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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Jul 13. 2019

‘관계’를 팝니다.

현대 커뮤니케이션 환경과 대중문화

     

  지난 4월 3일. ‘세계 최초 5G’ 타이틀을 건 미국의 버라이즌과 한국 통신사 3사들의 눈치 게임이 일단락됐다. 미국 최대 통신사인 버라이즌이 4일, 최초 5G 상용화를 앞당긴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초조해진 국내 3사는 3일 일부 유명인과 고위층을 상대로 부분적인 5G 상용화를 시작한 것이다. ‘최초’에 집착한 애매한 승리가 아닐 수 없다. 기존 4G LTE에 비해 수십 배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5G는 건물, 교통, 안전, 증강현실 등 사회 다방면에 ‘혁신’을 만들어낼 예정이다. 인터넷에 기반 한 현대 커뮤니케이션도 마찬가지다. 광속의 통신은 쌍방향성과 광범위성 등 기존의 발전 그래프를 가파르게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양식을 만들어낼 것으로 예상된다. 커뮤니케이션과 더불어 대중문화의 지형도 변화한다. 콘텐츠의 저장과 공유가 수월해지면서 ‘소비’ 뿐만이 아닌 ‘생산’ 방면의 전면적인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터넷의 발달과 비례해 성장해온 기존의 실시간 多대多 커뮤니케이션은 더욱 심화될 것이며 이는 대중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기대된다. 


  多대多 커뮤니케이션의 등장은 ‘능동적 대중’이란 기대를 심었다. 방송국, PD, 기자 등 전통매체 제작자에서 대중으로의 일방적인 생산-소비 관계를 탈피해, 소비자가 생산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생산자 개념을 확장시킴으로써 ‘콘텐츠의 다양화’도 기대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는 ‘1인 방송’이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은 ‘1인 방송’을 공중파에 태워 송출시켰다. 한정된 방송 시간 동안 별개의 콘텐츠들을 보여주고 각 개인 방송을 이끌어 가는 출연자들은 종종 댓글로 인터넷 방송 시청자와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항상 바라보기만 했던 공중파 프로그램 출연자가 내 댓글을 읽고, 내가 원하는 행동을 취한다. <마리텔>은 대중들에게 ‘1인 방송’의 개념을 확실하게 각인시킨 계기였다. 


  그렇다면, 1인 방송에 ‘참여하는 개인’들의 ‘커뮤니케이션’은 과연 순수한 능동성을 보장하고 있는 것일까? 이들의 커뮤니케이션은 어떤 기제에 의해 작동하고 있는 건가? MIT대학 심리학과 교수 Sherry Turkle는 2012년 미국의 유명 강연회인 TED를 통해 현대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인간의 소외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Sherry Turkle는 <Connected but alone>이란 제목의 강연을 통해 현대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은 정신적으로 매우 영향력이 커, 연결(Connection)에 대한 공허한 갈망을 만들고 결국 인간은 소외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정보통신 기술은 대화하는 인간이란 모습을 지킬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될 필요가 있다.


  Text를 기반으로 한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은 사람 간 관계에 ‘대화’를 사라지게 하고, 타인에 대한 이해를 함몰시킨다. 온라인에선 자신에게 흥미로운 사안에만 집중한다. 가상의 공동체에 연결되어 있지만, 온라인 이용자는 타인에게 자신의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줄 수 있으며 심지어는 숨기고 싶은 약점도 보기 좋게 변화시킬 수 있다. 상대와 눈을 맞추고 ‘지금 당장’의 자신을 그대로 노출시킬 수밖에 없는 ‘대화’와 다르다. 결국 서로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할 수 없는 개인들은 자신의 말을 들어줄 존재로서 ‘소셜 로봇’을 찾는다. Sherry Turkle은 트위터와 페이스북 피드 서비스의 성공 요인으로 ‘강제 청취’를 든다. 내 tweet을 상대가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기술은 세 가지 만족스러운 환경을 제공한다. 하나, 어디라도 가져다줄 수 있다. 둘, 항상 우리의 말을 들어준다. 셋,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특히 세 번째 요인은  인간 소외를 심화시킨다. 사람들은 기술을 통해 항상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온라인에서 형성된 소속감은 타인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타인을 기계 부품처럼 취급하게 되고 결국 인간을 고립시킨다.  


