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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뽈입니다 Apr 03. 2020

오, 격랑의 삶이여 - Ⅱ

격랑의 전개와 위기 3.16 ~ 3.20

2020년 4월 3일 금요일

맑았다가 흐렸다가.

기록자 : 뽈     


*교환일기를 제대로 시작하기에 앞서, 들불처럼 번져오던 바이러스를 팔짱만 낀 채로 구경하던 유럽 상황이 내가 동굴에 갇히기 직전의 열흘간 어찌나 급박히 바뀌었는가를 복기하며 정리하는 시간을 갖기로.

     


3월 16일 : 떠나는 자와 남을 자의 난장

영국 확진자 1,391(+251), 사망자 35(+14)

대한민국 확진자 8,236(+74), 사망자 75(-)       

   

호텔 공실률이 무려 90%를 돌파했다. 사실상의 전멸. 레스토랑은 토요일 잠정 휴업을 결정했고 평일 영업시간도 단축했다. 쉬프트당 4인 체제여야 무리 없이 돌아가던 플로어 일은 리더 한 명을 포함해 두 명이 번갈아 가며 하게 되었다. 키친도 마찬가지. 하루당 셰프 두 명이 일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그럼 일하지 않는 날은 어떻게 처리되는가. 팀원 전체가 4월 첫째 주까지 최소 13일의 휴가를 소진해야 한다는 지시사항이 추가로 전해졌다. 다만 오후 안에 답변을 준다는 조건에서 유급/무급 여부를 고를 수 있었다. 답변을 하지 않을 경우 무급 휴가로 일괄 처리.

     

HHHHHHHHHH... FU...C.....ㅋ....


단체 채팅방의 무거운 침묵을 깬 건 나였다. 3월 막주까지의 휴가를 Unpaid(무급)로 요청했다. 어쨌거나 3월 둘째 주까진 일을 했으니 그 기간에 해당하는 임금은 지급될 것이므로, 4월에 정녕 한 푼도 벌 수 없을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선 무급 휴가를 3월에 몰아 쓴 뒤 4월에 유급 휴가를 적절히 풀어쓰는 게 낫다는 계산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버텨내야 하는 내겐 그 안이 유일한, 최선의, 차악이니까.


한편 옆 나라 프랑스는 이날 전국 모든 학교에 무기한 휴교령을 내렸는데, 그 뉴스로 영국 내 한인 커뮤니티도 덩달아 끓는 냄비가 되었다. 영국도 같은 행보를 취할 것임을 예상한 유학생 상당수가 귀국 행렬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살던 방을 서둘러 정리하고, 대신 들어와 살아줄 사람을 찾아 중고 장터를 헤맸다. 각종 식재료와 가재도구며 가구, 살림살이를 헐값에 내놓는 것도 모자라 무료 나눔까지 불사했다. 그러자 학생이 아닌, 나 같은 워홀러라든가 취업 준비생 사이에도 동요가 일었다. 갑자기 다들 한국행 비행기표를 구하려 야단이었다. ‘귀국 정리합니다’란 제목을 단 글무리가 타임라인을 도배했다.


귀국 정리 글을 훑다가 ‘영국에 남아 존버할 한국인 모임’ 오픈채팅방을 발견해 들어갔다. 인원이 오백 명에 달했다. 그곳은 존버가 아니라 탈출하고 싶은 이들의 모임에 가까웠다. 표를 구한 사람이나 구하지 못한 사람이나 불안과 초조함에 절어 울상이었다. 저마다의 눈물 젖은 대화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무처럼 단단했던 내 결연함조차 물러졌다. 개중 참다못한 누군가 ‘여기 앞일 아는 사람 아무도 없으니 표 있고 떠날 사람들은 괜한 불안감 조성하지 말고 따로 방을 파라’는 볼멘소리를 던졌다. 그에 동의하는 이들의 불만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자 반대편의 불만도 쏟아졌다. 비꼼과 하소연이 노골적으로 뒤섞인 활자들의 난장 속은. 어지러웠다. 속이 메슥거렸다. 물러져 버린 무를 다시 꼭꼭 뭉쳐보려 했으나 손가락 틈새로 자꾸 흘러내렸다.      



