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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pago May 04. 2017

방글라데시 화폐를 통해 알아 본 '정권 교체'의 의미

방글라데시 - 타카 Taka

한국에서 대선이나 총선 날짜가 다가올수록 길거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문구는 역시 ‘정권 교체’이다. 외국인의 시각으로 봤을 때, 한국에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면 무엇이 얼마나 달라질지 쉽게 예상할 수 없지만, 선거를 통해 정권 교체를 이뤄내고, 정치에 관심이 없는 외국인의 눈에 뛸 정도로 국내 정세가 변화된 많은 나라들이 있다. 그 중 제일 대표적인 나라는 방글라데시가 아닐까싶다.

옛 명칭이 동파키스탄이었던 방글라데시는 1971년도에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을 이뤄냈다. 독립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정치인은 후에 방글라데시 초대 대통령이 된 무지부르 라흐만(Mujibur Rahman)이었다. 그는 당시 아와미 연맹의 당대표였으며, 동파키스탄의 다수 민족인 벵골족의 문제를 중심으로 정치활동을 이어나갔다. 독립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에 실시된 1970년 선거 때는 파키스탄 국회에서 300석 중 160석을, 동파키스탄 의회에서는 300석 중 288석을 차지했을 만큼 정치권을 장악하고 있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독립을 하다 보니 방글라데시 내에서는 일당정치 분위기가 만연하였고, 무지부르 라흐만은 국부 와 같은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심지어 1972년에 최초 발행된 방글라데시 화폐에는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국부의 초상화, 즉 무지부르 라흐만의 모습이 인쇄된 화폐가 발행되기 시작했다.  

1972년에 무지부르 라흐만은 국호를 방글라데시 인민공화국으로 정하고, 사회주의 정책을 기조로 한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무지부르 라흐만은 선거를 개최하지 않고 국부의 역할은 지속하다보니 내부적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1973년 3월 총선거에서 라흐만 정권은 신임을 얻었지만 1975년 대통령이 되어 국정의 기초를 구축하던 중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켰고 유학 중에 있는 딸을 제외하고 무지부르 라흐만의 가문을 전부 살해하는 비극적인 상황에 치닫게 되었다. 말 그대로 1975년에 정권 교체가 일어난 것이다. 그 이후에 발행된 화폐들 역시 무지부르 라흐만의 초상화가 모두 제거 된 모습으로 탈바꿈하였다.  

정권 초기에는 군부 역시 아와미 연맹과 대립구도에 놓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아와미 연맹 출신 인사들을 중심으로 내각 구성을 시도해보았지만 이는 결국 실패로 끝났고, 군부 내부적으로도 어떤 세력이 주도권을 잡고 정치를 이끌어나갈 것인지를 놓고 많은 갈등과 충돌이 있었다고 한다. 2년 동안 지속된 긴 혼란 끝에 1977년에 지아우르 라흐만(Ziaur Rahman)이 정권을 잡게 된다. 무지부르 라흐만과 비슷한 이름을 가진 탓에 서로 친척관계가 아닌지 의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지만, 두 사람은 전혀 관계가 없다. 이념적으로 봤을 때도 두 사람은 완전히 반대에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978년에 우파 성향이 강한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BNP)을 창당하고 아와미 연맹의 독점성을 깨트렸다.

1980년도에 지아우르 라흐만은 대중의 신뢰를 얻고 있었지만, 야당과 군대 내부에서 일어난 강력한 숙청작업과 개혁에 불만을 가진 반대 세력들을 중심으로 한 많은 비판과 불평에 직면하였다. 결국 지아우르 라흐만도 무지부르 라흐만과 같은 끔직한 결말에 이르게 된다. 정치적 지역 분쟁 해결을 위해 1981년 5월 29일 치타공시를 방문하던 도중에 경호원 6명, 측근 2명과 함께 육군 장교들에 의해 암살당했다.

지아우르 라흐만의 암살 사건 이후에 군부는 다시 정권을 잡았고, 암살 작전과 연관이 있는 모든 사람들을 죽였다. 오랜 기간 동안 군부에 의해서 지배를 받은 방글라데시는 1991년에 접어들어 마침내 문민정부를 수립하게 된다. 의원내각제인 방글라데시의 권력은 총리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1991년에 열린 선거에서 총리로 당선된 정치인은 BNP 당대표이자, 지아우르 라흐만의 부인 칼레다 지아(Khaleda Zia)이었다. 그는 이 계기로 방글라데시의 역대 첫 여성 총리가 되었고, 이를 계기로 한동안 방글라데시의 정치는 여성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흘러가게 되었다.  

1997년에 발행된 신권 10 타카 앞면에 초대 대통령 무지부르 라흐만의 초상화가 생겼고, 1999년에 이후로 발행된 모두 방글라데시 화폐들에는 다 무지부르 라흐만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화폐들에 있는 이러한 변화 역시 ‘정권 교체’를 대변해 주는 것이었다. 무지부르 라흐만이 살해당했을 때 유럽으로 유학을 떠나있던 딸 셰이크 하시나(Sheikh Hasina)가 후에 귀국한 뒤 아버지 친구들과 함께 아와미 연맹을 이끌어 나갔다. 1996년에 열린 선거에서 승리를 얻은 그는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총리로 활동했지만 2001년에 열린 선거에서 크게 패배하면서 총리직을 다시 칼레다 지아에게 빼앗겼다.  

2001년에 칼레다 지아가 총리가 되면서 방글라데시의 중심 정권이 아와미 연맹에서 BNP으로 교체 되었고, 이는 다시 화폐 발행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2001년 이후에 발행된 방글라데시 화폐에서는 다시 무지부르 라흐만의 초상화가 사라졌다. 칼레다 지아 총리는 화폐 디자인을 바꾸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특히 교육 쪽에서 많은 개혁을 이루어냈으며, 자국의 미래를 위해 많은 투자를 하는 등 진취적인 개혁을 이끌어냈지만 한 편으로는 부정부패가 심해졌다는 반발에 부딪혀 2006년에 열린 선거로 권력이 다시 아와미 연맹에 넘어 가게 되었다.  

2006년에 총리직을 다시 셰이크 하시나가 맡으면서 방글라데시 화폐는 한 차례 더 다자인이 바뀌게 되었고, 그 후 발행된 화폐들에는 다시 셰이크 하시나의 아버지, 무지부르 라흐만의 사진들이 실리게 되었다. 화폐의 발행이라는 것은 본래 발행 당시의 시대적 가치를 잘 반영할 수 있는 소재가 사용되는데 한국 역시 지금까지 수많은 정권 교체의 기간을 겪었지만, 화폐에 이러한 정치적 변화를 그때그때 반영하지 않았던 선택은 참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은 한국경제신문 https://www.hankyung.com/thepen/article/65927 에도 실렸습니다. 


돈 밝히는 남자 알파고 시나씨의 방글라데시 화폐 탐구는 여기까지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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