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서 투잡을 하며 깨닫게 된 것

엔지니어 vs 한국어 선생님

by 은달

살면서 본업에 더해 부업을 하리라고는 딱히 상상해 보지 못했다. 대학생 때는 그저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받는 높은 월급만으로 충분하리라 생각했으니까. 하루의 1/3을 회사에서 보내는데 더 일할 필요도, 더 일할 에너지도 없으리라 생각했다. 부업을 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지금, 주 42시간 엔지니어로서의 본업 외에도 한국어 과외 선생님을 하고 있다. 현재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은 총 3명. 작년부터 시작해서 꾸준히 학생을 모으게 되었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이미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최대 수준이라 더 받지는 않을 생각이다. 한국어 선생님으로서는 월 평균 10시간 정도 일하는 것 같다. 주당 근무시간이 2.5시간 늘어날 뿐이라 생각하면 그렇게 크게 와 닿지는 않지만, 풀타임 직장인이다 보니 일이 바쁠 때는 병행하는 것이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 딱히 삶에서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나는 1년이 되는 시간 동안 이것을 왜 해오고 있는 걸까.


지난 주, 남자친구가 내게 물었다. 그 한국어 수업은 왜 하는 거냐고. 공격성 질문이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질문이었다. 그도 당연히 부수입이 들어온다는 것을 알지만, 내 본업으로도 저축을 포함해 충분히 여유있는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물어보는 것이었다. 주말을 황금처럼 여기는 그로서는 주말에도 수업을 진행하는 나를 보며 의문을 품었을 법도 하다. 나는 몇 가지로 정리해 이야기했다. 놀랍게도 가장 첫 번째 이유로 떠오른 것은 돈이 아니었다.



첫째는, 한국어와 한국에 관심을 가진, 소수의 현지 사람들과의 연대다. 한국과 전혀 연고가 없는 사람들이 국민의 대부분인 스위스에 살면서, 한국에 대해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현지인들은 찾기 어렵다. 관심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의 한국어 학생들은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으며, 한국 드라마를 통해 한국의 문화와 분위기를 접했고, 한국 음식을 먹어보았으며, 무엇보다 유럽이 아닌 아시아 저 먼 나라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과 소통하며 자연스럽게 한국인으로서의 나의 자아가 가치 있게 여겨지는 느낌이 들었고, 나의 지식을 나누는 과정에서 기쁨을 느낀다.


둘째로, 그들과 소통할 때 불어를 섞어 쓰면서 나의 불어 실력도 자연스럽게 상승된다. 내 한국어 학생 중 두 명은 영어를 자유자재로 하시지만, 최근에 맡게 된 한 학생은 영어 사용이 서툴다(놀랍게도 이 친구가 가장 어리고 나머지 두 분은 할머니시다). 다행히 내가 불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그래도 지금은 기본적인 회화는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내 학생들도 한국어 초보자이기 때문에, 그들이 모르는 애매한 단어나 동사 같은 것들을 불어로 해석해 설명해 줄 수 있다. 그러면서 나의 불어 어휘력도 늘고, 현지인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유용한 불어 표현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셋째는 당연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부수입이다. 사실 지금 같은 초연결 시대에 온라인으로 한국어 수업을 듣고자 하면 얼마든지 들을 수 있지만, 내 학생들은 직접 만나 배우는 것을 선호한다. 소도시인 로잔에서 시간과 조건이 맞는 한국어 선생님을 찾기가 그들로써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희소성 덕에, 꽤나 괜찮은 시급으로 부업을 진행할 수 있다. 물론 스위스는 평균 급여가 높다는 것을 명심하자.


마지막으로, 가볍게나마 현지인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소속감이 있다. 로잔에 처음 이사를 온 이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쓸쓸하고 외로울 때가 많았다. 내 학생들에게 지식을 공유하며 이 도시에 뿌리 내리고 살아갈 이유를 조금이라도 느끼게 된다. 비록 이들이 내 절친이 될 수는 없겠지만, 매주 얼굴을 보며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동네에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된달까. 실제로 나와 1년째 수업하고 있는 한 할머니 학생은 나와 꽤나 친해져 사적인 이야기도 하고, 서로의 집에 초대하기도 했다. 이런 관계는 성인이 된 시점에서 사실 쉽게 만들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소중히 여기려 한다.