3월 17일 : 코앞으로 다가온 국가 봉쇄 위협

영국 확진자 1,391(+152), 사망자 55(+20)

대한민국 확진자 8,320(+84), 사망자 81(+6)         


이튿날 영국도 결국 휴교령이 떨어졌다. 프랑스는 국가 봉쇄를 선포했다. 파리에 있는 J에게 안부를 물었다. 그는 생필품 구매 등 필수적 경우가 아닌 한 무조건 자택에 머물러야 하며 외출 시엔 반드시 통행증을 지참해 경찰에게 확인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전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에 이은 세 번째 국가 봉쇄. 다음 타자가 누구인지는 자명했다. 연재 중인 잡지 원고 주제를 바꿔야 하는 불상사에 대비할 여분의 사진을 확보할 겸 센트럴로 나갔다. 피카딜리 서커스, 트라팔가 광장과 같은 센트럴 내 명소들이 마트 진열대처럼 텅 비어있었다. 런던 최고의 번화가인 리젠트 스트리트나 옥스퍼드 스트리트, 소호 쪽도 다르지 않았다. 발 디딜 곳 없이 붐볐던 곳 어딜 가도 마찬가지. 이미 잠정 휴업을 하는 매장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지나치게 생경한 광경에 얼이 빠졌다.

      

평소 유동 인구의 1/100 정도 되려나


센트럴 한인 마트의 쌀 코너엔 오곡이나 현미, 찹쌀만 남았다. 냄비로 휘슬러 못지 않은 밥을 짓는 경지에 올랐지만 그것들로 밥을 해 먹을 자신은 없어서 라면과 두부만 사고 나왔다, 친구들이 오면 데려가야지 했던 티룸에 들렀다. 줄을 서서 먹어야 하는 곳이랬는데 오후 두 시에 들어간 내가 첫 손님이었다. 스콘과 차를 주문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었어도 손님이 나뿐이라 직원들의 대화가 들렸다.      


 나라가 완전히 DEAD야. 차이나 바이러스가 세계를 망치고 있어.     


나는 COVID-19라는 정식 명칭을 두고 왜 차이나 바이러스라고 부르는 것이냐 묻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못한 거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바로잡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며칠 뒤 생일을 맞는 동료 Y의 선물로 산 차를 오늘이 아니면 못 줄 것 같기도 하단 예감이 들어 호텔에 들렀다. 본래 열 시간 내내 서서 일하는 모두가 지금은 의자 하나씩을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점심에 두 테이블을 받았다고 했다. 나도 잠시 앉아서 각자의 한숨의 크기와 무게를 재다가, 차와 컵케이크를 건네고 포옹을 했다. 당시 우리는 일요일에 만날 계획이었지만 그날 들러서 주길 잘했지. 이후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보지 못하고 있다.           


3월 18일 : 조짐은 현실로 진화해서

영국 확진자 1,950(+559), 사망자 71(+16)

대한민국 확진자 8,413(+93), 사망자 84(+3)     


영국이 세계 COVID-19 확진자 수 TOP 10위권에 들어섰다. 전날 대비 오백 명이 넘는 사람이 감염자 판정을 받았다. 더 무서운 사실이라면 영국은 중증 이상의 위험군 상대로만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 정상적 호흡이 불가능하고 열이 40도 가까이 오르는, 그야말로 죽기 직전이 아닌 이상에야 NHS(국가 보건 서비스)에 긴급 전화를 해도 돌아오는 답은 '자가격리 하세요'. 보리스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이 나라에서 확진자 수치는 의미를 잃은 지 오래다.   

