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 근종 제거 수술, 1년 후
지난해동안 찍었던 사진을 뒤적거리다 남편이 찍어놓은 사진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작년 3월, 로봇 수술로 8cm와 5cm, 두 개의 자궁 근종을 제거하고 마취도 깨지 않은 상태에서 찍힌 거였어요.
'으악! 이거 뭐야! 왜 찍은 거야!
소리를 지를 만큼 핏기 없는 피부에, 퉁퉁 부어버린 얼굴. 정면 얼굴은 딱히 보이지 않는 측면 샷이지만 통증으로 우겨진 표정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수술 직후, 병실에 돌아오자마자 남편이 찍어 놓은 사진을 보며 지난 1년간의 시간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자궁 근종 제거가 간단한 수술의 일종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제가 참 운이 없었나 봅니다. 수술 후에도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았고 약물 부작용으로 오심(어지럼증)과 구토를 반복했으니까요. 놀라운 건 난생처음 입맛이란 게 없어지는 경험을 했다는 거죠. 결국, 퇴원 예정일보다 2박 3일이나 늦게 퇴원했습니다.
수술 2주 내로 동네 여성병원에서 실밥을 뽑고 몇 달 후엔 주치의에게 검진을 받아 자궁 내 상처가 잘 아물고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수술 6개월 후, 부작용 없이 상처가 모두 아물고 임신마저 가능하다는 진찰 결과를 받았습니다. 이제는 1년에 1회씩 정기 검진으로 주기적인 관찰만 하면 됩니다. 퇴원 후 의학적 치료는 수술 상처를 아물게 할 연고 외에는 어떤 약물적 치료도 없었습니다. 그저 시간이 약이었던 것이죠.
그저 시간이 약
그러고 보면 수술 후 지속적으로 느껴지던 복부 통증이 점차 줄어들었어요. 통증이 생긴 이유는 수술 과정에서 복부 세포들이 마치 멍에 든 것처럼 상처를 받은 까닭입니다. 언젠간 나을 통증임을 알면서도 '배가 계속 아프네. 평생 달고 다녀야 하는 건 아닌가?' 하며 걱정했었습니다. 수술 약 1년이 지난 지금은, '통증을 느꼈던 적이 있었지..'하고 불과 몇 달 전을 잊을 만큼 증상이 좋아졌습니다. 스스로도 우스울 만큼 아주 느리고 천천히 나아졌습니다.
배에 남아있는 수술 상처도 마찬가지예요. 2, 3달쯤은 연고를 꾸준히 발라주다 상처가 모두 아물고 난 후에는 그냥 내버려두었습니다. 그래도 시간에 회복을 맡기니 상처가 조금씩, 아주 느리게 사라지고 있어요. 그래서 여전히 샤워할 때마다,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그 상처를 마주합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상처로 남아있는 근종의 흔적을 마주한다고 해두겠어요. 하지만 저는 그 상처가 보기 싫거나 밉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정적으로 저를 자극하는 통로로 사용하고 있어요. 저에게 근종은 인생의 큰 스승과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 인생을 망칠 줄 알았던 근종은 예상과는 달리 제 인생에서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주었습니다. 누가 알았을까요? 제가 삶을 사고하는 방식이 근종으로 인해 많이 변화했을 거라고 말이에요. 특별한 사건으로 인생이 바뀐다는 소리는 자기 계발서에서나 나올 법한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콧웃으쳤던 저였는데 말이죠.
근종은 건강한 습관이 인생의 밀도를 촘촘하게 채워준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건강한 습관에는 플라스틱을 적게 쓰고 소비를 줄이는 등 단순히 행동하는 습관뿐 아니라 무언가의 본질을 파악하려 노력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꿈꾸는 등 사고하는 습관까지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들은 수학 공식처럼 명확한 기준이 있지 않아 구별하기 힘들지도 모르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살아가는데 필요한 일련의 선택들을 스스로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에 큰 핵심이 있다고 말이죠.
근종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공부를 하고 대학을 가고 직장을 구하는 등 인생의 굵직한 사건들을 포함하여 무얼 먹을지, 어떤 장소로 여행할지, 어떤 옷을 입을지 같은 사소한 일상적인 일도 남들이 시키니까, 남들이 하니까, 그냥 먹고 싶으니까, 힘들지 않으니까 등 인정 욕구를 받을 수 있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본인의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타인의 기준을 따르는 과순응 행동을 반복했죠. 한마디로 선택의 주체인 '나'라는 존재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인생이 만족스럽지 못했어요.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1주일에 7일은 술을 마셨고 건강하지 못한 음식을 오랜 기간 먹으면서 단기적인 욕구 충족에 집중했어요.
근종이 생긴 이유를 찾고 근종의 특성을 알아보면서 저의 과거 생활 방식, 사고방식이 어쩌면 응집되어 근종으로 나타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일종의 집약체랄까요. 머릿속에 망치로 얻어맞은 듯 혼미해지고 반성의 시간이 시작된 거죠. 그리곤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스스로에게 기원하는 이유를 바탕으로 사소한 것들부터 선택을 반복했습니다. 화장을 하지 않고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며 불필요한 물건들을 소비하지 않는 행동들이 익숙해지고 다른 분야로까지 확장되고 있어요. 충분히 설명이 전달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오롯하게 나에게서 기반하는 선택들은 삶을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충만하게 만들어요.
그렇게 스스로 게 집중하다 보니 타인의 행복이 진심으로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앞서 말했듯 타인의 기준으로 삶을 살았을 때에는 '내가 당신을 위해 노력했는데, 당신도 나를 위해 노력해야죠!'라며 가슴속에는 보상 심리에 가득 찼어요. 사람이 살아가는데 보상 심리 없이 살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삶의 만족감을 대부분 타인에게서 얻는 건 불가능해요. 하다못해 개도 생각이란 걸 하는데 인간이 인간 마음대로 생각과 행동을 조종할 수 있겠어요.
이제는 단지 깨달았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함으로 만족감을 얻는 것처럼 타인도 그이가 하고 싶은 일을 통해 만족감을 얻을 거라고 말이죠. 제가 사랑받고 싶은 만큼 타인도 사랑을 받고 싶을 테고, 내가 이해받고 싶은 만큼 타인도 이해받고 싶을 거라고. 그걸 받아들이는 게 이 사회에서의 진정한 사랑이며 관심이고 이해라고 말이죠. 그 마음을 받아들이니 가족, 친구, 친척, 지인 등에게 일전에는 찾을 수 없었던 미안함과 고마움, 연민과 애틋함이 나오는 게 아니겠어요.
하다 못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변하니 살아가는 방식이 변한 건 말해 무엇하겠어요. 그러니 단언컨대 자궁 근종은 저의 구원자라고 칭하겠습니다. 오늘도 근종이 남기고 간 것들을 더듬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생명에 위협이 되지 않을 여성 질환이 있다면 치료와 회복 과정에 너무 겁을 먹을 필요도 너무 괴로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인생에서 잠시만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잠시만 멈추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라는 누군가의 권유라고 생각해보세요. 그 시간들을 충분히 가져도 치료가 늦지 않음을 말씀드려요.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처럼 묵묵히, 꾸준히 다시 살아가면 더 많은 것들이 단단해지고 아름다워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