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그렇게 말할지라도, 내게는 사랑스러운 것들
2020년 4월 6일 월요일
날씨 : 맑음 그러나 초!강풍
기록자 : 야림
어느 날 친구 J가 내게 말했다.
"야림, 뭐 갖고 싶은 거 없어? 아직 너 생일선물도 못 줬는데 갑자기 일본에 돌아가게 됐잖아. 나는 너처럼 예쁜 쓰레기가 어디에 가면 있는지 잘 몰라. 그러니까 그냥 너가 골라주면 내가 그거 선물할게."
"예.쁜. 쓰.레.기"라는 말에 웃음이 빵 터졌다. 아마도 그는 정말로 내가 좋아하고 갖고 싶어하는 물건들을 볼 때마다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이 나쁜 의미를 품고 있지 않음을 오랜친구로서, 나는 잘 안다. (그래도 그렇지 예쁜 쓰레기라니.. 너무해) 결국 그와 통화를 하며 내가 좋아하는 한 가게의 온라인 스토어를 둘러봤다. 그곳에서 내가 고른 건, 역사적 의미가 있는 프랑스의 어느 지방의 한 아파트에서 발견한 벽지를 복원해 실크스크린 프린트 한 그 종이를 표지로 한 노트 그리고 인도 히말라야에서 재배한 나무껍질로 만든 종이였다. 가격까지 온전히 보이는 것을 엎드려 절받는 기분으로 받기가 민망하여 결제는 내가 하고 그의 집으로 배송을 했다. 그리고 그 예쁜 쓰레기들은 마침 오늘 EMS로 부쳐졌다는 모양이다. (얼른 만나고 싶지만, 배송이 쉽지 않은 요즘이라, 아마 한 3주는 걸릴 것 같다)
그뒤로 나는 종종 예쁜 쓰레기라는 말을 입밖으로 소리내며 곱씹어보고는 한다. 나에게 더 없이 보물과도 같이 소중한 나의 물건들이 누군가의 눈에는 예쁘긴 하지만 쓸모없는, 혹은 곧 버려져도 이상할 게 없는 쓰레기로 보일 수 있다니 사람의 취향이란 건 참으로 다양한가보다. 누가 뭐라고 말하든 알게 무엇이냐. 아무튼 내눈에 만큼은 더없이 아름다운 것들이 #야림하우스 에 가득하다. 그것들은 구석구석 야림하우스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2년간 하시모토에서의 시간이 쌓이는 동안 야림하우스는 더욱 야림의 취향으로 가득한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무언가 물건을 들일 때면, 집에 있는 물건들과 잘 어우러지는지, 내 마음을 간지럽히는지, 오래 쓸 것 같은지(여기서 쓰임은 그냥 장식으써 어딘가에 배치되는 것또한 포함된다. 말 그대로 '보는 즐거움'을 충족시켜주니까), 까다로운 심사를 거친다. 아마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굉장히 충동적으로 쉽게 무언가를 들인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는 과다소비로 인한 절대적 경험치가 높아져, 선택에 따르는 소요시간이 짧아진 것 뿐, 그 선택의 과정은 누구보다 치열하고 뜨겁게 고민하고 있음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취향을 안다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안다는 말과 같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살아가는 데 힘이 된다. (...) 취향은 한순간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쌓이고 깊어진다. 그 마음은 조금 더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어 스스로에 대한 확신의 근거로 자리 잡게 된다.
- <집다운 집> 중 '아주 특별한 집들이 #무과수의집' 에서
내 취향이 깃든 물건들을 내가 스스로 찾아서, 혹은 친구들이 찾아서 야림하우스에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물건들을 사랑한다. 내가 사랑하는 물건으로 가득한 이 야림하우스 안에 있으면 내가 누구인지, 나다운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비록 타의에 의해 '갇혀버린' 요즘이지만, 이 공간이 내게는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이와 같은 시국임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꽤나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