  커뮤니케이션은 기본적으로 ‘송신자’와 ‘수신자’가 필요하다. Sherry Turkle의 논의에서 생각해 볼만한 점은 오늘날의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기술에 기반 한 공허한 연결을 되풀이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폴란드 출신 사회학 학자 Zygmunt Bauman은 책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을 통해 Sherry Turkle와 유사한 논의를 펼친다.      


「사실 광택 종이에 인쇄되어 반짝거리는 주간지와 월간지 표지는 평범한 

우리들에게는 거의 금지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을 텐데, 결국 트위터도 우리들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중략) 결국 트위터는 불행하게도 

시내 중심가에서 쇼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상류층만을 상대하는 부티크에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에 갖게 되는 굴욕감이라는 고통을 완화시켜줄 뿐이다.」

<Zygmunt Bauman,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조은평강지은 역, 동녘 출판, 2012>     


  ‘상류층만을 상대하는 부티크’는 인물, 단체, 혹은 이상적인 ‘나’가 될 수도 있다. 이외에도 무궁무진하다. 부티크가 꼭 ‘객관적인 상류층’만을 상대할 필욘 없다. 남들에겐 쉽지만 나에게 결핍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부티크’가 될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온라인 기술을 통해 사회적인 소속감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나는 정제 과정을 거친 ‘온라인 속 나’를 만들고 혼자 만족해하지 않는다. ‘온라인 속 그들’에게 보여주길 원한다. 나는 SNS 스타 혹은 연예인 A씨와 가까운 사이인 듯 친밀감을 느낀다. 심지어 이런 ‘부티크’를 지향하는 사회적 소속감은 중독되기 쉽다. 언론은 수많은 SNS 중독자, 온라인 게임 중독자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비디오 게임 중독자를 다룬 특집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중독은 ‘사람’을 향한다. YOUNG(1996)에 따르면 인터넷 관련 이용 서비스 중 전통적인 비디오 게임, 아케이드와 비교해 MMORPG 등 상호작용의 실시간 서비스가 특징인 게임이 가장 중독성이 강하다고 한다. 게임 회원들과 길드를 만들고 친목을 다지는 과정에서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우린 ‘상류층만을 상대하는 부티크’와 상당히 친밀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순진한 ‘착각’에 빠진다. 앞서 오늘날의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연결’이 아닌 ‘공허한 연결’이라고 표현한 이유다. 내가 SNS 스타를 알고 있는 만큼 SNS 스타도 나에 대해 알고 있는가? 실시간 1인 방송에서 나는 BJ에게 댓글로 그의 몇 달 전 여행에 대해 질문했고 다음 주 방송에서 BJ는 여행을 주제로 방송을 했다. 내가 BJ와 ‘연결’된 순간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BJ가 방송 도중 ‘나’를 위한 개인적인 질문을 할 수 있는가? 아니, 수많은 시청자 중 ‘나’를 지목하긴 할 수 있긴 한 걸까? 이는 또 다른 차원의 일방향성이다. 보다 1대 1 관계인 개인 SNS에서도 마찬가지다. 인스타그램이 규정한 카메라 프레임과 텍스트영상 분량이 있는 이상, 성심껏 우릴 표현하고 싶어도 상대는 우리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공허한 연결’에 환호한다. VR놀이기구를 타려 설레는 마음으로 대기하는 사람들 마냥 착각을 즐기는 듯하다. 보다 많은 대중의 입맛을 자극하고자 하는 대중문화가 이런 ‘흥미로운 착각’을 놓칠 리 없다. 


  1923년에 설립한 프랑크푸르트 대학 사회과학 연구소를 중심으로 활약했던 일군의 연구자와 그들의 집합적 사상인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대중문화가 소비자상과 개인주의를 주입하고 사회비판능력을 제거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와 결탁한 문화 산업은 산업 자본의 이익 창출을 위한 대중문화를 만든다. 대중들은 자기기만에 빠진다. 대중문화는 끊임없이 대중들의 소비를 자극하고, 산업자본은 이를 충족시켜줄 새로운 상품을 선보인다. 대중들은 이 ‘새로운 상품’만 갖게 되면 욕구가 충족될 것만 같은 ‘흥미로운 착각’에 빠진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신용카드를 꺼내 든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문화 분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허한 연결을 판매하는 오늘날 대중문화가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관계를 지향한다. 특히나 ‘부티크’ 즉, 관계 속 보다 나은 위치의 ‘나’ 자신 혹은 영향력 있는 인물단체매체와의 연결은 매력적인 소구를 발생시킨다. 대중매체는 이들과의 ‘공허한 연결’을 직접 판매하기도 하고, ‘공허한 연결’을 무료로 제공해주면서 주요 상품 소비로 자연스레 이어지도록 유도한다. 허황된 소속감을 지닌 대중들은 자기기만을 반복하며 지갑을 열게 된다.