   

불 꺼진 백스테이션 입구와 문 닫은 칸틴


사실상 호텔 마지막 출근날. 유니폼을 갈아입고 나와 봤더니 칸틴이 영영 닫혔다. 직원들 유니폼을 세탁하고 다려주는 발렛도 닫혔다. 백 스테이션의 큰 키친도 불이 절반만 켜졌다. 레스토랑에 들어섰더니 테이블 세팅이 드문드문하다. 휴대폰을 보며 앉아있던 팀 리더가 나를 올려다보더니 짧게 인사하고 다시 휴대폰으로 눈을 돌린다. 그날 저녁 우리는 한 테이블도 받지 못했다. 삼십 분에 한 번씩, 아무도 찾지 않는 레스토랑의 문이며 손잡이며 식탁 같은, 손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새니타이저를 뿌려 벅벅 닦다가 퇴근했다. 리버풀 스트리트 기차역이 이렇게 고요할 수가 있나.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도 비었다.    

 

앉을 자리가 없어야 정상인 시각


우리나라로 치면 용산역쯤 되려나. 본래라면 사람이 가득해야 한다.


책상에 앉아 열어본 메일함은 불타고 있었다. 첫 메일은 Bar Nightjar의 잠정 휴업을 알렸다. 런던 재즈바씬 탑이자 월드클래스바 2위에 빛나는 만큼 칵테일 맛으로도 명성이 자자한 곳이어서 늘 투고리스트 상위를 차지하는 곳. 친구들이 올 시기에 맞춰 열릴 공연들을 꼼꼼히 확인하고 신청했던 두 건의 예약이 자동 취소됐다. 두 번째 메일은 4월 휴가지 스코틀랜드 아일라섬 보모어 위스키 증류소의 셧다운을 알렸다. 그로써 증류소 투어 예약은 자동 취소됐다는 소식도 함께. 세 번째 메일 역시 아일라의 라프로익 위스키 증류소 셧다운과 투어 취소 알리미. 네 번째, 다섯 번째 메일은 아일라 섬 호텔 두 곳의 예약과 관련한 건으로, 시국상 불가피하게 여행을 취소해야 하면 기존 환불 정책보다 유연한 조건을 적용해 줄 테니 며칠 내로 답변을 주렴, 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다음 메일들은 아일라 섬으로 가기 위해 타야 하는 페리와 페리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가는 버스 회사에서 보낸.... 빌어먹을. 복기래도 그렇지 고통스러워.      


한국에서부터 계획해둔 휴가였다. 시와 분 단위까지 치밀하게 계산해서 설계한 휴가. 나의 늙은 친구 M 아저씨가 가장 사랑하는 위스키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직접 보고 듣고 싶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따라 하고 싶었다. 그처럼 바위에 걸터앉아 비릿한 바다 내음을 맡으며 위스키를 마시고 싶었다. 아일라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런 여행에서라면 8인실 도미토리 말고 호텔에서 자고 싶었다. 이틀 정도니까. 아침에 커피를 마시며 항구를 거닐고 싶었다. 그러고 싶었을 뿐인데.


아일라 휴가 일정의 가장 앞단인, 런던발 글래스고행 야간버스 취소 메일을 확인할 즈음엔 헛웃음이 아니라 진짜 웃음이 났다. 앞으로 무슨 일이 터진대도 놀랍지 않을 것 같았다.



3월 19일 : D-1

영국 확진자 2,626(+676), 사망자 104(+33)

대한민국 확진자 8,565(+152), 사망자 91(+7)     


총리는 오늘도 텔레비전에 나와 록다운은 없다고 말하지만, 그를 포함한 모두가 알고 있다. 도시는 봉쇄될 것이다. 일할 수 없을 것이다. 외출이 제한될 것이다. 아파도 집에 처박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당장 돌아갈 수는 없다. 닥쳐있는 여러 정황과 계산이 내게 말한다. 손을 탈탈 터는 일은 의외로 쉽지 않으며 단번에 깨끗해지지도 않는다고. 먹던 바나나킥을 갑자기 내려놓고 손을 탈탈 턴다고 해서 과자 부스러기를 완벽히 털어낼 순 없는 것처럼(). 어쨌든, 나는 남아야 한다고.      