그런데 사실 최근에 깨닫게 된 재미있는 사실이 있는데, 바로 본업과 부업을 할 때 나 자신의 자아이다.


본업은 회로설계 엔지니어로, 감성이라고는 1도 없는 근무 환경에서 숫자와 코드를 보며 일하고 있다. 개인주의라 직장 동료들과 크게 사적인 얘기를 많이 나누지도 않는다. 오로지 컴퓨터와 나 사이의 대화만 오갈 뿐이다. AI와 함께 코드를 작성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결과를 보며 의미를 해석하고, 효율을 올리기 위해 어떤 방법이 좋을지 고민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직장에서 웃음을 터뜨리거나 농담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근무시간을 무표정으로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온다. 자연스레 서늘한 사고를 하게 된다. 가까운 나라에서 전쟁이 터져도, 고국에서 안전재해가 나도, 솔직히 말하면 어느 정도는 무심하게 바라보게 된다. '그게 지금 내 일의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가? -> 아니다' 의 알고리즘이 적용된 결과다. 일할 때 자주 듣는 노래는 모차르트의 '레퀴엠'. 음울하고 절망적인 분위기의 엄숙한 노래가 묘하게 업무의 집중을 도와준다.


그런데 한국어 수업을 할 때는 꽤나 달라진 자아를 느낀다. 우선 한국어가 서툰 학생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줘야 하기 때문에 칭찬이 필수다. 조금이라도 발전된 부분이 있으면 "오, 이 부분 정말 잘했는데요? 놀라워요!" 라고 말하며 하이 톤의 목소리로 사기를 북돋워 줘야 한다. 그렇게 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배시시 웃는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 복습을 더 열심히 해온다.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문화에도 관심이 많기 때문에 중간중간 한국 문화에 대한 얘기도 해 준다. 그렇게 내 안의 외향성을 최대한 끌어올려서 수업을 마치고 나면 나 자신도 약간 상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여기까지 비교해보면, 후자에서의 자아가 훨씬 덜 우울하고 즐거워 보인다. 그래서 한번은 한국어 선생님으로 진로를 틀어볼까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적어도 지금은). 우선 나는 자료 만들기를 귀찮아하고 디테일에 잘 신경쓰지 않는 성격이다. 그런데 전업 한국어 선생님을 하게 된다면 다른 수많은 경쟁 선생님들을 제치고 나만의 특별한 교수법이 있어야 한다. 아직 그것을 발전시킬 의욕이 나지 않는다. 엔지니어 일은 특별히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급여가 높고 안정적이다.


다만 슬픈 것은 나는 현 직장을 그만둘 정도의 용기는 없지만, 현 직장에서 하는 일을 미친 듯이 즐길 수준의 찐 공학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보다 늦게 입사한 한 동료가(물론 그는 경력이었지만) 문제에 대해 끝까지 파고들고 싶어하는 열정에 눈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 깨달았다. 나는 그날의 일을 빨리 마무리하고 집에 가서 소설책을 집어 들고 싶은 생각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내가 문학소녀 스타일에 속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한국문학과 세계문학 읽기를 좋아하고 또 음악을 사랑하지만 지독하게 현실적이기도 해서 공대에서 살아남기를 선택했다. 애매한 수준의 수학/과학적 재능의 도움으로 전자공학과를 졸업해서 엔지니어가 되었다. 하지만 내 안의 감수성을 없애버리기엔 내재된 자아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둘 사이를 오가며 산다. 회사에서는 시뮬레이션 툴과 회로를 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업무를 처리하고, 집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 을 보고 서래의 슬픈 표정에 통감한다. 지금으로서는 이 방법이 최선인 것 같다. 그러나 앞으로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는 일이다.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살아가다 보면, 나에게 더 맞는 방향으로 조금씩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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