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열기가 여전히 쿠알라룸푸르 거리를 감싸고 있을 무렵, 세인트 메리 성당의 문턱에 섰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성공회 성당 중 하나로 메르데카 광장 옆, 바쁜 도심 속에 고요하게 자리 잡은 이 성당은 외관부터 무언가 고풍스러우면서도 특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성당의 붉은 지붕이 더욱 눈에 들어왔고, 마음속 잔잔한 설렘을 주었습니다.
성당 앞에 피어 있는 선명한 빨간 꽃들은 성당을 방문하는 모든 이를 환영하는 듯, 성당 앞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진홍빛 꽃잎들은 햇살을 받아 더욱 빛나고 있었고, 바람에 살랑거릴 때마다 성당 앞을 장식하는 작은 축복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꽃들은 고즈넉한 성당의 분위기에 싱그러움을 더해 주었고, 묵상과 기도를 위해 방문하는 이들에게 작은 위안과 활기를 선물해 주는 듯했습니다. 꽃들 앞에 잠시 멈춰 섰습니다.
성당 입구를 지나자 눈길을 끈 것은 작고 단정한 파란색 방명록이었습니다. 성당을 찾은 사람들이 남긴 글들이 페이지마다 빼곡히 적혀 있었고, 글자들 사이로 사람들이 느낀 평화와 감사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듯했습니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 보니, 다양한 언어로 적힌 기도와 감상들이 가득했습니다. 저마다의 사연과 소망이 담긴 글들을 읽으며,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방문자들이 각자의 마음을 두고 갔다는 생각에 묘한 울림이 있었습니다. 방명록이, 성당을 찾는 이들의 발자취와 마음을 담아내는 작은 보물처럼 느껴졌습니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고요함이 사방을 휘감았습니다. 하늘 높이 치솟은 아치형 천장 아래에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고, 나무 의자들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어 오랜 시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듯한 고요함과 평화를 전해주었습니다.
자연스레 의자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부드럽게 성당 내부를 비추는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성당을 나오면서, 성당이 무언가를 지니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성당의 모습은 말레이시아가 걸어온 길과도 닮아 있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문화와 역사가 한데 어우러지는 이곳에서, 저 역시 그 일부가 된 듯한 경험이었습니다.
세인트 메리 성당(St. Mary’s Cathedral)
도시의 식민지 시대 역사를 품은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성공회 성당 중 하나로, 말레이시아의 다문화적 배경과 서양 종교의 영향을 반영하는 상징적 건축물입니다. 역사적인 배경으로 보면, 세인트 메리 성당은 1887년에 영국령 말라야 시기에 세워졌습니다. 당시 영국인들이 성공회 신앙을 전파하면서 세운 이 성당은 쿠알라룸푸르에 거주하던 영국인 공동체의 종교적 필요를 충족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성당 건축 초기에 목조 건물이었지만, 1894년 오늘날의 벽돌 건물로 재건되면서 더욱 견고하고 아름다운 건축물로 변모했습니다. 당시 영국 건축가 아서 벤슨이 설계한 이 성당은 고딕 리바이벌 양식을 도입해, 높은 첨탑과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아치형 천장이 특징입니다.
세인트 메리 성당은 식민지 시대를 거쳐 독립 후 말레이시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도 그 자리를 지키며, 오랜 세월 동안 말레이시아의 역사적 흐름을 조용히 목격해 왔습니다. 메르데카 광장 인근에 위치해 있어, 주변의 변화와 함께 도시의 상징적인 역할을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성당 내부의 영국산 파이프 오르간은 당시 유럽에서 가져온 귀중한 악기로, 지금까지도 예배와 특별 행사 때마다 그 소리를 울려 퍼뜨리며 성당의 역사적 유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오르간은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파이프 오르간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날 세인트 메리 성당은 단순히 신앙의 공간을 넘어, 다양한 배경의 방문객들이 역사를 되새기고 말레이시아의 다문화적 뿌리를 이해하는 장소로 사랑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