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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경 Aug 01. 2020

2 혼자라서 충만한 여행지 다시 보기

한 번만으로는 아쉽잖아요


남편이 하노이행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 한국에 돌아오는 날을 일요일 밤으로 계획했다. 그런데 실수로 토요일 밤으로 결제를 해버렸다. 예약 페이지에 가보니 그럴 만도 했다. 일요일 밤이면 월요일 새벽인데, ‘월요일’이라는 글자가 순간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 것. 결국 ‘일요일 새벽’으로 착각해 여행 일정이 계획보다 하루 줄어든 2박 3일이 되었다. 


하노이는 작은 도시지만 처음 가보는 여행지라서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았던 터라 조금 아쉬웠다. 남편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우리는 여행 마지막 날 오전은 각자 하고 싶은 걸 하기로 했다. 함께 떠나온 여행이지만 마무리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하자는 것. 사실 이런 적은 처음이라 고민됐다. 새로운 곳을 갈지, 아니면 갔던 곳을 또 한 번 갈지. 결국, 후자로 마음이 기울었다. 


어제 갔던 근사한 카페에서 오전을 보내기로 했다.


이곳은 에그 커피가 유명하다. 에그 커피는 에스프레소에 우유, 크림, 코코아 파우더 그리고 달걀노른자를 넣어 만든다. 어제 처음 맛본 에그 커피는 고소하고 달달했다. 입에 닿는 촉감도 솜처럼 부드럽고 폭신했다. 어제 앉았던 자리도 마음에 들었다. 창문 바로 앞에 있는 자리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기에도 좋았고 볕도 적당히 들었다. 직원들도 친절했고 흘러나오는 음악이 카페의 분위기와 조화롭다. 어제처럼 에그 커피를 주문했다. 파란 접시의 한쪽에 커피, 대각선 반대쪽에는 작은 쿠키, 그 사이에는 티스푼이 놓인 채 건네 졌다.

어제처럼 커피를 마시며 카페 인테리어 한 번, 창밖 한 번 시선을 옮겼다. 다른 테이블의 손님은 무얼 주문하는지도 살짝 봤다. 적당히 리듬감 넘치는 음악에도 귀를 열고,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옆 테이블에 앉은 손님의 베트남어에도 귀를 슬며시 열어본다. 여행 중에 이렇게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해본 건 처음이다. 무엇보다도 왔던 곳을 또 온 건 처음이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오늘 저녁, 이곳을 떠나는 게 아쉬웠는데 이상하게 그 아쉬움이 누그러졌다. 


여행을 통해 낯선 곳을 탐험하고 그 과정에서 자극받는 것도 좋다. 나의 경우, 정도가 지나쳐 ‘반드시’ 전에 가본 적 없는 곳만 가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계기로 한 번 가봤던 곳을 다시 가서 처음 느꼈던 감정을 곱씹는 것도 또 다른 형태의 자극이 될 수 있다고 깨달았다. 두 번째라서 흥분과 놀람의 크기는 작지만 생각을 더 깊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그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를 살펴보는 여유도 생긴다. 그의 모습이 나와 같다면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하구나’라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어머? 그럴 수도 있네?’하며 두 눈을 동그랗게 뜨게 된다. 그리고 같은 곳을 또 오게 만든 매력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으면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아 나 자신을 향한 여행을 떠난다. 또 적당히 익숙하고 낯선 곳에서 나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게 되는 계기도 된다. 어쨌든 갔던 곳을 또 가는 경험은 ‘여행을 좋아하는’ 단계에서 더 나아가 구체적으로 ‘여행지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하는지는 물론, ‘좋아하는 걸 나만의 방식으로 어떻게 소화하는지’까지 알게 해 준다.

혼자가 아니라면 “갔던 델 왜 또 가?”라는 질문에 또 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어쩌다가 또 왔다고 해도 공간을 충분히 느끼고 나 자신을 깊이 있게 탐색할 수 없다. 옆에 누군가가 있으면 그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가 편하다. 시간을 온전히 나만의 것으로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곳에 힘쓰고 신경 쓸 필요 없이 또 가고 싶으면 바로 가면 된다. 


남편의 실수가 전화위복이 돼 그 이후로, 혼자 떠나는 여행에는 ‘다시 보기’를 포함시킨다. 나를 더 자세히 알고 더 깊고 풍요로운 여행이 나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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