  이러한 대중문화는 현대의 대표적인 대중문화 콘텐츠라고 할 수 있는 ① <아이돌 산업> ② <1인 방송> ③ <SNS> ④ <예능 프로그램>에선 어떤 양상으로 작동하는가.     


  최근 ① <아이돌 산업>의 두드러진 흐름 중 하나는 ‘아이돌과 팬 간의 직접적인 소통 창구 확대’다. 네이버가 제공하는 서비스인 <V-Live>는 연예인이 본인의 채널을 통해 팬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라이브 방송이다. 연예인은 방송용 카메라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본인의 개인 휴대폰을 통해 촬영하기도 한다. 셀프 카메라는 평소에 볼 수 없는 연예인의 개인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특히나 영상통화와 비슷한 구도는 연예인-팬 간의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는 효과를 갖는다. 이외에도 <인스타 라이브>, <개인 SNS 계정> 등이 비슷한 기능을 한다. 아이돌을 방송이나 콘서트, 팬사인회 등 팬과 철저히 분리된 공식적인 스케줄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직접적인 소통’ 양상은 K팝의 글로벌 시장 확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인종언어 등의 이유로 국내 팬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감이 높았던 해외 팬들도 실시간 참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방시혁 대표는 인터뷰를 통해 방탄소년단의 성공 요인 중 하나가 SNS를 통한 실시간 소통이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 저변엔 ‘연예인 대 불특정 다수’란 과거와 변함없는 관계가 여전히 작동한다.     


  ② <1인 방송>, 특히 <먹방>은 1인 가구의 증가와 함께 사회적 소속감을 자극하며 자본을 창출하는 대표적인 콘텐츠다. CNN은 한국에서 먹방의 인기 요인 중 하나로 1인 가구 증가로 인한 외로움을 지적한다. 한국에서 먹는다는 것이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인 행위이며, 가족의 다른 말로 식(食) 구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음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즉, 혼자 식사를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방송을 통해 음식을 나누어 먹는 간접 행위로 외로움이라는 정신적인 허기를 달래며 대리 만족을 얻는 것이다. <먹방> 이외에도 <1인 방송> 전반이(특히 시청자 수가 많을수록) ‘공허한 연결’을 자극한다. 시청자는 댓글 등을 통해 제작자의 즉각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다. 빠르게 도배되는 채팅창에서 BJ가 내 댓글을 운 좋게 읽는다면 말이다. 종종 누군가는 금전적 후원을 하기도 한다. 이때 BJ는 시청자의 이름이 아닌 닉네임을 부른다. 내가 돈을 후원하는 만큼 BJ는 내 닉네임을 기억할 것이다.       

  사람들은 ③ <SNS>를 통해 정제된 나를 보여준다. 앞서 Sherry Turkle이 언급한 바와 같이 이는 한 개인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방해하고 피상적인 이해에 그치도록 만든다. 우리는 빠르게 바뀌는 피드를 훑으며 얼굴 본 지 1년이 넘은 지인에게 언제 꼭 만나자고 댓글을 단다. 상대도 좋다며 내 댓글에 하트를 누르지만 우리의 대화 아닌 대화는 여기에서 그친다. 


  SNS 스타(인플루언서)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모바일 마켓>은 ‘인플루언서 팬쉽’이 직접적으로 작동한다. ‘인플루언서 팬쉽’이란 SNS 이용자가 추종하는 특정 인플루언서 자체나 그들이 판매하는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열광적으로 소비하는 개인 특성이다. 팬들은 

