략 10명 정도가 모포를 뒤집어쓰고 울고 있었다.
눈물은 전염된다고 했던가, 내무실에 절반을 울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나는 울지 않았다.
내가 지원해서 왔기 때문에 울면 바보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첫날이 지나고 여기가 훈련소가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입소대대라고 입대하고 3일 동안은 보급품 받고 대기하는 곳이라고 했다.
이틀째, 갑자기 취사지원 다섯 명 중에 한 명으로 착출 당했다.
취사병 현역병이 하라는 데로 야채 손질도 하고 이거 저거 나르고 정신이 없었다.
잠깐 쉬는 중 취사병이 골뱅이 통조림을 까서 하나씩 먹으라고 했다.
"요즘 군대도 골뱅이는 크게 나와~" 라면서 하나씩 주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하지만 이건 호의가 아니었다.
계속 하나씩 더 먹으라고 해서 우리 인당 골뱅이를 5~6개 정도 먹었다.
갑자기 500미리 흰 우유를 주더니 원샷하라고 한다.
우리는 "네?!" 이러니까 급 정색하더니 "원샷해 @#$" 육두문자가 날아온다.
우리 다섯은 그 자리에서 우유를 원샷했다.
세상에서 이렇게 비린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진짜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입안의 골뱅이 비린내와 우유 비린내가 섞여서 우리 다섯 중에 세명은 바로 구토를 했다.
취사병은 깔깔 웃으면서 알아서 치우라고 취사병 휴게실로 들어갔다.
이런 게 가혹행위구나 처음 느끼게 되었다.
입소대대에서 보급품을 담은 더블백을 매고 훈련소로 줄을 맞춰서 걸어갔다.
훈련소를 걸어 들어갈 때 여기저기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장면이 4주 차 형님들이 마스크를 쓰고 훈련소로 걸어가는 우리를 빤히 보면서 안쓰러운 모습표정으로 쳐다봤었다.
훈련소에서 우리 소대 훈육 분대장 별명이 악마여우였다.
상병이었고 카리스마 와 포스가 엄청났었다.
눈이 정말 여우처럼 작고 뾰족한 눈이었다.
훈련소 들어가자마자 전우조라고 3명이서 무조건 같이 다녀야 하는 지침이 있었다.
전우조 중에 한 명이 나보다 4살 많던 형이었는데 엄청 어리바리한 형이었다.
전우조로 엮여서 이 형 때문에 얼차려도 많이 받았다.
1월 1일 새해 떡국을 준다는 얘기가 들리면서 식사 집합을 하는데 평소 줄과 다르게 중구난방 개판으로 줄을 서게 되었다.
바로 얼차려로 팔 굽혀 펴기를 하는데 30개 하는데 새해 첫날부터 얼차려를 받아서 그런지 여기저기에서
"ㅆㅂ" 욕이 튀어나왔다. 계속 욕이 튀어나오면서 우리를 식사도 못하고 팔 굽혀 펴기만 300번은 한 것 같다.
분한 마음을 풀 데가 없으니 내무실 들어와서 훈련병들끼리 싸움이 났었다.
이제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갔다.
첫 사격을 했던 날 총소리가 이렇게 큰지 몰랐다.
총소리를 듣자마자 귀가 "삐이---" 소리가 날 정도로 컸었다.
PRI훈련을 계속하면서 영점 못 잡은 훈련병들은 야밤까지 PRI훈련을 했었다.
다행히 나는 영점을 잡아서 야밤까지 구르진 않았다.
총기 어깨견착을 제대로 못한 친구들은 광대뼈에 피멍이 들어있었다.
훈련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리 힘들지 않았다.
입대하기 전까지 태권도를 해서 체력이 남아돌았다.
체력검정에서 수백 명 중에 5등을 했었다.
너무 방심을 했는지 감기가 걸렸다.
열이 너무 나서 눈이 뒤집힐 것 같은데 정말 재수 없게도 유격 훈련이 있었다.
밥도 안 넘어갈 정도로 편도선이 부었고 밥도 제대로 못 넘기고 우유 한 팩씩 마시며 유격 훈련을 했다.
훈육분대장이 "너네들을 마지막으로 유격훈련 교장은 없어진다.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죽도록 시킬 것이다!" 라면서 누구 하나 사람을 잡으려고 굴리고 굴렸다.
몸도 안 좋은 상태에서 유격훈련을 끝냈다.
그리고 밤에 피를 토하고 열은 40도가 넘어서 의무실에 실려갔다.
다행인 건 금요일 저녁에 가서 주말 동안 회복을 할 수 있었다.
다른 요일이었다면 훈련 누락으로 다음 기수로 넘어가서 수료를 할뻔했다.
많은 훈련 중 중간정도 했을 때쯤
아버지에게 편지를 받았다.
내가 지원해서 간 군대 나는 절대 울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편지를 보고 처음으로 펑펑 울었다.
편지의 첫 문장이 "사랑하는 아들에게"였다.
"아들아, 엄마가 눈이 내리는 날이면 하루 종일 울고 있다. 몸은 괜찮으냐 훈련은 힘드냐"
아버지의 편지를 보면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어느 날 훈련병에게 전화 한 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나도 모르게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남자로서 이미 다 겪으셨던 아버지 목소리가 제일 먼저 듣고 싶었던 것 같았다.
옷가지를 보낸 택배박스가 왔을 때랑 훈련소에서 사진 왔을 때 어머니께서 엄청 많이 우셨다고 하셨다.
걱정하지 마시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전화 통화를 끝냈다.
대학 다닐 때 복학생 형님들이 "군대 가면 생명의 위협 한번 넘기는 거다~! 생각하고 절대 몸조심해"라고 신신당부한 적이 있다.