쏟아지는 귀국 정리 판매글을 읽다가 얼결에 어쿠스틱 기타를 사기로 해버렸다. 그래, 쉬는 동안 기타나 뚱땅거려보자. 거래처는 홀본역. 차이나타운과 소호를 비롯한 주요 번화가 한가운데 놓인 홀본역마저도 통행하는 사람이 뜸했다. 내게 기타를 판 사람도 워홀러였다.

남으시게요? 음.. 네. 그는 이틀 뒤 귀국한다고 했다.


네, 무려 킹스크로스역입니다


기타를 둘러메고 킹스크로스역으로 향했다. 역시 중고 장터를 뒤지다 발견한 글 때문이다. 본인을 헤어샵 디자이너라고 소개한 B는 휴무일에 본인의 플랏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머리를 잘라준다고 했다. B의 플랏에서 가장 가까운 튜브역은 어제부로 닫혀서, 킹스크로스역에 내려 15분을 걸어야 했다. 역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조용했다. 너도나도 차례를 기다려 지팡이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는 9와 4분의 3 승강장 앞은 리터럴리 아무도 없었다. 기념품샵은 영업을 중단한 듯 했다. 밖을 걷는 동안에도 행인을 볼 수 없었다. 몇몇 테이크아웃 전문 식당을 제외하곤 가게 대부분이 셔터를 내렸다. 카페 안 테이블이며 의자들도 전부 어딘가로 치워져 있었다.     


플랏 입구로 마중나온 B와 어색한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섰다. 그가 사는 집은 아파트라서 내가 사는 플랏과는 생김새가 아주 달랐고, 방은 작지만 깔끔했다. 아주 짧게 잘라주세요, 어차피 집에만 있게 될 테니까. B는 나이도, 영국에 들어온 시기도 나와 비슷한 워홀러였다. 함께 살던 한국인 유학생 셋은 지난주에 모두 한국으로 떠났다고 했다. 그럼 방은요? 계속 세를 내면서 비우는 거죠, 방도가 없으니까. 남는 자들끼리 자조 섞인 우스운 얘기를 주고받는 새 머리는 밤톨 모양이 됐다. 머리를 탈탈 털고 꾸벅 인사했다.

잘, 아니 그냥 버티고 기회 되면 또 봐요. B의 차분한 목소리 뒤로 철창문이 육중하게 닫혔다.

 

 오버그라운드역에 서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C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T와 G가 아파. 둘 다 자가격리 중이래.
그래서 말인데 내일 펍을 커버해줄 수 있을까? 가능하다면 토요일도.  


마지막일 것 같단 직감이 왔다. 기차에서 내리며 답장을 보냈다. Of course.           



3월 20일 : D-day, 국가 봉쇄의 날

영국 확진자 3,269(+643), 사망자 144(+40)

대한민국 확진자 8,652(+87), 사망자 94(+3)  

   

마음의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마음의 준비란 세상에서 가장 효과적이지 못한 준비임을.

다섯 시에 펍으로 출근했다. 일을 시작하고 한 시간 뒤 대국민 담화가 라이브로 열렸다.

총리는 영국 내 모든 펍과 레스토랑은 다섯 시간 내에 문을 닫으란 셧다운을 공표했다.     

 

우리는 담담히 정리를 시작했다. 각종 피클이며 치즈를 손님들에게 듬뿍 나눴는데도 한참 남았다. 손사래 치는 나 대신 M이 봉투에 이것저것 먹을 것을 담았다. 가져가, 먹는 게 남는 거라고. 고마워하게 될 거야.

    

냉장고를 전부 비우고 닦고 스무 개가 넘는 탭 노즐을 청소하고 컵 세척기를 청소하고 물병을 닦고 바닥을 쓸고 닦고. 둘이서 입을 꾹 다물고 다섯 시간 동안 청소했다. 배고플 틈도 없었다. 정리를 마치고 튜브역 앞에 상주하는 홈리스 몫의 음식을 챙겨 건넸다. 이론상 바이러스의 습격은 누구에게든 공평해야 맞겠으나, 실은 그렇지도 않기에. 잘 먹고 아프지는 말아요, 라고 말하자 그가 희미하게 웃었다.     


See you when I see you.