소통하는 SNS 스타에 친밀감을 느끼고 신뢰한다. 팬들은 소규모 마켓이 점차 몸집을 불려 나가는 과정에서 본인이 이겨한 바에 소속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임블리’, ‘치유의 옷장’ 등의 사례는 이들 관계의 허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예능 PD들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찰나의 재미를 쫓는 ‘스낵 컬처’로 대중문화의 흐름이 바뀌면서 제작비 대비 높은 시청률 확보가 가능한 ‘예능’에 스포트라이트가 옮겨간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 돋보이는 ④ <예능 프로그램>의 흐름은 바로 ‘오디션 포맷’이다. TV조선은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 트롯>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고, Mnet은 <프로듀스 101>의 네 번째 시즌을 시작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대중이 직접 ‘스타’(혹은 우승자)를 만드는 ‘참여형 모델’이라는 점이다. 특히 <프로듀스 101>은 특정 출연자와 다수의 시청자 간의 ‘양육 관계’를 형성하며 시청자는 마치 자식을 키우듯 금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지인들을 동원한 유료투표는 물론, 팬덤 스스로 홍보 팀장을 자처한다.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은 더 나아가 제작된 프로젝트 아이돌 그룹에 대한 소비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이러한 아이돌 그룹의 팬덤은 ‘스타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과정(기획 단계)에서 스타에 대해 깊은 연대감과 관여도를 느끼게 되고, 높은 충성도를 가지게 된다. 물론, ‘나’는 수많은 국민 프로듀서 중 하나일 뿐이다.          


  <폰딧불이>를 아는가? 폰딧불이는 도심 속 흔하게 볼 수 있는 스마트목과의 터치류 곤충이다. 빛이 나는 화면은 폰딧불이의 더듬이이자 앞발이며 폰딧불이들은 이 부분을 통해 매우 멀리 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은 보지 못하는 지독한 원시다. 이들은 와이파이로 숨 쉬고 라인과 카카오톡으로 의사소통한다. 폰딧불이는 바로 웹툰 <마음의 소리>에서 스마트폰에 중독된 현대인들을 풍자한 것이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마주 앉아 있지만 저마다 손에 쥔 또 다른 현실에 몰두한다. 단편적인 텍스트로 가득 찬 온라인 공간에서 대중들은 ‘공허한 연결’을 조직하며 커뮤니케이션하고 대중문화는 산업 자본의 작동 하에 ‘공허한 연결’을 상품화해 대중들에게 소비를 촉진시킨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온라인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인해 고립되고,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대중문화에 기대지만 오히려 우리는 또 다른 소외를 구매한다.


  Sherry와 Bauman 모두 이를 극복할 방법으로 “고독(solitude)”을 제시한다. ‘solitude'는 'loneliness'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loneliness가 고립과 감정적 외로움을 의미한다면, solitude는 단련과 독립에 가깝다. 대중은 항상 ‘누군가’와 연결되고자 한다. 상대가 그 누구든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단 몇 분이라도 누군가와 나를 잇는 빈약한 끈이 끊기는 일은 두려운 것이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환경에서 ‘진정한 나’는 없다. 반면, “고독”은 진정한 나를 마주하게 한다. 고독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집중하게 해서 신중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고, 창조할 수 있게 하며, 더 나아가 최종적으로는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에 의미와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숭고한 조건이기도 하다. 


  기술의 발전으로 줄어드는 송신자와 수신자 간의 반응 속도(시간 차) 만큼 우리는 더욱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고 착각한다. 대중문화는 자본주의 하에 지금보다 더욱 간사한 수법으로 사람들의 결핍을 자극하고 대중들은 대중문화를 통해 허위 욕구를 충족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고독할 수 있는 용기’다.





<참고자료>

 커뮤니케이션의 요소로는 송수신자, 메시지, 채널, 피드백, 노이즈, 세팅이 있다. 커뮤니케이션, 오미영, 커뮤니케이션북스, 2013

 Young, K. S. (1996). Internet Addiction: The Emergence of a New Clinical Disorder. CyberPsychology & Behavior, 1, 237-244.

 김형우,(2015).1인 가구와 방송 트렌드 변화.미디어와 교육,5(1),152-171.

 김우빈, "SNS 패션 인플루언서의 진정성과 팬쉽의 효과", 2018, 서울대학교 대학원.

 양승준, 연예인보다 빛나는 PD… ‘연봉 40억’ 피디테이너 시대, 한국일보, 2019

 신윤희, "아이돌 팬덤 3.0. 연구 : ‘참여’ 모델의 ‘양육’형 팬덤, ‘워너원(WANNA·ONE)’ 팬덤을 중심으로", 2018, 서강대학교 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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