헬기레펠 훈련을 하는 날이었다. 사람이 공포를 느끼는 높이 20미터? 30미터쯤 된 것 같다.
안전 클립을 끼고 내려올 때 뒷짐으로 줄을 잡고 있는 손목을 꺾으면 제동이 걸린다고 했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었는데 내려가는 동안 아무리 제동을 걸려고 해도 멈추지 않았다.
나는 디렉트로 땅으로 내려갔다.
나는 순간 "아 나 여기서 죽겠구나" 생각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사진이 프레임처럼 넘어가면서 주마등을 보았다.
땅에 꽂히려는 순간 훈육분대장 한 명이 로프를 당겨줘서 땅 바로 앞에서 대롱대롱 매달렸다.
알고 보니 로프를 밑에 두 명이 팽팽하게 잡아줘야 오른쪽 손목으로 제동도 걸 수 있는데, 훈련병 두 명이 잡담을 하며 줄을 당기지 않았다.
순간 낙하하는 걸 보고 훈육분대장 하나가 뛰어가서 슬라이딩하면서 잡아 당겨서 나는 최악의 상황을 면하게 되었다.
훈련병 두 명은 그 자리에서 발로 차이고 얼차려를 엄청나게 당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진짜 죽을 뻔했다란 생각이 항상 든다.
그 이후 굵고 짧은 짜릿한 고통의 화생방 훈련도 하고, 한 겨울에 숙영 훈련도 했다.
하루 텐트를 치고 자는 훈련이었는데 핫팩을 끼고 자도 너무 추웠었다.
숙영 훈련 때 몇몇 부산 출신 친구들은 동상에 걸려서 다음 기수로 넘어간 사례도 생겼다.
무조건 훈련은 수료를 해야 했다.
이렇게 마지막 훈련 야간행군을 하게 되었다.
완전군장이지만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변수가 발생했다.
나의 전우조, 4살 많은 형이 연골연화증? 무슨 병인지도 몰랐는데, 야간행군 중반에 계속 무릎이 아픈지 절뚝거리며 걸어갔다.
무릎에 힘이 안 들어가는지 무릎이 풀린 것처럼 질질 끌고 가는 상태까지 되었다.
진짜 마지막 훈련인데 여기서 낙오돼서 다음 기수로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아서 전우조 한 명이 방독면을 다른 쪽 다리에 하고 나는 그 형의 군장을 메고 걸어갔다.
완전군장을 앞, 뒤로 하고 걷다 보니 체력이 급격하게 고갈되는 게 느껴졌다.
정말 체력이 탈탈 털리고 있는데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하 나한테 왜 이런 시련을 주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드디어 야간행군을 맞췄다.
4살 많은 형은 울면서 "나 전우애라는 걸 알 것 같아. 정말 고마워"라고 하는데
나는 말도 못 할 정도로 힘들어서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회복하는데 몇 주는 걸렸던 것 같았다.
그래도 우리 소대는 낙오자 한 명 없이 드디어 훈련소 과정을 마치고 마지막 시점에
훈육분대장이 "키 180 이상 거수"라고 해서 손을 들었다.
순간 나를 보더니 "너 키 몇이야"라고 하길래 "180입니다!"라고 하니 "음.. 안돼 안돼"
하면서 지나쳐갔다. 알고 보니 키 185 이상 훈련병들 헌병으로 착출 해서 나갔다고 한다.
이렇게 6주 훈련이지만 연초 명절까지 껴서 우리는 10주 훈련이 끝이 났다.
이제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운이 없는 친구들은 옆 연대 박격포로 가는 친구들도 있고, 훈육분대장으로 남는 친구들도 있고 여기저기 흩어지기 시작했다.
논산훈련소에선 전국으로 자대 배치를 받기 때문에 예측도, 예상도 할 수 없었다.
마지막에 악마여우 분대장이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줬던 게 기억이 난다.
나는 연무대역에서 기차를 타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몸을 실었다.
장교가 전투식량을 주고 도착하는 내내 갈궜던 기억밖에 안 난다.
병사도 아니고 장교면 직업군인일 텐데 왜 이렇게 뭐라 할까란 의문이 들었다.
논산 훈련소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이제 한 단계 넘었다는 생각만 들었다.
어느 순간 어디서 많이 본 역이 있길래 창밖을 보니 1호선을 타고 있었다!
이렇게 기차는 의정부역에 도착했고 더블백을 매고 차를 타고 들어갔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306 보충대로 가게 되었다.
306 보충대에서 3박 4일 동안 대기를 하고 진짜 자대 배치를 받는다고 했다.
훈련소에 10주 동안 담배를 못 폈었는데, 야수교 친구들이 담배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처음에 야수교라고 해서 야수 같은 괴물 같은 훈련을 받은 친구들인가 생각했더니
야전수송교육대 후반기 교육을 받고 온 친구들이었다. 하하하
식사를 하고 야수교 친구들한테 얼굴에 철판을 깔고 담배하나만 달라고 굽신굽신 거려서 담배 한 가치를 얻었다.
10주 만에 피는 담배란, 세상이 돌고 돌았다.
3박 4일 휴식하는 단계를 거치고 자대배치받는 날이 되었다.
군대는 줄이라고 했던가? 줄을 서있는 내 바로 앞에 친구가 17사단! 이라면서 무슨 노란 종이를 받았다.
나에게 17사단이면 송내, 부평 쪽이라 그 당시 꿈의 17사단이라고 불리던 우리 집과도 가까운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1 포병!이라고 하면서 노란 종이를 주었다.
응?! 내가 왜 포병이지????!!! 어안이 벙벙하다가 노란 종이에 주특기가 쓰여있었다.
1337:포병측지 응?! 난 전산병 지원했는데???!!
이렇게 또다시 뿔뿔이 흩어져서 어느새 여단 의무대에 도착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