장난으로 늘 하던 인사말이 이번엔 장난이 아닌 걸 알아서 M과 나는 끝에 But soon, hope를 덧붙이고 포옹했다. 실제로 호텔 동료들과는 인사도 못 한 채 헤어졌으니.      


집 앞 골목에서는 어떤 남자가 누구를 향하는지 모를 욕설을 크게도 지껄이며 비틀대고 있었다. 혹여 시선이라도 마주칠까 땅을 보며 조금 멀찍이, 가능한 한 재게 걸었다. 늦어도 3초 뒤면 남자를 빠르게 지나칠 것이다. 스치는 순간. 그가 돌연 내 앞을 가로막고 어깨를 밀쳤다. 뭘 봐.     


순간 나는 차게 굳었다. 손에 쥔 봉지만이 소리를 내며 달싹거렸다.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고 아무도 없었다. 나는 떨고 있었고, 분노와 공포에 사로잡혀 머리가 흐릿해졌다.

아마 간신히 말했던 것 같다. 비켜. 멈칫하던 남자가 손에 든 비닐봉지를 발로 툭 차며 말했다.


펔킹 아시안 주제에. 네 나라로 꺼져.  

    

나는 있는 힘껏 남자를 밀치고 뛰듯이 달아났다. 그가 넘어졌는지 혹은 쫓아오는지 확인할 겨를 따위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현관문을 닫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집은 언제나 그렇듯 조용하고 평온해서 들리는 건 내 가쁜 숨소리뿐이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흥건한 땀이 목덜미를 타고 줄줄 흘렀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러나 부엌 의자에 잠깐 널브러져 있다가 매니저가 챙겨준 마른 빵과 치즈를 주섬주섬 꺼내 씹자마자 놀랍게도 눈물이 터져서. 부엌에 선 채로 한참을 끅끅 울었다. 가까스로 붙잡고 있던 가는 끈 하나가 탁- 끊어졌음을 실감해 버려서. 억울하고 당혹스러워서. 당장 거리로 내쫓기는 건 아니니 최악은 아니라고, 그러니 버티면 괜찮을 거라고 다독여 온 마음이 무너져 버려서. 모두가 힘든 시기이므로 자기 연민만은 피하려 부단히 애썼지만, 이 순간만큼은. 이토록 암담해진 낯선 도시에 놓인 마이너리티 이방인의 처지란 몹시 가여운 것임을 아무래도 어쩔 수가 없어서.      



-----    

  

여기까지. 내가 동굴에 들어가기 직전 열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동굴 문턱에 서 있은 지로부터 다시 일주일이 흘렀다.


바다도 없는 도시에 갈매기가 이렇게 많은지 몰랐더랬지


3월 23일, 확진자 수가 1만 명이 넘었다. 패닉에 빠진 이들의 사재기는 더 심해졌다. 공식 록다운과 전 국민 외출 자제령이 시행됐다. 찰스 왕세자와 보리스 존슨 총리, 보건복지부 장관이 줄줄이 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아 자가격리 대상자가 되었다. 코로나가 확산할 만큼 확산하면 인간 몸속에 자동으로 면역체계가 생겨서 결국엔 피해가 줄어들 것이라는 패트릭 경의 얼토당토않은 대책은 이들이 확진 판정을 받고 매일 수백 명의 확진자와 사망자가 발생하자 슬그머니 버려졌다. 그저께는 하루 동안 오백 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  정부는 데일리 브리핑에서 록다운이 6개월, 혹은 그 이상 갈 수 있다고 발표했다. 고속버스 회사가 전 노선 운행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공원과 축구 경기장에 격리 시설과 치료 시설을 만들고 있다는 뉴스가 속보로 떴다.    


더는 놀라울 게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이 상황을 받아들였다가 소화시키지 못하고 토해내기를 매일 반복한다. 살고 싶어서 받아들이고, 이렇게 사는 건 의미가 없다고 토해낸다.

그런데 머리카락만은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려 마음먹었나보다. 빠른 속도로 자란다. 이것만은 놀라울 정도.


그리고

옆집 마당에는 개나리가 아름답게도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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