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싱글로 살아남기는 힘들다
한국에 가면 소소하게 항상 만나는 중학교 친구들이 있다. 옛날 친구들은 언제 봐도 참 좋다. 이번에 만났을 때 그들이 잠깐 친구 J에 대해 언급했는데, 지금 독일에 살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J는 나와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로, 공부도 꽤나 잘하고 성격도 활달한 친구로 기억한다. 나와 제일 친한 친구까지는 아니었지만 같은 반이었을 때 자주 어울려 다니며 웃었다. 그 친구가 나처럼 유럽에 살고 있다니, 내심 반가웠다. 그러나 그 소식을 듣고 바로 연락을 하지는 못했다. 중학교 졸업 이후로 한번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스위스에 돌아오고 얼마 후, 우연히 내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신청한 사람들의 목록을 보는데 J가 포함된 이니셜의 계정이 보였다. 사실 신청을 받은 지는 꽤 된 것 같은데, 처음에는 모르는 사람인 줄 알고 팔로우를 수락하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그는 내 친구 J였다. 한국에서 들려온 그의 소식이 오버랩되며 반가움을 감출 수 없었다. 얼른 수락 버튼을 누르고 메시지를 보냈다. 예상 외로 칼답장이 돌아왔다.
우리는 실시간으로 답장을 보내며 간단한 근황을 전했다. J는 프랑크푸르트에서 4년째 일하고 있다고 했다. '나와 해외 체류기간이 비슷한데다 심지어 사는 도시가 그리 멀지도 않잖아?!' 친구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는지 조만간 얼굴 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해외살이를 하며 항상 옛 친구를 그리워하던 나였기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심지어 나를 보러 스위스에 오겠다고 한다.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드디어 나도 오랜 친구를 해외에서 만날 수 있구나! 친구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던 것 같다.
대망의 만남 당일. 친구를 맞이하러 역으로 가는 길이 즐거웠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어색하지 않을까?' '친구의 얼굴을 바로 알아볼 수 있을까?' 등의 생각을 하며 갔던 것 같다. 작은 캐리어에 모자를 눌러쓴 친구의 뒷모습이 보였다. 앞으로 다가가니 친구가 맞았다. 서로 얼굴을 확인하고 한 30초 정도는 둘 다 어?어어? 하면서 놀라움과 반가움에 웃음을 터트렸다. 가는 길에 했던 걱정이 바로 녹아내리는 순간이었다. 친구는 옛 모습 그대로였다.
서로 연신 놀라며 인사를 나누고, 친구를 우리 집으로 데리고 가는 길. 서로 업데이트 해야 할 게 너무도 많았다. 나는 이 친구가 어느 고등학교를 갔는지만 알고, 그 외의 것은 하나도 몰랐으니까. 어느 대학을 갔는지, 회사는 어디를 다니는지, 한국에서는 어디서 살았는지 등등... 물론 그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뭐부터 물어봐야 할지 몰라 독일에서의 생활에 대해 먼저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놀라웠다.
"나 사실 한국 돌아갈까 고민하고 있어. 여기서 싱글 여자가 혼자 평생 살기에는 너무 힘들 것 같아"
라고 하는 것이었다. 놀라웠던 이유는, 바로 정확히 내가 유럽에 살게 된 이후 똑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유럽은 가족 중심적으로 돌아가는 분위기가 강하다. 주말이면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고, 어딜 가든지 서로의 파트너를 데리고 다닌다. 혼자서 즐길 만한 여가생활도 한국보다 많지 않다. 일요일이면 가게 문이 다 닫으니까. 직장인으로 해외생활을 시작한다면 친구 만들기는 더더욱 어렵다.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이미 학창시절부터 어울린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다. 운이 좋다면 직장 동료들과 친해질 수도 있겠지만, 그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해외살이를 하는 한국인 여성이라는 공통점을 계기로 서로를 너무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물고기가 물 만난 듯 쉬지 않고 말을 주고받았다. 그렇게나 오랜 시간동안 연락하지 않았는데도 어색하지 않고 신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게 신기했다. 이래서 옛날 친구들은 다르다는 소리가 나오나 보다.
친구의 삶을 자세히 들었을 땐 나의 삶과는 꽤나 다르다는 생각도 했다. 우선 J는 한국 기업에서 일했고, 한인 교회에 다녔다. 같이 사는 친구도 한국인이란다. 그 때문에 주변에 거의 한국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이곳에서 이렇다 할 한국인 친구가 없는 나로써는 부럽기도 했다(친한 언니들이 있었지만 비자 문제로 지금은 다른 나라로 떠났다). 친구는 독일어를 구사할 줄 아는데도 거의 한국인들이랑만 어울리는 듯했다. 그런데도 해외생활에서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았다.
스파를 좋아하는 친구를 위해 집에서 멀지 않은, 산 속에 둘러싸인 스파에 데리고 갔다. 뷰가 예술이라며 감탄하는 친구에게 잠시나마 힐링할 시간을 준 것 같아 기뻤다. 꽤 추운 날이었는데, 따뜻한 물에 머리만 내밀고 들어가 있으니 천국에 온 기분이었다.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는 내가 독일인 남자친구랑 사귀는 게 신기한지 그에 대한 질문을 자주 했다. 둘 다 한국에 가족을 둔 이방인이라 그런지 고민하는 부분도 비슷했다. 물론 서로에게 처한 자세한 상황은 조금 달랐지만,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해외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부분은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친구와 짧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다음에는 내가 친구가 사는 도시로 놀러갈 것을 약속하며 작별했다. 모국어로 대화할 수 있는 좋은 친구의 소중함을 깊이 깨달으며 감사함을 느꼈다. 잊고 살던 '학창시절 친구 만나서 재밌게 놀기'를 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이곳에서 한국인과의 접점 없이 살아가고 있는지도 느꼈던 것 같다. 내 경우 그것이 자발적인 선택은 결코 아니지만, 대도시가 아닌지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해외살이를 시작한 이후 이런 고민은 계속되어 온 것 같다.
"친구를 자주 만날 수 없는 삶도 괜찮은 삶일까?"
"이곳에서 만난 친구와 평생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혹자는 한국에서도 다들 바빠서 친구를 만나기 어렵다고 한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특히 결혼과 육아를 하는 단계의 친구들은 더더욱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잠깐이라도 얼굴을 볼 수 있는 물리적인 환경에 속해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느낌이 다른 것 같다. 시차도 다르니 전화도 쉽게 할 수 없다. 이렇다 보니 해외에 사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어느 곳에 살던 완벽할 수는 없다. 항상 복병이 존재한다. 개인적으로는 단연 "친구" 가 그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번에 만난 오랜 친구의 존재를 알았다는 것이다. 친구가 한국에 돌아갈 선택을 할 수도 있지만, 유럽에 남게 된다면 적어도 같이 여행 다니고 이야기할 친구가 있어서 기쁠 것 같다.
장기 해외생활에서 외로움은 누구에게나 필연적으로 찾아오게 되는 것 같다. 우리 둘 다 그것을 지혜롭게 잘 헤쳐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나를 보러 와준 친구에게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