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취업, 마냥 좋지만은 않더라고요
나는 스위스의 한 스타트업 회사에 약 1년 5개월 째 근무중이다. 전 직원이 20명이 채 안 되는 매우 작은 회사다. 직원들의 절반 정도는 다른 나라에 있어 스위스 팀은 더욱 규모가 작다. 함께 일하는 동료 엔지니어들은 나를 포함해 4명이었다. 지난 주까지는.
팀에 새로운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그를 포함해 이제 5명이 함께 일하게 된 것이다. 요새 업무가 반복적인 것들이 많아 지루하던 참이었는데, 새로운 '뉴 멤버' 가 온다니 내심 반가웠다.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한다. 어머나! 유럽에서 한국인과 성격이 가장 비슷하다는 그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이라니! 이 사람이 분위기를 띄워주려나? (참고로 현재 나를 제외한 3명의 직장동료는 모두 공대를 졸업한 남자고, 다들 착하지만 안타깝게도 재미는 없는 사람들이다. 물론 나도 공대 출신이다) 대화를 나눠보진 않았지만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그의 근무 첫날. 나는 나름 뉴 페이스에게 반가운 인사를 나누려고 평소보다 일찍 사무실에 와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도착했다. 얼굴이 조금 상기되어 보인다. 몇 안 되는 팀원들 모두와 악수를 했다. 규모가 크지 않은 사무실이라 간단히 소개를 하고 다른 직장동료가 그의 on-boarding 을 맡았다. 나는 생각했다.
'흠, 오전은 컴퓨터 세팅하느라 정신 없겠지? 점심시간에 재밌는 얘기 했으면 좋겠다!'
과연 우리의 첫 점심시간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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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나...' 였다. 이탈리안이라서 그가 도시락에 무엇을 싸왔을지 궁금했는데, 정말 간단해 보이는 밥과 닭가슴살 한 덩어리가 있었다. 아무리 음식에 진심인 나라 출신이어도 본인이 직접 요리를 잘하지는 않는 듯했다. 뭐 그건 상관없었다. 각자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에게 이탈리아 어느 지역 출신이냐고 한 동료가 물어보았다. 시칠리아란다. 이럴 수가! 난 9월에 시칠리아 휴가를 앞두고 있는데! 이건 운명이다 싶어 흥분하며 나 시칠리아 간다고, 맛집이나 갈만한 곳 좀 알려달라고 나름(?)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그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친화력을 상상하면 '오~ 어메이징~ 너 그럼 여기를 꼭 가야돼 %$**($#&~' 같은 반가운 감정을 보일 것 같은데, 현실에서의 그는 담담하게 아 그렇구나 정도로만 반응했다. 뭔가 미지근한 이 느낌. 모두가 비정상회담의 알베르토 같은 건 아니었군. 이탈리아 남부 사람들은 굉장히 정이 많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나의 공대 이론이 기정사실화 되는 듯했다. '아무리 활발한 사람도 공대에서 머리 좀 굴리다 보면 성격이 바뀐다' 같은 일반화가 어느 정도 섞인 이론 말이다. 일반화도 인간의 뇌에서 이루어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어쩔 수 없다.
서운하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새로운 동료를 알게 되었는데 나와 그다지 쿵짝이 잘 맞는 사람은 아닌 듯해 시무룩해졌다. 사실 우리 회사는 정말 '일 중심' 으로 돌아가는 회사다. 물론 개인의 쉴 권리와 사생활은 철저히 보장한다. 휴가도 미리 이야기하면 마음대로 갈 수 있고, 재택도 가능하다. 전반적으로 직원들이 다 젊은 편이라 꽉 막힌 사람들도 없다. 남들이 들으면 최고의 회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다른 회사들과 비교해 다니기에 괜찮은 회사라고 생각한다. 특히 스타트업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말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는 법. 나는 직장동료들과 지금까지 한 번도 회사 밖에서 만난 적이 없다. 일년에 한두 번씩 회식을 하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짧은 저녁식사가 전부고 식사 자리에서도 일 이야기를 하는 게 대다수다. 가끔 일 끝나고 다같이 맥주 한잔 하는, 그런 직장동료 몇 명 만드는 일이 쉽지가 않다. 점심식사 역시 30분 내외로 아주 짧게 가진다. 이동시간을 제외하면 밥 먹는 시간은 거의 10분이다.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딱히 점심시간에 할 얘기가 없어서다. 예전에 한국에서 잠깐 회사 다닐 때 다른 직장 동기들과 화기애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유학 가기 전 잠깐 다녔던 회사라 금방 퇴사했는데도 나의 퇴사를 진심으로 아쉬워하며 선물까지 챙겨준 사람들이다. 지금은 전혀 다른 분위기에서 살고 있다.
물론 불편한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는 것보다는 천배만배 낫다. 내 직장 동료들의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 모두 성실하고 착한 성품을 지녔다. 그저 서로의 관심사와 라이프스타일이 너무도 다를 뿐이다. 국적과 살아온 환경이 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나의 상황을 불평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즐겁지만은 않은 직장생활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누군가가 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심리상담사로 구청에 근무하시는 어머니와 가끔 통화를 한다. 어머니는 항상 책상에 누군가가 나눠주는 간식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신다. 커피도 항상 누군가 사준단다. 내 직장과 너무도 비교되는 분위기에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모든 미팅을 온라인으로 하는데, 각자 매우 형식적인 'how are you' 를 남발한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간식은 무슨, 내가 내 허기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아무리 나이 많은 상사가 있어도 절대 밥 사주는 건 없다. 지금까지 직장동료나 상사와 일 외의 인생 얘기 같은 건 거의 한 적이 없다.
생각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중시하는 편인 나는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입사 초기에는 직장 동료들과 친해지는 게 쉽지 않아 우울해하기도 했다. 지금은 내가 마인드를 고쳐먹었다. '직장은 돈 벌러 가는 곳이다' 라고. 적어도 우리 회사에서 돈독한 네트워킹은 하기 힘든 것 같다. 직원 수도 너무 적고 개개인의 삶이 너무 달라서 공통분모를 찾기가 힘들다. 일할 때 문제 되는 부분은 없으니, 한계를 인정하고 내가 다른 기회를 찾는 수밖에. 그 덕에 회사 밖에서 네트워킹 이벤트 같은 게 열리면 어떻게든 참여하려고 한다.
어디에서든 마음 맞는 대화 상대를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다시금 느낀다.